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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 May 31. 2023

제목 한줄 바꿔서 성공한 채용 공고

어차피 실전이야

GA(총무) 인턴을 뽑아야 했다.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난이도가 높은 포지션이었다.

우리는 남들이 보기엔 좋은 회사지만, 총무 직군 커리어에는 아쉬움이 많은 곳이었다.

개발이나 디자인 등 경쟁력을 어필할만한 프로덕트 직군도 아니고, 어느 회사에나 있는 업무, 그러니까 차별점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제외하면 시장에서 적합한 인재를 찾기는 쉬운 포지션이다.

다시 말해, 회사의 경쟁력을 어필하기는 어렵지만, 시장 내 채용 난이도 자체가 높은 직군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무난하게 채용 공고를 냈다.

무려 전환형, 그것도 채용전제형 인턴이라는 매력 포인트를 갖춰서 말이다.



그 결과, 그 어떤 직군 채용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10일 간의 노출, 174회 조회, 28명 지원, 서류 합격자 2명, 최종 합격자 0명.


시원하게 채용에 실패했다.

별다른 광고를 붙이지 않았으니, 노출이 적고 조회수가 낮은 것은 그럴 수 있다.

다행히 조회 수 대비 지원자 수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허수 지원자가 너무 많았다.

묻지마 지원은 많았고, 만나보고 싶은 지원자도 적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적정 지원자 수가 지나치게 적다는 데에 있다.

채용 담당자이면서 동시에 현업 부서가 된 HR팀과 함께 "우리가 찾는 지원자의 조건"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매우 추상적이었다.

사내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적극성과 발랄함, 꼼꼼하고 스마트한 사람.

IT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잘 다가가고 우리의 활기참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같은 의견들이 나왔다.


현업에서 이런 이야기했으면 "뭐 어쩌라고" 했을텐데, HR이 이렇게 말하니, 사람 참 똑같구나 싶었다.



 멀리서 보기엔 작지만, 올라가자니 까다로운 바위산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래서 다른 기업 사례를 살펴 봤다.

그러다 문득, 채용공고에는 기업의 브랜딩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민 공고를 보면 배민답다.

쿠팡 공고를 보면 쿠팡스럽다.

채용 공고조차 카카오 같고, 네이버다우며, 구글 느낌이 났다.


그제서야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보였다.

총무라는 포지션이 시장에서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회사가 갖는 차별점조차 포기했던 것.

지원을 고민하는 사람은 잡플래닛스러움을 기대할텐데, 오히려 공고에서는 그런 부분을 채워주지 못하니 굳이 지원할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사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경쟁력을 손수 버렸던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뽑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추상적인 표현 그대로를 다시 점검하고, 이걸 가장 우리스럽게 나타낼 수 있는 워딩을 뽑아 제목에 붙였다.

회사 소개나 자격 조건 등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나, 채용 공고가 주는 톤앤매너를 좀더 다정하고 캐주얼하게 수정했다.



제목은 '미래의 동네 이장님'이 되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이장님으로 태어났으나 시대와 지역을 잘못 골라 총무가 된 사람'이었다.

제목 한줄의 변화가 불러온 결과는 놀라웠다.


동일하게 10일을 노출했고 조회수는 115회로 전보다 줄어들었다. (기존 버전 조회수는 174회)

이건 어느 정도 각오했던 부분이다.

제목이 대중적인 범주를 벗어났으니, 당연히 클릭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원자가 110명이었다. (기존 버전 지원자는 28명)

제목에 이미 지원에 필요한 기초 정보(기업의 브랜딩/인턴이라는 포지션)가 다 있어서인지, 눌러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원으로 이어졌다.

서류 검토 결과, 서류합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인원은 20명 이상이었다. (기존 버전 서합은 2명)

세상에 숨어있던, 우리가 찾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느낌이었다.

시간 관계 상 실제 면접 인원은 5명이었고, 여기서 최종 합격자가 나왔다.


생각하지 못한 이유로 채용 흥행이 실패하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변화로 결과의 반전을 맞이하기도 한다.

채용 공고 썸네일 사진 때문에, 단어 하나 때문에, 자격조건 한줄 때문에도 채용 공고는 망한다.

교육도 좋고 책도 좋지만 다른 회사 케이스를 많이 보고 분석해보는 것이 좋다.


어차피 HR은 실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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