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믿게 되는 이유
어릴 때 나는 정말 말을 안 들었다.
엄마가
절대 가지 말라고 했던 강에도
동네 아이들을 모아
함께 다녀오곤 했다.
집에 돌아오면
옷은 세탁기에 벗어 넣고,
온 바닥에 물을 뚝뚝 흘려놓은 채
모른 척 서 있던 아이였다.
엄마가 “어디 갔다 왔어.”
하고 물으면,
안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친구들과 놀다
아랫입술이 터진 채로
아무렇지 않게 집에 돌아온 날도 있었다.
나중에 보니,
스무 바늘이나 꿰매야 할 상처였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사고도 많았고
그만큼 혼도 많이 났다.
혼나고, 울고, 숨이 막히고,
방에 들어가 혼자 앉아 있으면
울음이 손끝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매트리스에 주먹을 몇 차례 내려 얹었다.
그런데 늘,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방문 밖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ㅇㅇ, 이제 나와.”
그 말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그렇게 화가 나 있던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방문을 열고 나갔다.
눈은 퉁퉁 부어 있고
숨은 아직 고르지 않은데,
몸은 먼저 엄마 쪽으로 걸어갔다.
잘못함을 바로 잡고 난 마지막에는
항상 나를 안았다.
“엄마는 ㅇㅇ를 많이 사랑해.”
그 말을 들으면,
조금 전까지
많이 맞고 울었던 기억이
이상하게도 흐릿해졌다.
저녁을 못 먹고 혼났던 날이면
흰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
한 숟갈은 나에게,
한 숟갈은 동생에게
번갈아 먹였다.
그 장면은
매를 맞던 기억보다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혼나고, 울고,
다시 불려 나가 안기고,
밥을 받아먹고,
울음을 멈추고,
평온해졌던 시간들.
한동안
엄마와 아빠가 자주 싸웠다.
밤이 깊어질수록
낮게 깔린 목소리는 커졌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그 소리는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어린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다.
이러다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잠이 오지 않아 밤을 다 새우고,
아침이 오기 전 푸른빛을 뚫고
신발장 앞에 서 있었다.
그곳을 막고 서 있으면
아무도, 정말 아무도
이 집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방 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몸이 먼저 굳었다.
엄마가 정말 나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한 번 세게 쳤다.
앞에 여자는
눈높이를 내게 맞추고 앉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ㅇㅇ야,
엄마는 절대 너를 두고 어디 가지 않아.
약속할게. 잠깐 나갔다 오는 거야.
엄마 믿어. 어서 들어가서 자.”
문을 막고 서 있던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엄마는 정말 돌아왔다.
대신
비슷한 밤들은 이후에도 몇 번 더 있었고,
불안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문 앞까지는 가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답답해 보이고,
조금은 미련해 보인다.
왜 그렇게까지 믿느냐는 질문은
이내
나 자신이나 다른 이를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어쩔 땐,
오로지 믿게 된다는 건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내주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한 번쯤은
떠나지 않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본 적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믿음은
물러서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날 그 아이처럼,
돌아오는 발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에게
남는 마음이 아닐까.
[ 작은 메모 ]
그 믿음은,
우리 엄마가
더 이상 나를 신발장 앞에
세워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몇 번을 혼내도
결국은 다시 불러내
안아줄 거라는 걸
몸으로 알게 해 준 믿음이었다.
이 글이
각자 다른 색의 믿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지금 지키고 있는 그 믿음이
‘응, 그럴 수 있어’라는 말로
조용히 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