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u Apr 29. 2020

새로운 일상

back to the basic

중국에서 우한이 봉쇄되고 회사의 상해 지사 직원들은 춘절 연휴가 끝나도 사무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3주 이상 집에서 일했다. 중국으로 휴가를 갔던 옆 자리의 동료는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집에서 2주간의 격리 기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도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고 동생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의 약국 앞 거리 풍경을 찍어서 보내준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3월 10일 화요일 오후 회사에서 갑자기 타운홀 미팅을 소집했다. 회사에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고 한다. 2주 전까지 회사를 나왔던 사람이고 그 이후에 확진을 받았으니 사무실 직원들에게 전염되었을 위험은 낮지만 회사 건물을 방역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퇴근하고 남은 한 주는 집에서 일하라고 한다. 남편은 이미 지난주부터 Working From Home(WFH)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3월 16일부터 Shelter in Place를 발표했다. 꼭 필요한 외출만 권장하고 식료품점 이외의 식당이나 점포들은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만 허용한다. 당연히 아인이의 학교도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3주간 닫는다는 이메일이 도착하였다. 그렇게 회사와 학교가 모두 문을 닫고 집에서 셋이 복작복작 지낸지도 4주가 지나고 있다.



첫째 주  (3/16-22)  '시작'



같은 공간에서 일도 하고 육아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우리의 새로운 월요일 일상은 시작되었다. 임시 오피스를 식탁 한 켠에 마련하고 언제 그려봤는지 기억도 안나는 하루 생활시간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줄을 대략 정리하다 보니 하루에 5번, 한 시간씩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시간이 일하는 중간중간에 생겼다. 시간표대로 잘 시켜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간에 아이랑 뭘 하며 보내야 할지도 고민이다.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장난감들을 미리 주문해두었다. 앞으로 삼 주간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지만 집에서 일하며 아이랑도 놀아줄 수 있다니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만 같은 환상에 설렘도 가지고 시작했던 것 같다. 수요일부터는 아이의 학교에서 아침 서클 타임을 시작한다고 한다.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아이는 즐거워했다. 한편으로는 왜 영상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이상했을 아이와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며 집에서 일주일을 꼬박 지냈다.

 

학교의 첫 온라인 서클 타임과 엄마와 시간표 그리기.


첫 주말은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지 하는 마음에 들떠있었던 나와는 달리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남편과 나가기 전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Shelter in Place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6 feet으로 지정된 사회적 거리두기만 지킨다면 하이킹이나 산책 등의 야외 활동은 허용한다고 한다. (집에서 5마일 이내의 장소에서 야외활동을 한정하길 바란다는 권고가 최근 추가되었다.) 우리는 사람이 덜 붐빌 것 같은 근처의 언덕을 찾아 간단한 하이킹을 했다. 근처에 이런 자연 공간이 있다는 점이 새삼 감사했고 어느 주말보다 특별했던 아이와 자연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처럼 답답해서 나왔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첫 주말의 하이킹.


아빠의 첫째 주

지난주부터 시작된 재택근무. 2주 후에 론칭하게 되는 서비스 때문에 지난주 내내 회사 나갈 때보다 열심히 일했고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아인이 학교가 쉰단다. 이번 주 월요일, 화요일은 심지어 최종 점검 미팅이 하루 종일 잡혀있는데 말이다.

미리 양해를 구해서, 다행히 아내가 아인이와 시간을 많이 내주었고, 지난주 내내 밤늦게까지 수정했던 터라 이번 주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허나, 간혹 울리는 메신저의 알람 소리 때문에, 아인이랑 같이 있는 시간에도 종종 노트북으로 돌아가 일을 처리해야 했고 그동안, 아인이는 미팅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갔고 주말과 주중의 경계가 모호하게 둘째 주가 시작되었다.



