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침과 점심 전반부를 기계의 동작처럼 정확하고 스무스하게, 하지만 도파민 작용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흘려보내고 난 후, 아이디어를 찾아내기는커녕 아이디어에 대한 아무런 감흥도 없게 되어버린 나의 모습을 문득 깨달았다.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아이디어, 그것이 솟구치는 원천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다 보면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보다는 기계에 가까워진 이 생활패턴의 원인부터 시작해서 어릴 때는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던 공상의 우물을 대체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같은 것들을.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가만히. 그러고 보면 나는 생각한다를 묘사할 때 습관적으로 '가만히'라는 부사를 앞에 붙이곤 했다. 그렇지만 실상은 '가만히'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생각을 하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이 '생각'에 도달하기 전 단계,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있는 것부터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그러니까 즉시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내 안의 것들에 집중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그냥 시끄럽기만 하면 다행일 텐데, 쉽고 간편하게 시끄럽다. 손동작 몇 번으로 세상의 시끄러움 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고, 그 간편하고 지속적이고 빠른 정보들이 뿜어내는 욕구를 참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가만히, 와 생각을, 사이의 단계에서 백기를 흔들면서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누르고 마는 것이다.
요새는 이사를 마치고 난 후 들인 몇 가지 식물들에 작은 관심을 쏟고 있다. 관심과 사랑은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혹여 식물들이 소리 없이 앓는 소리를 내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생각이 날 때마다 식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식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 중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식물이 물을 좋아할 거라는 편견이 식물을 과습 상태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냥 꾸준히 적당히 습관적으로 계획적으로 물을 주기만 하면 식물이 잘 자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게 결과적으로는 식물의 뿌리를 썩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마 정보도 마찬가지 아닐까. 적당량의 정보는 생각을 활성화시키고 좋은 아이디어를 생산해낼 자양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우리 뇌를 과습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아마 식물에게 꾸준히 물 주는 것을 참아내는 심정으로 우리는 핸드폰을, 컴퓨터를, 정보를 뇌에 뿌리고 싶은 마음을 좀 참아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앞서 말했듯 '가만히' 정보 채집을 참아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화분 앞에 물이 가득 든 분무기를 들고 서있으라고 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참을성 없는 나를 탓했다. 정보가 과습 상태가 되는 게 내 뇌에 좋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아는데, 왜 '가만히' 생각을 할 수 없는 건가 하면서. 가만히 있으라며 나를 끊임없이 지탄했다. 그런 강압적인 환경에서 아이디어가 태어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아이디어가 가만히 앉아서 하는 생각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인 걸 몰랐던 것이다.
사실 아이디어는 '가만히' 있을 때 생겨나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고 글을 끄적일 때 태어나는,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연습장이 빼곡해질 때까지 써 갈겨야 겨우 나올까 말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가만히'라는 부사에 갇혀서 비생산적인 질책만 해댔다. 분무기를 가득 채운 채 식물 앞에 몇 시간이고 세워두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을 주고야 마는 그런 악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이제 식물에 관심을 쏟는답시고 분무기를 들고 서성거리는 일,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위해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슬금슬금 손이 움직이는 걸 참아내는 일은 그만두어야지. 연습장을 펼치고 아이디어를 적고 그려 나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