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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Mar 13. 2020

학교가 좋아요!

아이의 첫 유치원 적응기.

지난 주말 아인이의 3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꼬물꼬물 거리던 아기가 어느새 커서 까불까불 뛰어다니고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가 되었다니. 아이를 가지고 낳고 키우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벅참, 설렘, 기쁨 등 어떤 단어로 표현해도 부족한 행복과 더불어 어려움과 부족함 또한 동시에 느끼며 온갖 감정의 풍요 속에 나도 어느덧 엄마 나이 3살이 되었다.


미국은 주마다 육아 휴직이 다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아이를 낳기 전 1개월,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 3개월까지 연방정부, 주, 회사에서 거의 월급에 가까운 돈을 지원해준다. 그리고 법적으로 6개월까지 직업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아이를 낳기 대략 한 달 전 육아 휴직을 시작했고 아이가 6개월이 될 때까지 육아에 전념하다가 회사에 복귀했다. 운이 좋게도 우리와 잘 맞는 이모님을 만나서 회사 복귀 이후에도 일과 시간 동안 이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아인이도 나도 쑥쑥 자랐다.

3살이 된 너와 나.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과 같은데 미국에서는 프리스쿨(Preschool)이라고 불리는 학교는 보통 2살이나 3살부터 시작한다. 유치원 차량 같은 건 없기 때문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야 하는 게 하나의 일이라 웬만하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학교를 보내는 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괜찮다는 학교가 있어 보내기 반년 전쯤 투어를 하고 대기를 걸어두었다. 투어를 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오픈하우스와 개인 투어이다. 학교가 공식적으로 학교를 공개하는 오픈하우스는 보통 일과시간 뒤에 시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조금 더 느긋하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시설을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개인 투어는 미리 스케줄을 잡아 방문하는 형식인데 일과 시간 중에 방문하기 때문에 실제 학교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몇 군데 학교를 투어하고 적당한 곳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친한 언니가 3년 동안 아이를 보내고 만족한 곳이기에 더 많은 투어의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비교적 시설이 깨끗하고 규모가 큰 곳, 풀타임이 (8-6) 가능한 곳,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는 곳을 원했는데 그런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인이는 2살 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인이의 첫 등교날.


이모님과 일대일의 생활에 익숙하고 비교적 말이 빨라서 학교에 들어가기 한참 전부터 한글로 의사소통이 유창했던 아인이는 갑자기 한 반에 15명가량(파트타임 친구들이 섞여 있어 요일별로, 시간별로 인원이 조정된다) 선생님은 3명, 당연히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별안간 뚝 떨어졌다. 첫날은 아무것도 모르고 헤어졌는데 그 날부터 대략 3달간의 적응 기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나 맘이 아프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안 좋고 교실에 도착하면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발버둥 치며 우는 것은 물론이고 보통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인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선생님들과 같이 벽에 붙어 서서 울고 있거나, 울었던 흔적 가득한 꼬질꼬질한 모습의 아이를 데려오는 마음이 얼마나 짠하던지. 처음 몇 주는 마침 가리기 시작했던 배변 실수도 많이 해서 매번 더러워진 옷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하나씩 더 챙겨 오기도 했고 워낙 잘 먹는 아이인데 도시락도 그대로 남겨 와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은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아이도 아이대로 힘들고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나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주변에 물어봐도 몇 주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조언뿐 특별히 해줄 수 있는게 없었고 시간이 지나고 적응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긍정적이었던 나름의 어려움 속에서도 참여하고 배워오고 즐기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혼자 노는 시간과 친구들과 장난감을 공유해야 하는 방법이 서툴러 어색해하는 것 같았지만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잘 참여한다고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었다. 개인 사물함에 넣어주는 미술작품들이 집에 쌓여가고 영어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언어에도 놀라운 속도로 익숙해지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과 선생님의 이름을 알아와서 나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아이를 데려주고 데리러 오는 엄마, 아빠가 누구의 엄마이고 아빠인지 까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나보다 늘 조금 일찍 아이를 픽업하는 아인이 반 친구 엄마가 아인이가 항상 자기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 엄마도 곧 올 거라고 말한다고 했다. 아이가 학교의 선생님을 비롯한 다양한 어른들과도 소통할 기회에 매일 노출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의 아이의 하루는 대략 이렇다.

8:30-9:30 야외 놀이터

9:30-10:00 스낵

10-10:15 서클 타임

10:15-11 스몰그룹 활동

11-11:45 자유시간

11:45- 12:30 점심

12:30-2:45 낮잠

2:45-3:15 센서리 활동/ 아트

3:15-45 스낵

3:45-4:15 스몰그룹 활동

4:15-5:15 야외 놀이터

5:15-6:00 자유시간


스몰 그룹 활동 시간에는 1주에서 길게는 3주 동안 테마를 가지고 함께 배우고 즐기는 주제가 있는데 지금까지 커리큘럼을 예로 들면 탈것, 우주, 공룡, 친구, 오감 등이다. 탈것을 배우는 주에는 택시 운전을 하시는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에게 직업과 관련한 경험과 탈것을 함께 소개해주었다. 우주를 배우는 주에는 갑자기 집에 와서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인이는 토성이 제일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새로운 주제가 시작하기 전 금요일에 선생님이 커리큘럼을 이메일로 공지한다. 이번 주는 오감 중 청각에 대해서 배우는데 다양한 동물 소리를 배우기도 하고 소리가 나는 간단한 악기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벽에 걸려있는 아트 작품들과 직접 만든 흔드는 악기.