둘째 주 (3/23-29) '적응'



경계가 없는 일과 육아의 삶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되고 금방 저녁 먹을 시간이 되는 삼시 세 끼의 삶, 매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생활패턴으로 살다 보니 주말인지 평일인지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헷갈리며 시간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때그때, 그 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끼 예쁘고 맛있게 차려먹는데 집중하다 보니 흥미가 없었던 요리에 취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낮 동안 부족한 일을 보충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서 조용한 아침시간에 최대한 집중하기도 했다. 일과시간 동안 아인이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남편과 번갈아가며 서로 조율해나갔다. 주변 친구, 회사 직원, 학교에서 제공되는 자료, SNS 등 아이의 학습 관련, 유용한 웹사이트, 놀아주는 방법 등에 대한 정보는 내 이메일 함과 머릿속에 쌓여만 갔다. 하지만 넘치는 정보 들을 이해하고 선별할 시간도 없이 하루는 바쁘게 흘러갔다. 아이에게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학교에서 제공된 간단한 액티비티 자료라도 뒤적거려 도화지 한 장이라도 함께 채워가며 내 위로를 해본다.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어설프지만 아인이와 함께 물감도 찍고 그림도 그려가며 나도 홈스쿨링이란 걸 해본다.

 

아인이와 함께 그림그리기

아인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지도 6개월 남짓, 아직도 학교라는 사회와 어른들, 친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었을 너에게는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 있는 지금 이 시간은 그저 편안하고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비록 컴퓨터 앞에 앉아 미팅을 하거나 일을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를 잘 돌봐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긴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또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가며 적응해 나가고 있다.  


학교 낮잠 이불에서 자는 아인.


지난 주말 사람들이 해변으로 산으로 너무 몰리는 바람에 일부 국립공원도 닫는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하늘도 흐리고 주말에 해야 할 회사 일까지 생긴 덕분에 (?) 집에서 중간중간 일을 보충하고 잠깐 동네 산책을 하며 두 번째 주말을 마무리했다.  


아빠의 둘째 주

급한 일들이 모두 정리가 되고 그간 준비한 서비스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예정대로 다음 주에 출시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월요일 오전, 팀원 들과 매니저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전 11시부터 2시까지는 아인이를 보는 시간으로 정해서, 그 시간 동안에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오프라인으로 있겠노라고. 그러고 나서 달력에 Quality time with Aina라고 적어놨다. 이렇게 했더니, 자연히 그 시간 동안에 미팅이 잡히지 않았으며, 온전히 아인이와 보낼 수 있었고 다른 시간에는 죄책감을 조금 덜어내고 더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인이와 노는 시간 동안, 핸드폰을 자주 확인했지만 말이다.

조금은 적응이 된 걸까, 가족 셋이 함께 먹는 점심시간이 기다려졌고 그 뒤 잠시 동안 함께 주차장에서 하는 운동(이라고 하기엔 가벼운 움직임(?))을 즐겼다. 아, 그리고 5년 동안 손님들을 맞이할 때를 제외하고 건조대로만 사용했던 식기 세척기를 매일 잘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편할 줄이야...



셋째 주 (3/30-4/5) '연장'



어느덧 4월이 되었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다음 주에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었지만 캘리포니아 주의 Shelter in Place는 4월 말로 늦춰졌다. 학교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다행히도 학비는 1/4만 내는 것으로 조정이 되었다. 이제 최소 한 달, 하지만 학교가 이번 학기 전체를 닫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적어도 3달 정도는 이 생활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첫 주에 주문해 두었던 아인이 장난감들과 자전거가 도착했다.


새로 산 장난감으로 재미있게 노는 아인이.

요즘 우리는 앞마당과 뒷마당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점심을 먹고 잠깐이지만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줄넘기를 하기도 한다. 아인이는 자전거도 타고 공놀이도 하고 모래놀이도 한다. 따뜻한 오후 햇살을 쬐며 버블티를 마시는 여유도 부려본다.

 


주말에는 내내 비가 왔다. 밖에 나가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 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 부쳐먹고 다 같이 돈가스도 잔뜩 만들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첫 주에 세워두었던 계획표도 돌아보았다. 너무 욕심부리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전략을 좀 세워 봐야 할 것 같다.


며칠 전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다가 발견한 글귀. 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중.


