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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디트 Apr 29. 2024

500일의 썸머(2009) : 계절은 흐른다

Compiling 8. 500일의 썸머

  기본적으로 나는 추억하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계속해서 반복해서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고 보면 추억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잠깐 떠올렸을 뿐인데도 시원한 바다와 청명한 하늘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습하고 짠 공기, 흔하디 흔한 흘러간 여름 노래들이 코와 귀 앞을 맴돌고, 바스락거리는 모래와 축축한 자갈의 맨들맨들한 질감 같은 것들이 왠지 손 끝에 남아있는 듯하다.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계곡물에 담가둔 수박, 텐트,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 밀짚모자를 쓴 할아버지, 자글거리는 삼겹살 굽는 소리 같은 게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반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계절 중 손에 꼽을 정도로 힘겨운 계절이 여름이기도 하다. 윙윙거리는 모기를 비롯한 날벌레들, 아스팔트마저 녹아버릴 것 같은 더위, 에어컨을 과하게 틀어서 냉방병이 걸리는 일도 허다하고, 더위를 먹어서 뭘 먹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는 일도 빈번하다.


  영화에서 톰의 여동생은 톰에게 '좋았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나빴던 일도 떠올려 보라'고 조언하는데, 여름에 관해서는 정말 딱 적절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톰의 시점에서 썸머와 조우하고 완전히 이별하는 500일이라는 시간을 종횡무진 쏘다니며 진행된다. 축약하자면 '톰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톰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레이션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고 못을 박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톰의 기준을 따라 움직인다. '기준'이란 고정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운명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키스를 하고 관계를 맺는다면 그건 사귀는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페니스라고 외치면 안 된다.', '헤어진 남자와 춤을 춘다면 그건 다시 만나자는 시그널이다.',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는 여자는 없다.' 등. 영화 곳곳에서 톰의 기준은 말 그대로 기준이 되어서 톰을 그 방향으로 이끈다.


  고정관념은 높은 확률로 일정한 리턴을 제공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 역시 고정관념이며, 실제로 높은 곳은 위험한 것처럼. 하지만 고정관념은 그렇기 때문에 그 낮은 확률, 안정장비를 하면 위험하지 않으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을 무시한다.


  썸머는 그 낮은 확률을 즐기는 사람이다. 긴 머리를 사랑하지만 자르며, 애인이 아니지만 친한 친구로 함께 잠자리를 가질 수 있고, 뻔하게 존레논을 좋아하기보단 링고스타를 좋아한다. 보편화된 기준을 거침없이 빗겨나간다. 톰에게 '친구로서' 좋아하냐고 물어본 다음날 거침없이 톰에게 키스를 한다. 톰의 정형화되고 뻔한 행동패턴은 썸머에게는 부처님 손바닥 안이나 마찬가지이다. 뻔한 톰의 행동을 파훼하면서 썸머는 즐거움을 느낀다. '너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시각으로 뻔한 것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톰은 정형화된 기준 속에 있을 때 즐겁고, 썸머는 기준을 파괴할 때 즐겁다. 이 간극이 이 둘 사이의 문제이다.


  톰은 점차 썸머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한다. '뻔한 남성'으로 변해간다. 술집에서 썸머에게 치근덕거리는 남자와 대면했을 때 여과 없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톰은 '남자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하지만, 썸머는 '자신이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을 되려 방해하는 톰'에게 분노한다.


  반면 썸머는 늘 같은 패턴으로 자신에게 프레임을 강요하는 톰에게 질려간다. 늘 같은 패턴으로 링고스타를 들이밀고, 같은 패턴으로 이케아의 수도꼭지를 틀며 헛웃음을 짓는 톰의 모습은 식상하기 그지없다. 썸머는 공허한 웃음과 함께 '피로하다'고 이야기한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톰에게서 관심이 멀어져 간다.


  둘은 계절이 언젠가 끝이 오듯 끝을 맞이한다.


  썸머를 통과한 톰은 '운명'과 '환상', 자신의 '기준'을 포기한다. 자신의 굳어져있던 고정관념을 인정한다. 파괴과정은 고통스럽다.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니힐리즘의 위험을 동반한다. 톰 역시 그 고통과 심란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끝, 여름의 끝에서, 운명을 믿지 않던 썸머의 변화를 마주하고서 톰은 알게 된다. 세상이란 한 가지 방법 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기준'과 '변화', '편지'와 '직접적인 말'은 모두 세상을 이루는 요소일 테니까.


  여름을 지난 톰은 '기준', '통념'에 갇혀있던 소심함을 벗어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계절. 어텀. 가을이다.


  그리고 왠지 그 끝은 예상이 간다. 새롭게 정립된 또 다른 세계가 호쾌하게 박살이 날 테지. 그리고 톰이, 혹은 썸머가, 혹은 어텀이 파괴의 후폭풍이 몰고 온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테지. 그리고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일 테니까.


  많은 계절을 흘려보냈고, 또한 반추하며 살고 있다. 반추는 아련하고 즐겁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순진하고 너무 어리고 너무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그 시절 속 나의 모습은 왠지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그렇지만 분명 그 시절의 나 역시 나름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은 내 삶을 관통하며 흘러간다. 그렇게 고통은 다음 계절의 양분이 되었고, 되어왔고, 또 되어가고 있을테지.


  아마 이번 여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을 테고, 지금의 나는 분명 행복한 모습으로 반추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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