학교 생활의 몇 가지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반복하는 활동이 있다는 것이다. 반복을 통해 아이는 하루의 일과, 학교에서의 규칙 그리고 언어를 습득한다. 오전 서클 타임에는 출석을 체크하는 활동을 한다. 학교 시작부터 계속된 특별한 출석체크 놀이는 지금까지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누가 학교에 왔고 집에 있는지 친구들의 사진을 칠판에 붙이는 매일 반복되는 활동을 통해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또한 직접 사진을 칠판에 붙이기도하고 다른 친구에게 사진을 건네주는 등 아이들끼리의 작은 소통을 하게 된다. 반복된 활동을 통해 “아인이는 집에/ 학교에 있어요! “ (Aina is at home/ school) 같은 간단한 단어와 문장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요즘은 학교에 데리러 가면 친구들의 사진을 다 떼어 바닥에 뒤집에 놓고 하나씩 보여주며 누군지 물어보고 친구가 집에 있는지 학교에 있는지 칠판에 분류하는 활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출석체크 활동을 흉내내는 아인.


주제에 따른 커리큘럼에 맞춰 반복해서 읽어주는 책과 반복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반복을 통해 아이는 책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외우고 배우고 익히게 된다. 집에서도 그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며 흥얼거리고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언어를 자연스럽고도 빠르게 습득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선생님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아인.


아이의 일과는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간식을 먹었는지, 화장실에 간 시간과 낮잠 시간, 활동사진 한 두 가지를 설명과 함께 업데이트한다.


아이의 일과를 업데이트 해주는 앱.



이메일, 앱, 컨퍼런스 콜등의 선생님과의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금요일마다 일주일 동안 했던 수업을 간단히 요약하고 다음 주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커리큘럼과 함께 이메일이 오는데 주말동안 다음 주에 배울 노래 링크를 미리 들어보기도 하고 관련된 주제에 대한 책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특별한 공지사항이 있으면 아이를 데려주거나 데리러 갔을때 직접 이야기 하기도 하고 이메일로 소통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학부모 컨퍼런스라고 부르는 학부모 면담을 하기도 했는데 아이에 관한 전반적인 생활에 대한 요약과 함께 어떤 점을 도와주고 발달시키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과 의견을 나누었다. 아이에 대한 좋은 내용이나 추상적인 내용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아직 친구와 함께 장난감을 나누는 법이 어려운 아인이를 도와주기 위해 '2mins' 이라는 규칙을 정해 2mins 이라고 말하고 금방 친구에게 양보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집에서나 따로 플레이 데이트를 할때도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으로 아인이를 설득할 수 있었다. 더불어 한 달에 한 번씩  학교 원장 선생님과 학부모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컨퍼런스 콜이 있다. 회사에 있어도 점심시간에 맞춰서 하기 때문에 전화로 참여할 수 있다. 질문이 있으면 실시간으로 할 수 있으며 참여하지 못해도 미팅 내용이 이메일로 바로 도착한다. 매일 마주치는 선생님과의 간단한 대화부터 학부모 면담이나 학교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컨퍼런스 콜까지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이 있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는데 도움이 된다.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친구들 


아인이의 반에는 비교적 동등한 비율로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다. 더불어 이 학교의 특별한 점은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풀타임은 아니지만 담당 선생님과 함께 각 반에 특별한 친구들 한 두 명이 함께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되는 점은 이 학교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학교가 시작하고 몇 가지 굵직한 이벤트를 통해 나도 아인이도 미국의 문화를 배워가고 있다. 10월 할로윈 시즌에 했던 펌킨 패치 소풍과 할로윈 의상을 입고 한 학교 앞 주차장 퍼레이드, 12월 크리스마스 방학 전에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서 나누어 먹는 행사. 2월 발렌타인데이, 얼마 전 있었던 아인이의 세 번째 생일날에는 스낵 시간에 맞춰 컵케이크를 준비해 가서 반 친구들과 함께 생일 축하노래를 부르고 컵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생일을 축하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작은 선물이 들어있는 구디백도 나누었다. 생일날 선물을 받는 게 아니라 나누어 주는 것이 색다르기도 했다.


할로윈 퍼레이드.


신나게 주말을 보낸 어느 일요일 밤, 아인이와 나란히 누워 여느 때처럼 하루를 돌아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인이와 같이 공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엄마는 너무 재미있는 주말이었어.”라고 말하는 나에게 “엄마랑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학교가 더 재미있어.”라고 대답하는 아인. 3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니 언제 울었던 적이 있었나 싶게 보란 듯이 학교에 잘 적응했다. 6개월이 지난 이제는 학교에 가는 날이 주말보다 좋고 아침이면 엄마 아빠를 꼭 안아주고 하이파이브를 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달려간다. 저녁에 데리러 가면 학교에 더 있고 싶어 해서 학교에서 나오는데만 삼십 분 이상이 걸릴 정도다. 아인이가 학교를 좋아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대견하다. 물론 조금씩 내 품을 떠나고 있는 거 같아 벌써 섭섭하고 아쉽기 까지 하지만 이것 또한 조금씩 준비하고 적응해야 하는 거라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 


학교를 보내며 부모로서 기대했던 첫 번째는 아인이가 집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을 힘차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하루의 1/3 이상을 보내는 학교가 아이에게 새롭고도 안정적인 공간이 되고 긍정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 한 학년, 두 학년 올라가고 초등학교에 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만 하나, 둘 헤쳐나가고 적응해가는 과정이 커가는 과정이고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 이리라. 그 과정에서 만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더도 덜도 아닌 적당한 가이드와 모범이 되어 줄 수 있길 바래본다.


아인아 오늘도 엄마는 너의 하루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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