아빠의 셋째 주

월요일 오전 9시, 테크 잡지 기사와 회사 블로그를 통해 3개월 동안 달려왔던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다. 기분 좋게 한 주를 시작해서인지 아인이와 놀이를 하는데 한결 여유가 생겼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내 캘린더는 미팅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미팅 때문에 미룬 일들은 결국 밤이나 새벽에 일어나 처리하게 되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유난히 이번 주에 아인이가 우리를 많이 웃겨주었다.

목요일 오후, 마지막 미팅이 끝난 5시, 바람을 쐴 겸 미뤄둔 장을 보러 나갔다. 마트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많은 물건들이 다시 진열되어 원하는 물건들을 다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장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았고 유례없이 큰 숫자가 찍혀있는 계산대의 작은 스크린과 두 번 접어도 여전히 긴 영수증은 낯설기만 했다. 장보고 돌아오면, 아인이는 문 앞으로 달려 나와 장 본 물건들을 하나씩 주방으로 가져간다. 물론, 아인이의 주목적은 아빠가 자신 것을 잘 사 왔는지 확인 차 오는 것이겠지만, 그마저도 귀엽다. 



넷째 주 (4/6-12) '쉼'



마음을 다잡기 무색하게도 너무 바쁜 한주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목요일 저녁에 마감이 생겼고 상해의 팀 멤버와 저녁에 업무 협의를 해야 했기에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하고 일과 시간 후에도 한두 시간 더 일을 해야 했다. 이전에도 마감은 언제나 있었는데 일과 삶의 경계가 희미해지다 보니 자꾸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수요일쯤 되니 아인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내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시간표와 계획은 다 어디로 갔으며 앞으로 이렇게 계속 몇 달을 더 보낼 수 있을지 조금 막막해진 것도 사실이다. 일단 목요일 마감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을 짜야겠다고 고민할 시간조차 미뤄두었다.


금요일은 휴가를 내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로 했다. 마침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각 나라에 있는 해외 특파원 엄마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미팅이 있었다. 역시 주요 주제는 현재 상황이었고 비슷한 이야기에 위로받았다. 실제로 이 병으로 아픈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집에 있지만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 인터넷이 없어서 그나마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이나 넘쳐나는 정보들에도 접근할 수 없는 아이들, 병원에서 열심히 힘쓰고 있는 의료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고작 일과 육아에 허덕거리며 힘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했다. 그리고 아이와 남편과 함께 매끼 따뜻한 밥을 먹으며 알콩달콩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평일에 처음으로 아인이와 집 밖으로 산책을 나왔다. 동네의 사람 없는 한적한 길에 서서 벚꽃도 구경하고 봄내음 한껏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아인이 학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인이는 학교에 한 번만 들어가 보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닫혀있는 학교 문 앞에서 마스크 쓰고 들어가면 괜찮지 않냐고 왜 못 들어가는 거냐고 물으며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작고 순수한 아이에게 이 시간을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지 적어도 한 달, 아니 두 달, 세 달, 네 달이 될지 모르는 이 새로운 생활이 좀 더 의미 있고 퀄리티 있는 가족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돌아봤을 때 아이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엄마인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갔다.

학교에 가고 싶은 아인.


아빠의 넷째 주

이 주 동안 지내면서, 팀 원들이 미팅을 1시 이후에 잡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아내도 10시에 팀 미팅이 주로 잡혀 있어서 아인이와 보내는 시간을 기존에 11시보다 한 시간 앞당겨서 10시부터 하고, 점심 먹고 1시부터 일하는 걸로 조정하였다. 덕분에, 아인이는 서클 타임을 9시 반에 하고 10시에 자연스레 아빠한테 왔다. 고백컨데, 밥 먹기 전까지의 두 시간은 그 날의 아인의 컨디션보단 내 컨디션에 의해 정해졌다. 몸이 피곤하면 아인이와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고, 이불 안으로 들어가 텐트 놀이를 했고 (이 놀이들의 주목적은 내가 눕기를 위함이다.) 에너지가 있을 때는 아인이를 데리고 뒷마당으로 나가서 꽃에 물 주고, 모래 놀이도 했다가, 주차장으로 나와 축구도 하며 뛰어놀았다. 함께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사실 아인이는 아빠가 적극적으로 무얼 해주는 것을 기대한다기보다 본인이 하는 행동에 공감을 하고 참된(!) 리액션을 기대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걸, 함께 있으면서 이제와 알게 되니 다행이기도 하면서, 미안하기도 하다.

