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으로 만든 밥

절에서 반찬투정 하지 마세요

by 마침내

“사무장! 밥 먹어!”

오전 법회가 끝나면 공양간과 종무소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누군가는 밥이 먼저고, 누군가는 접수가 먼저다. 종무소를 찾아온 이들의 업무를 마치기 전까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금방 갈게요.”

“빨리 와. 반찬 없어.”

하지만 그 '금방'이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접수가 끝나야 하니, 공양간 문을 향한 발걸음은 늘 한 박자 늦는다.


절집의 음식은 대체로 여유 있게 준비된다. 신기한 일은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 뒤 벌어진다. 어디에 있었는지 사람 수가 깜짝 놀랄 만큼 늘어난다. 그러니 매번 그 양을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모자라기도 하고 남기도 하지만 행사가 있는 날은 그 차이가 더 심하게 난다.


어느 절에서는 남은 밥은 데우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다시 꺼내 먹기도 했다. 대부분 그런 음식은 직원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함께 있는 공양주 보살님은 좀 다르다. 냉장고 한 칸도 어지럽게 쓰는 법이 없고, 재료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직원들에게도 언제나 새로 갓 지은 밥과 반찬을 주려고 애쓰신다. 그래서 반찬이 부족해질 것 같으면 빨리 오라고 성화다.


행사날 아침,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보살님, 오늘은 조금 넉넉하게 해 주세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럼 뒷사람 생각해서 조금씩 덜어 먹으면 되잖아. 앞에서 많이 퍼가니까 그렇지?"


속이 답답했다. 보살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배려해 주길 바라지만, 나는 이미 그 기대가 빗나가는 걸 봤다. 첫 번째 사람이 반찬을 가득 담으면, 마지막 사람은 빈 접시를 들고 돌아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뷔페식당에서 다음 손님을 배려해 적게 퍼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도 마찬가지다. 결국 반찬이 부족한 날은 신도들의 불만이 이어진다.


"오늘처럼 사람이 많은 날엔, 괜히 야박해 보이잖아요. 절집은 공양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다음부터는 좀 여유 있게 해 주세요. 어차피 접시 공양인데, 남으면 보관하면 되잖아요."

그제야 보살님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신다. 매번 설명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제자리다. 절의 공양간은 개인의 주방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공간이다. 반복되는 대화가 내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로 남기도 한다.


절집 공양간은 정성의 공간이자, 오해와 갈등이 겹치는 지점이다. 음식은 늘 부족하거나 넘치기 마련이고, 입에 맞거나 맞지 않기 마련이다. 관광객으로 들려 어쩌다 한 번 식사하는 분들은 '정갈하다', '맛있다'라고 하신다. 그런데 자주 오시는 분들 중에는 익숙함이 까다로움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마치 집 밥에 투정하듯 절 음식에도 이런저런 투정을 한다. 절에서 음식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이상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 꽤 많다.


“오늘 반찬 맛이 왜 이래.”

자주 오는 분이 나물 반찬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중얼거리신다. 함께 온 일행도 슬며시 박자를 맞춘다. 공양간이 순식간에 어색해진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숟가락 든 손을 멈췄다. 주변 사람들도 슬금슬금 그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다 들리도록 투덜거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를 의식한 듯 내게 눈길을 주자 재빠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반찬, 스님하고 저희는 하루 세끼 먹습니다.”


그날 내가 속으로 삼킨 말은 더 길게 무수히 많았다. 커피도 남이 타 준 커피가 맛있다지 않은가. 하물며 음식인데. 누군가 새벽부터 일어나 차려준 음식. 그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인데...


절 공양간에서 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마늘이나 파만 넣어도 맛과 풍미가 달라지는 것이 우리 음식이다. 그런데 절에서는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이유로 마늘, 파, 양파 같은 자극적인 채소를 쓰지 않는다. 그 흔한 조미료도 없이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바깥 음식과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료, 매일 다른 인원, 늘 눈치로 가늠하는 양. 그럼에도 매번 따뜻한 밥과 새로 만든 반찬을 내놓는다.


음식의 맛은 주관적이다. 열 명은 맛있어도 한 명은 맛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식당이 아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맛을 기대하는 공간도 아니다. 맛있는 음식은 집이나 맛집에서 드시면 된다.


사찰을 벗어나면 모두 한 가정의 주부다. 매일 밥 하는 일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가까운 일이란 것을 안다면 반찬 투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에게 투정을 들을 때의 마음을 안다면, 타인의 정성 앞에서도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어느 사찰이든 공양간 한쪽엔 '공양게'가 걸려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그러니 절에서는 반찬 투정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에서의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다. 고기반찬, 양념 잔뜩 넣고 맛을 낸 음식은 집에서 만들 수 있다. 이곳의 밥은 정성과 인내로 만들어진다, 수행의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오늘도 누군가의 새벽잠으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나의 끼니를 채우는 감사함을 누린다.

keyword
이전 04화절은 절간같이 조용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