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2017) :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Compiling 6. 유전
요즘 세상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다. 핸드폰에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결제가 되는 데다가 우리 집 앞까지 배달까지. 국내에서 사는 건 거의 하루 만에 배달이 완료되고, 해외 배송이라도 일주일이면 거뜬하다. 저 먼 곳 어느 창고에 쥐 죽은 듯 쌓여있었을 물건이 순식간에 그 운명을 탈바꿈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걸리는 과정 치고는 너무 숨 막히듯 급박하다.
하지만 이런 빠르고 편리한 시스템 때문에 실수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내가 겪은 일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내 이전 주소로 오배송 시켜버린 것이다. 구매 플랫폼이 워낙 다원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소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소를 미처 채 챙길 틈도 없이 휘몰아치며 구매를 완료하라고 닦달하는, 점점 빠르고 숨 막히는 그 시스템. 나는 급류에 휘말리듯 구매했고, 아무런 의심 없이 배송을 기다렸다. 그 배송지가 잘못 지정되어 있는지조차 미처 모른 채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한 가족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니 - 스티브 부부의 자식들, 피터와 찰리까지 이어지는 그 비극의 연쇄. '가족'이라는 시스템과 그 아래에 놓인 이들의 선택들이 쌓여서 비극이 된다. 이 비극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영화 초반부, 피터가 그리스 비극 관련 수업을 받고 있는 장면을 우선 살펴보자. 교수는 헤라클레스의 비극에 대한 물음이 한참이다.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이었을까, 덜 비극이었을까. 그 질문이 피터에게 향할 때, 피터는 앞 여학생에게 관심이 쏠려서 질문 자체를 귀담아듣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는 거냐고 되묻는다. 피터는 주어진 선택지가 있다는 것부터 인지하지 못했고, 시스템에 휘말려 비극(작게는 교수의 한심하다는 시선에서부터, 크게는 영화의 결말까지)에 치닫게 된다. '선택과 비극'이라는 물음 바깥의 '선택과 비극', 겹겹이 쌓인 액자식 구성인 셈이다. 택배를 오배송당하는 나의 비극 역시 주소 선택이라는 선택지를 파악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었던 셈이다.
찰리가 사망한 후, 애니와 피터 사이의 끊임없는 핑계 역시 선택지가 있다는 옵션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게다가 연쇄적이다. '가족' 사이에서 이어지는 그 핑계는 그 자체로 '유전'이다.
애니의 어쩔 수 없었던 일이란 피터와 찰리에게 시너를 붓고 불을 붙이려 했던 일이다. 애니에게 있어 그 일은 몽유병으로 인한 일이며 자신의 의사가 아니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애니는 피터가 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인다. 피터는 끊임없이 엄마인 애니에게 '어쩔 수 없었음'을 알리려 하지만, 애니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며 분노한다. '핑계'를 생산할 때와 '핑계'를 소비할 때의 이 크고 큰 입장 차이가 이 가족의 유전이며, 비극의 도화선이다. 아마 예상컨대 애니의 엄마와 애니 사이에도 이런 '핑계'들이 수없이 오갔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아빠는 굶어 죽었고, 그의 오빠는 자살을 했을 것이다.
연출적으로 보자면, 영화는 애니의 시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애니의 핑계와 믿음을 중심으로 연출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시각이 현실일까? 현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애니의 취약한 정신을 이미지화했을 뿐이라면 영화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묘를 파헤치고, 스티브에게 시너를 들이붓고 불을 붙인 주체가 바로 애니였으며, 피터의 공포감과 돌변 역시 어떤 비현실적인 소환에 응한 것이 아니라 약한 정신을 조종당한 것이 원인으로 인한 일이었다면. 시스템(파이몬교, 가부장제도)의 의도에 부합하는 형태로 그 유전적으로 연약한 형질을 철저히 이용당한 약자일 뿐이었다면. 가부장제 시스템 아래에서 보자면 필요했던 목 세 개가 모두 여자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며, 찰리에게 애니의 엄마가 늘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다거나, 왕으로 등극하는 피터가 남성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애니가 급격하게 변모하는 지점은 바로 자신의 직업, 미니어처를 포기하고 모두 부숴버리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는 찰리의 사망 당시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하며 스티브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애니의 미니어처 작업은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연약한 정신의 시점으로 보면, 미니어처는 환각을 억제하기 위한 치유 수단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일은 너무나 섬세한 작업으로, 조그만 외부의 압력에 순식간에 그 모든 노력들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다. 예컨대 빠르고 쉬운 쇼핑몰의 주문 급류 속에서 주문지라는 선택지를 늘 인지하고 있으려는 노력과 비슷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스템은 늘 쉽게 쉽게 주문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나는 금세 또 이 실수를 잊어버리고 주소를 선택한다는 선택지 자체를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실수에서 이어지는 핑계는 객체화 때문에 발생한다. 맡은 바 충실했을 뿐이라는 핑계는 자기 자신마저 시스템 아래 객체화 시키는 일이다. 나는 그저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주문했을 뿐인데.. 수준의 핑계일 뿐이다. 나는 그저 가족 구성원으로서 충실했을 뿐인데.. 엄마 노릇을, 오빠 노릇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의 핑계는 그 시스템 아래에 실제로 피해를 받는 이들의 마음을 포용하지 못한다. 애니가 '소중한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 즉 외부에서 그 위안을 받으려고 하면서 영화가 한 차례씩 반전되듯 역할 아래 감춰진 상처받은 마음들은 외부에 도움을 청할 때마다 공교롭게도 시스템의 껍질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 비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나의 실수로 인해 시스템 아래 고통받는 구성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나에게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고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시스템은 내부에서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쇼핑몰의 주소지를 모두 삭제해 버리고, 주문할 때마다 주소를 입력하게 한다면 어떨까? 더욱 손쉬운 물건 주문을 지향하는 쇼핑몰의 시스템을 역행하는 선택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 아무튼 나에게 주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즉, 유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의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