수요일에 있었던 회사 전체 미팅에 창업자의 어린 딸이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여 창업자가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예전 BBC 방송에 인터뷰 중 두 딸이 방에 들어와서 난처해했던 Kelly 교수의 인터뷰가 스쳐 지나갔다. 이렇듯 아이와 함께 일하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일하는 부모들의 새로운 norm이 되었고, 밤에 책상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밀린 일들을 보충하는 것도 (사실 야식을 먹기 위함이라는 것도) 우리 만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월요일이 시작하면 아이는 학교에 내려두고 우리는 회사로 달려가 정신없이 일하고 돌아와 낮 동안 부족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다 지쳐서 잠들곤 했다. 또 주중에 부족했던 아이와의 시간과 마음을 채운다는 명목으로 주말에는 어디라도 나가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셋만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다.  


4주 간의 적응과 혼돈의 시간 속에서 동시에 느꼈던 무언가 편안하고 익숙함은 무엇일까. 


가족들과 단란하게 둘러앉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바쁠 것 없는 주말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티비를 보고 주말이면 아빠의 특별한 라면을 먹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일까. 이전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지만 삼시 세 끼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시작한 요리에 흥미가 생겼다. 요리를 하는 게 재미있어졌고 예쁘게 차려 놓고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게 작은 행복이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와 어디라도 나가느라 바빴던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별 용도가 없었던 뒷마당의 조그만 틈새 화단은 새 단장을 하고 화분에 흩어져있던 여러 종류의 다육이들이 새 집을 찾았다. 남은 화분에는 파도 심고, 각종 식용작물들을 심어 아인이와 매일 물을 주며 언제 새싹이 나오나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마당에서 식물들을 가꾸고 텃밭을 가꾸며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씨를 심고 정원을 가꾸며 흙과 가까워지고 있다.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까만 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인이와 누워서 한참 동안이나 별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또 어느 날 저녁에는, 마당에서 놀다가 하늘에 떠오른 초승달을 보며 아인이가 얘기한다.  '어? 이제 밤이 되려고 하나 봐, 달이 왔네?' 한산한 도로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하늘은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


앞마당에서는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고, 공놀이를 하고, 줄넘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말 그대로 그냥 뛰어다니기도 한다. 어릴 적 아파트 주차장 선을 이용해 친구들이랑 뛰어놀며 게임을 하고 바닥에 분필로 낙서하고 물풍선을 던지고 비눗방울을 불고 놀이터 흙더미에 앉아 놀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인이도 이렇게 집 앞에서 깔깔대고 뛰어놀던 어렴풋한 기억을 추억할 수 있을까.


4주간 못 만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특별한 생활 속에 이웃의 소중함도 느끼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했다고 전해주러 오기도 하고 장 보러 갔다고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와 주기도 한다. 아인이 마스크를 만들어 전해주고 가시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고 멀치감치 떨어져서 받아야 하는 사랑과 관심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감사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이트보드에 이것저것 기억할 것들을 노트하고 있었다. 아인이는 엄마가 뭐하나 가만히 보고 있다가 후다닥 자기 칠판으로 달려가서는 나처럼 칠판에 글씨를 그리고 있다. 어른의 말투, 행동을 모두 흉내 내고 따라 하며 배워가는 아이에게 지금 24시간은 모두 엄마와 아빠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순간 크게 다가왔다.


집에 있으며 집구석 구석 서랍장, 옷장 한 칸씩 틈틈이 정리하고 있다. 더불어 나도 우리 가족도 새로운 정비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우리의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기본에 더 충실해지고 더 단단해져서 또 다른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에 대응하는 제3의 공간 정서 코칭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