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그녀

마음보다 빠른 시간

by 마침내

거울을 마주하고 앉았다. ‘불빛에 반사되어 그런가.’ 의문을 품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얼굴을 앞뒤로 움직이며 착시가 아님을 확인한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 뿌리가 하얗다. 흰 머리카락이 두피를 뚫고 나와 이마와 정수리에 자리 잡고 있다.


거울이 보여주는 건 단순히 흰머리만이 아니었다. 그 앞에 선다는 건 마음은 여전히 스무 살인데 마음보다 앞서가는 육체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도 뒤돌아서면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들여다봐도 버려지지 않는 마음과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나 현실 앞에 마음은 늘 한 발 늦다.


돌이켜보면 이 괴리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처음 흰머리를 발견했을 땐 반년에 한 번쯤 염색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주기는 점점 빨라졌고, 이제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나이 듦이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할 뿐 아니라 머리숱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머리가 빠진 자리도 하얗다. 염색한 첫날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처럼 시원하게 가르마가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 두피와 흰머리가 만나 그 폭포의 너비는 점점 넓어졌다.


미장원에서 염색을 마치고 내가 말했다.

“요즘은 흰머리가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아요. 보름만 지나도 많이 보여요,”

“손님들이 그런 얘기 많이 해요. 한 달보다 더 자주 오는 분도 계셔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했다. 모두 이렇게 시간과 경주하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검게 물든 거울 속 내 머리를 빤히 바라봤다.


이런 반복에 지쳐갈 무렵이었다. '염색을 하지 말까, 요즘 아예 하얗게 탈색해 흰머리로 스타일을 내기도 하던데 자연스러운 흰머리가 뭐 어때서.' 그렇게 생각했다. 염색약이 눈 건강에 해롭다니 잘됐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단지 흰머리가 자라는 것뿐인데 거울 속 내 모습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 모습을 버티지 못했다. 일정 기간만 잘 버티면 괜찮다고 하는데 언제나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미장원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염색주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헤어쿠션을 ‘톡톡’ 두드리며 바른다. 바람이 불면 가르마가 바뀔 수 있으니 머리숱 사이사이까지 골고루 쿠션으로 눌러준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속도가 느려진다는데 참 이상한 일이다. 흰머리가 자라는 속도는 노화와 반대로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데 내 마음은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일은 서로 다른 속도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잘 늙어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다. 흰머리와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흰머리, 파우더를 바르는 아침, 미장원으로 향하는 발걸음까지 모두를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언젠가 마음과 몸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흰머리가 나온 날에도 예전만큼 당황스럽지 않다. 흰머리도, 지금 이 모습도 내 삶의 한 장면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지만 그 시간도 소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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