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을 자신의 명함처럼 쓰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하면 네, 게임 프로그래머입니다. 하고 만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것들을 묵살시키는 형태의 자기소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대안도 없다. 그 수많은 것들 중의 대표를 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대표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업이 되는 건 당연한 처사인 것 같다. 하지만 머릿수가 많으면 이긴다는 결론은 어떻게 보면 참 제국주의적인 발상인 것도 같고.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든다.
평일의 대부분을 직업인으로서 생활한다. 사실 여기서도 한 가지 큰 뭉뚱그림이 있었는데, 바로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을 수많은 직업인의 대표인 양 가정했단 점이다. 직업엔 참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것이고, 그 직업들이 모두 일주일 중 월화수목금, 주 52시간만 일하진 않을 것인데.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화이트 칼라 직장인을 상상하는 것에 그다지 반발감이 없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직업인의 전통적인 모습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전형적인 생활 패턴과는 아주 상당히 동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전통적, 이라고 하면 왠지 장인이 깊은 눈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이게 아니야 하면서 때려 부수고 하는, 미디어가 슬며시 만들어서 끼워 넣었을 법한 장면이 떠오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통적인 모습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이다.
그러니까 수렵 활동을 하던 저 저 먼 시절의 이야기.
아마도 정처 없이 떠돌면서 먹을 것을 찾던 그 시절의 사람들은 좋은 사냥터를 발견하면 몇 달 며칠을 거뜬히 버틸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를 쫄쫄 곪으면서 좋은 사냥 자리를 힘겹게 찾아 나서야 했을 것이다.
이건 완전히 프리랜서의 생활양식과 꼭 닮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약 가장 전통적인 점에 주안점을 둔다면 직업인의 대표 격으로 상상해야 할 모습은 프리랜서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곤 해도 직업을 나 자신인양 내세우고, 직업인의 대표 격인 생활 패턴으로 생활하고 있는 내가 상상해낼 수 있는 프리랜서의 생활 패턴도 매우 전형적이고 만들어진 이미지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