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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won Sep 17. 2017

커피와 맥주

Coffee & Beer: 실리콘밸리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저는 사실 자기 이야기를 참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신나게 맞장구를 치거나 대화 중 기막힌 타이밍에 에피소드를 가미하는 것은 잘할 지라도, 막상 멍석이 깔리면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 만큼 머리속이 하얘지곤 합니다. 많은 블로거나 작가들을 보면 어느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먹고 누구랑 갔는지,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을 참 맛깔나게 설명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일상의 공유가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로 다른 친구들의 삶의 이야기 (edited INSPIRATION) 를 통해서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해왔던 것 같습니다. 


포토그래피 현장 실습중 만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의 Cafe Madeleine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제 이야기를 조금 더 다뤄볼까 합니다. 


제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한 몇 편의 영화가 도시에 대한 유일한 지식이었던 한 20대 중반 여자가 이 낯선 도시에서 언어의 장벽, 커리어에 대한 고민, 관계의 굴곡, 배움과 좌절을 겪으며 서서히 정착해 가는 경험의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3년 반이란 시간이 흐른 후 이 곳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결혼을 하고, 새로운 꿈인 UX리서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나름의 의미있는 성취의 과정에 대한 수줍은 공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많지 않은 글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께 공감과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제 글솜씨가 뛰어나다거나 저에게 잘난 구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샌프란시스코라는 이 작지만 굉장한 도시에 살면서 만나게 된 인연과 이 곳이 제공하는 경험들이 여러분들이 고민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어떤 것들과 맞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4년 전, 저는 서울에서 졸업을 하고 원하는 분야에서 좋은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한 회사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취업의 기쁨도 잠시, "의미있는 일을 하며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삶을 살고싶다"는 생각으로 쉽게 잠 못 이루는 나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이 두려움인지 혹은 설레임인지, 공허함인지 아니면 넘치는 열정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이러한 고민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직장인으로서, 어른으로서의 첫출발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겪어나가야만 하는 숙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취업"이 결승선이라고, 성공의 시작이라고 믿었기에 그 깨달음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었죠. 그 숙제를 어렴풋이 깨닫자마자 샌프란시스코에 왔기에, 그와 관련된 일련의 질문과 고민들은 새로운 문화와 언어, 환경 속에서 몇 배로 확장되어 제 뿌리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해외취업, 유학, 이민은 종종 인생의 여러 고민들에 대한 솔루션으로 제시되곤 하지만, 사실 그러한 결정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시작점이지, 결코 도피처나 최종 해결책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혼자서 일하기 위해 자주 찾곤 했던 Jane on Fillmore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낯선 공간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준비를 하고 있건, 아니면 현재의 공간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건, 저는 우리 모두가 꽤 비슷한 종류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글쓰기의 공백이 있던 지난 1년은 특히 "앞으로 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면접과 발표에서 좀더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나의 생각을 어필할 수 있을까?" "외국인으로서의 부족한 영어실력을 어떠한 다른 강점으로 무마시킬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을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했던 시기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제 인생의 첫 미국생활은 아니었지만, 이미 꿈을 이룬 사람들 혹은 꿈에 가까이 다다른 비범한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모이는 곳이 이 곳, 실리콘밸리이기에, 더 그러한 고민들이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빠르게 승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고급 인재의 밀집은 높고 치열한 경쟁을 의미하는 동시에 더 많은 배움과 영감의 기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일명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우는 구글, 애플, 에어비엔비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들도 그들이 속한 조직도 저 멀리에 있는 비범한 그 무엇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강점을 겸손하고 성실하게 활용할 줄 아는 개인들과 그러한 자산을 혁신으로 극대화시키기 위한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집단들일 뿐임을 금방 배우게 됩니다.  


Slack's Headquarter in San Francisco


커피와 맥주

누군가 저에게 지난 3년 반의 이곳 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저는 "커피와 맥주"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보다 한 단계 먼저 커리어를 개척해가는 어떤 낯선 사람과의 대화이건 (인포메이션 인터뷰), 친구를 사귀기 위한 네트워킹 이벤트이건, 카페에서 홀로 랩탑 스크린위에 커버레터를 써내려가는 주말이건, 커피, 혹은 맥주는 저의 용기의 촉진제이자 시행착오의 동반자였습니다. 이제는 커피나 맥주를 조금이라도 과하게 마시면 위경련이 바로 날 만큼 신물나도록 마셔서 휴식이 필요한 지경이니까요. (아, 그리고 물론 샌프란시스코만큼 커피와 맥주를 사랑하는 도시가 또 없긴 하죠.) 


조금 더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커피와 맥주"는 네트워킹 중심의 미국의 커리어 문화와 (네트워킹 이벤트에는 주로 다과가 제공되죠), 공짜 커피와 맥주를 무한 제공하는 실리콘밸리의 유연한 오피스 문화, 그리고 노마드처럼 이 카페 저 카페를 일일 오피스삼아 오고 가는 이곳 인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상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커피와 맥주'라는 제목으로 연재될 저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을법한 20, 30대의 고민이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제시되고 해소되어 가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위에서 잠깐 언급한 인포메이션 인터뷰에 대해서 나눠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All Photos Taken by Juwon 

*커버이미지: Linkedin San Francisco Building 



[Coffee & Beer] in 커리어테라피

우리 모두 가지고 있을법한 

20,30대의 고민이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제시되고 해소되어가는지에 대한

고찰을 공유합니다 :) 

독자님과의 소통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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