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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합할 수 있는 아픔이었다

1일 1커밋 #112

by 김디트

글을 읽다 보면 죽음에 대한 글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가까운 이의 죽음만큼 마음을 저리게 만드는 일이 또 있을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딱 붙어서 채 손을 떼어내지 못하고 까맣게 타들어가는 짐승의 모습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고압 전류를 어떻게든 방전시켜야 그 부동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그 방전, 고여있는 슬픔을 어딘가로든 뱉어내기 위해 어떻게든 힘을 내어 손가락을 움직인 결과물이 아마 그런 글들일 것이다. 그렇게 방류된 전기 같은 글들은 내 몸을 통과하면서 내 마음속에도 그을음을 담기고 지나가곤 했다.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가 별사탕 모양의 파편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까끌까끌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습기가 흥건한 기억이었다. 외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라고도 하는 것에 걸려서 일곱 딸의 얼굴을 이따금 기억하다가, 자주 까먹었다. 기억의 기둥이 이따금 완벽히 정렬되어 마치 모든 걸 기억해내는 것처럼 보였다가도, 그다음엔 어김없이 젠가 무너뜨리듯 와장창 무너뜨려서 이모들의, 엄마의 마음마저 흔들어놓곤 했다. 외할머니는 나날이 왜소해져만 갔다. 정신적 병마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난 아직까지 감히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 엄마는 나보다 그 몸의 영향을 훨씬 많이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지속적인 운동의 원동력에는 그런 슬픔이 어려있지 않을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화장을 치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그 몸이 그 뜨거운 곳에 들어간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앞에서 그 생생했던 것이 든 관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고, 곧 뜨거운 것이 관을 덮쳤다. 나는 외할머니의 생생함이 그대로 타오르기라도 하는 듯 다급하게 오열했다. 나 뿐 아니라 다들, 특히 외할머니의 딸들은 더욱 깊고 어둡고 무겁게 오열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외할머니의 생생함을 떨칠 수가 없었 그래서 오래 오래 울었다.


과연 엄마는 그 순간을, 그리고 혼자 남은 그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기쁨이 상당히 많이 거세된 세계에 고아가 되어 홀로 남아서 대체 어떻게. 그 고통을 글로도 말로도 토해내지 못하고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견뎌내기 위해 쏟아낸 많은 글들을 보면서 가만히 웅크려서 혼자 모든 걸 견뎌내는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윽고 속이 완전히 타버려서 툭 하고 쓰러지는 것까지 이어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눈물이 주룩 흐르곤 했다. 엄마가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나로서는 엄마가 없는 엄마의 세계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도 어떤 글, 전혀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아닌, 전혀 다른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을 마주할 때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없는 세계, 엄마가 없는 엄마의 세계를 떠올리며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가진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다양한 고통이 첨예하게 세상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도저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고통들도 많았다. 그런 고통들 앞에서는 나의 보편적인 고통이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봉합이 가능한 상처는 도저히 손댈 수 없는 상처보단 희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엄마가 없는 세계를 걱정하기 전에 엄마가 없는 엄마의 세계를 위로해 줌으로써 나의 고통을 봉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니. 나는 눈물을 찍어내듯 닦아내고 다이얼에 엄마 전화번호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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