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su Dec 30. 2019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날

bring your kids to workday

미국에 나와서 산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한국이 내 집 같은 나는 뼈 속까지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방문하면 빠른 속도로 변하는 한국이 이제는 조금 낯선 것도 사실이다. 또 이방인의 입장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한국을 바라보기도 한다.


지난 반년, 해외특파원으로 샌프란, 그리고 베이에어리아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경험과 장소를 소개하면서 한국에 더 좋은 시설과 재미있는 곳이 많아 보이는데 해외의 장소가 얼마나 특별할까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이 있었다. 휴가로 잠깐 다녀온 것이고 추운 겨울 날씨의 제약이 있었기에 단편적인 시각일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이방인의 시각으로 관찰한 것은 어른과 아이의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한 회사의 로비에 위치한 전시공간을 찾았다. 평일 오전에 유모차를 끌고 회사 빌딩을 찾은 엄마와 아이가 우리뿐이라 일단 어색했다. 멋진 건물 내부에 감탄하며 갤러리에 발을 들이는 시작부터 아직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전시실에서 아이를 조용히 시켜달라고 주의를 받았다. 아이라는 이유로 일단 경계하며 보는 것 같아서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요즘 핫한 카페가 더 많아진 한국에서 카페를 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출발 전에 그곳이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로 카페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키즈 존이라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 것 같다. 아이가 갈 수 없는 곳이 생기고 아이가 없는 젊은이들이나 어른들이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는 자꾸만 줄어든다. 점점 그들 간의 격차가 생기고 이해의 통로가 줄어든다. 어른이 가는 공간과 아이들이 가는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된다. 그래서일까? 한국에는 유난히 키즈카페가 많다.  


서론이 길었다.

일 년에 한 번 한국에 가는 것처럼 이 동네의 많은 회사에서는 일 년에 한 번 공식적으로 아이와 함께 회사에 가는 날이 있다. 'Bring your kids to workday'라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를 데리고 함께 출근한다. 엄마에게는 일상의 공간이지만 아이에게는 미지의 세계였을 엄마의 회사에 아인이도 함께 출근하는 날이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는 대신 함께 손을 잡고 회사로 출발한다. 같이 바트(서울의 지하철과 비슷한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수단)를 타고 신난 아이를 보며 여느 날처럼 출근길을 재촉한다. 멀리 보이는 회사 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엄마 회사야. 엄마가 매일 여기에서 일해.'라고 설명해준다. 아이는 신기한 듯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회사 건물을 바라본다.


회의실 하나가 오늘은 특별히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회사 직원 중 몇 명이 자원해서 몇 달 전부터 프로그램을 계획, 준비하고 하루 동안의 진행을 돕는다. 아이들의 엄마나 아빠는 아이들과 같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머시멜로와 막대를 이용해 재미있는 입체 장난감을 만들어도 본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아이들은 준비된 프로그램 중에 흥미가 있는 것들을  찾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 회의실


아인이는 내 자리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아직 조금 어린 편에 속하는 아인이 정도 나이의 아이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 자리 옆에 앉아서 스티커도 붙이고 책도 보면서 하루 동안 엄마의 일상을 경험해 본다. 엄마의 미팅에도 따라가고 점심도 먹으러 나갔다.   


엄마의 일상을 체험 중인 아인이


글을 쓰며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 take our daughters and sons to work day라는 프로그램이 매년 4월의 넷째 주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전국적으로 장려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님의 직업을 이해하고 직,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일과 가정의 균형, 여성과 남성의 평등 등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페이스북,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등 베이에어리아 주변의 많은 테크 회사에서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가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https://daughtersandsonstowork.org/


특별히 이런 날이 아니어도 불가피한 경우에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와서 일하는 동료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보통 아이를 6시 이전에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픽업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 맞춰 일찍 퇴근하는 등의 탄력적인 근무가 가능하며 일 년마다 있는 평가를 할 때도 아이가 있는 엄마여서 진급에 불리하거나 문제가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잘 잡아가며 일을 해나가는 것에 점수를 주고 그것을 성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며, 또 다른 여성 직원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부각할 수 있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고 아이와 가족에 관련한 많은 부분을 배려해주는 곳에서도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도 이런 이해와 분위기가 있기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을 하며 최대한 삶의 균형을 맞춰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인이는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회사 사람들도 반갑게 아인이를 맞아주었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 회사가 너무 좋다는 아인이. 앞으로 아인이가 성장하며 엄마가 회사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회사가 학교보다 더 좋다는 아인이. 나중에 또 오기로.


회사에 아이를 데려가는 미국과 카페에도 아이와 함께 가지 못하는 한국.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과학을 만져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