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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14. 2020

밀포드 트레킹: 빗속에서 가파른 정상을 향해(Day3)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굵은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혹시 비가 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였다. 일단 배낭을 챙겨야겠다. 5~6개월짜리 미국 장거리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얻은 팁대로, 까만 대형 쓰레기 비닐봉지를 먼저 배낭에 집어넣은 후, 물건을 모두 그 안에 넣고 동여맸다. 그럼 비가 암만 많이 와도, 배낭 안 물건들이 비에 젖을 염려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닐봉지가 얇기 때문에 쉽게 찢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예비로 한 개정도 더 준비하면 좋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비닐봉지를 안에 짐을 챙겼다. 옆쪽에서는 다소 두꺼운 노란색 비닐봉지를 이용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일행 모두 레인 코트를 꺼내 입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내 아내 배낭은 가볍고 좋은 제품인데 방수커버가 없었다. 안에 비닐봉지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행 중의 한 분이 보더니 그분의 배낭 방수커버를 내 아내에게 건넸다. 배낭이 젖으면 무거워져서 힘들다고 했다. 그분은 배낭에서 판초우의를 꺼내 입으셨다. 어젯밤에 나에게 일회용 밴드를 건네주신 그분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오늘 걸어야 하는 코스는 밀포드 트랙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산장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오르막이었다. 산장에서 맥키넌 패스가 있는 정상까지의 해발 고도 차이는 500m가 넘고, 3-4시간 동안 15 개의 지그재그식 길 (switchback)을 걸어야 했다. 거기에다 비까지 오니 더욱 힘든 코스가 되었다.


비는 쉼 없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 비 맞고 걸을 때는 마치 억지로 숙제하는 학생의 기분이었다. 옷은 축축해지고, 신발은 젖기 시작하고, 안경에는 비가 떨어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걸어야 할 뿐. 대략 30분쯤 지나자, 이제는 비속에서 걷는 것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고 익숙해졌다. '이왕 베린 몸' 처음에는 조심조심하면서 길에 있는 물을 피하면서 걸었으나, 이제는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밟고 지나갔다. 안경에 맺힌 물방울 사이로 보는 능력도 새로 생겼다. 


고도는 점점 높아졌다. 지그재그 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쉬고 싶어도 앉아서 쉴 곳이 없었다. 비가 덜 내리는 나무 밑을 찾아서 잠깐 서서 쉴 수밖에 없었다. 등산화 안의 양말은 흠뻑 젖었다. 레인코트를 입었는데도 안에 입은 티셔츠가 일부 젖은 게 느껴졌다. 기운을 회복한 후에 출발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옆으로 보이는 산 꼭대기에서는 10 여개의 하얀 물줄기가 계곡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Oys9ErQ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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