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들에게서는 돈 냄새가 난다. 그것은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다. 시신경 전체가 호강하는 느낌. 내가 <AKIRA(아키라)>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때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역사상 최고 퀄리티를 자랑하는 이 애니메이션의 개봉연도는 1988년. 일본 경제의 버블이 끓어 터지기 직전 휘황찬란한 호황기가 첨단을 달리고 있을 때다. ‘잃어버린 10년’ 이전의 좋게 말하면 찬란했던, 나쁘게 말하면 흥청망청이 전부였던 이 시기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문화 요소가 있다. 바로 ‘시티팝(City Pop)’이라는 음악 장르다.
‘시티팝’은 1970년대부터 유행했던 일본 팝의 한 갈래다. ‘도시적인 삶’과 ‘휴양지의 삶’을 소재로 삼는다. 야자수, 칵테일, 해변에서의 사랑, 오픈카, 네온사인이 스쳐 지나가는 도쿄의 고속도로 같은 키워드들이 주는 느낌을 신디사이저와 펑키한 베이스 라인위에서 느릿하게 뒤섞으면 얼추 시티팝의 문법이다. 호황기의 분위기가 그대로 음악에 녹아 낭만적이고, 낙천적이며, 끝없이 낙관적인 느낌을 낸다. 버블 경제의 풍부한 자본력으로 높인 퀄리티까지 더해져 시티팝 음악은 일본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한국에서도 시티팝은 크게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유재하의 ‘지난 날’, 나미의 ‘인디안 인형처럼’,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같은 곡들이 시티팝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적 껍데기는 레게쯤으로 분류될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가장 일본의 시티팝에 가까워 보인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배경으로 삼는 곳은 대단히 자연스럽게도 해변이며, 곡 발표 시기 또한 한국 경제가 IMF로 침몰하기 직전인 1994년이다. ‘칵테일 사랑’은 행복했던 당대의 분위기에 응답하는 곡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칵테일 사랑’의 화자들은 대단히 낭만적이다. 마음 울적한 날엔 거리를 걷는 것은 기본이요,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보거나, 한편의 시를 찾아 전시회장도 가보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지를 쓰고 싶어 한다. 그들의 순수한 낭만은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귀에 속삭이며 잠을 깨워주고 ‘후리지아 꽃향기’를 내게 안겨줄 정도의 감성을 가진 이상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호시절의 낭만은 곧 힘을 잃고 사라진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한국은 ‘IMF 외환위기’로 각각 그 거품이 꺼졌기 때문이다.
재밌는 분석이 있다. 동아일보의 한 기사(“쿨하게 돌아왔네… 그 시절 ‘시티팝’”)에 따르면 ‘아베노믹스’로 인한 경기 회복 분위기를 타고 일본에서 시티팝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일본의 유행이 다시 한 번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소개한다. 실제로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7월호―Welcome Summer’는 전형적인 시티팝 사운드를 차용하고 있으며, 여타 뮤지션들의 곡에서도 어렵지 않게 시티팝의 분위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 시티팝이 ‘힙스터’들 사이에서 소비되기 시작한 것도 벌써 2017년도 여름의 일이다.
그 해 여름, 빈지노가 육군에 입대하던 당일. 재지팩트(빈지노와 시미 트와이스로 구성된 1MC 1프로듀서 조합의 팀)는 앨범 [Waves Like]를 발표한다. 수록곡 '하루종일'은 재수입된 시티팝의 흐름 위에 있다. 그러나 빈지노가 누구인가. “똑같은 거 하려면 굳이 밤을 왜 새? (Flexin')” 빈지노는 언제나 ‘새로움’을 갈구하고 변화하는 아티스트다. 단순히 새로운 것을 빨리 베껴와 소화 덜 된 채 내놓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확실히 빈지노 버전이 되긴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시티팝’이라기엔 가사의 스케일이 좀 많이 작아진 느낌이다.
‘하루종일’은 빈지노가 일에 지쳐 집에 돌아와, 혼자 몸을 욕조에 담그고 하루 종일 반신욕을 하며 심신을 회복한다는 내용의 곡이다. 나른하고, 나른하고, 나른하다. 그러나 이 곡은 단순한 힐링송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뮤지션 Anri의 'Last Summer Whisper'을 샘플링해서 만들어진 곡이라는 사실이다. 1982년 발매된 시티팝 장르의 곡으로서, '지난 여름 날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지나간 해변가에서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내용을 담은 아련한 사랑 노래다.
멋대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지친 빈지노는 곡 안에서 욕조에 잠겨 반신욕을 하고 있다. 하루종일. 그는 '지난 여름 날의 속삭임'을 떠올리며 그녀와의 해변가에서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추억할 여유 따위 없다. 그저 “연체동물처럼 나의 몸을 늘려 젖어 불안한 담배를 입에 물려 쭈그려서” 있을 뿐이다. 그는 일요일에서야 “그 누구도, 잡념도 초대”는 못하고, “오직 나와, 선물로 받은 촛대”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혼자 좁은 욕조 안으로 숨어 들어온 것이다. 무기력과 공허가 이 곡의 전반적인 정서다.
앞서 인용했던 기사가 지적하지 않은,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일본의 시티팝 열풍은 호황기의 분위기를 다시 실현할 수 있다는 실체가 있는 희망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분위기를 지지하는 실체가 없어 공허한 환상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불려나온 '시티팝'은 기성세대에게는 좋았던 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테다. 하지만 그 시절의 향기 비슷한 것도 못 맡아본 오늘날의 세대에게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사치 정도의 감각이 아닐까. 그렇다면 빈지노가 그랬듯, 우리는 그저 각자의 욕조 속으로 숨어들어 본 적 없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곳은 여전히 ‘헬조선’이기 때문이다.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시티팝 속에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버블 경제 시절의 흥청거림과 낙관적인 분위기가 녹아 있다. 반면 오늘 날 시티팝의 이미지가 이렇게 왜소해진 상태로 다시 소환된 데에는 오늘 날의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음악이, 우리 세대의 마음만큼이나 가난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버블 경제 시절 좋은 것들에게서 돈 냄새가 난다면, ‘헬조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과연 우리는 '좋은 것' 비슷한 거라도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게 재지팩트의 '하루종일'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