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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비전공자여서 부동산 회사에 합격하게 된 사연



평범한 대학에 비전공자로 부동산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나면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취준생이라면 당연히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마련이다. 혹시라도 잘 되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 말이다. 사실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서류 통과 소식이라도 듣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그것도 부동산 회사에서 말이다. 그나마 관련 있는 무역 관련 회사들은 다 떨어지는데 마음을 비우고 지원했던 부동산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였다. 아무튼 수십 통의 입사 지원서를 내고 면접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터라 그 기쁨은 더욱 컸다. 당시 학기가 끝나지 않은 11월 이어서 졸업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휴학과 군대, 그리고 계절학기를 지내면서 7년 동안 대학에 있었으니 빨리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부동산에 대해서 일도 몰랐다. 면접 준비를 위해 회사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벼락치기 부동산 공부를 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이미 제출했기에 더 이상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성실함을 바탕으로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 밖에 없었다.

인터뷰 장소는 여의도였다. 그전까지 나는 여의도에 가본 일이 없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여의도는 놀러 갈 만한 곳이 아니었다. 금융가로 회사원들이 많은 곳이지 일반인들이 자주 가는 장소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IFC도 있고 여의도 공원과 한강에서 축제도 많이 해서 많이 좋아졌지만 2004년 도에는 그냥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원래 서울에 살았는데 군대를 제대할 무렵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 말이 의정부지 새로 생긴 신도시라 교통이 불편했다. 면접 준비를 위해 길고 긴 여정을 떠나야 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나는 약속 시간보다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일찍 도착해서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면 긴장감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얼마 걸어가니 드디어 내가 면접을 볼 회사가 있는 건물이 보였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인사팀 담당자분께서 대기 장소로 안내를 해줬다.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다른 면접자들은 없는듯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인사팀장님으로 보이는 분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었다. 긴장도 되고 어색하기도 해서 회사와 면접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일찍 와서 기다리던 나는 그렇게 짧게나마 회사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다행히 친절하게 잘 대해 주셨다. 조금 말을 하고 났더니 긴장감도 해소되는듯했다.

인터뷰 시간이 다 되 가자 면접자들이 한두 명씩 도착했다. 면접장에는 5명씩 들어갔고, 인터뷰 인원은 총 10명이었다. 미리 기다리면서 인사팀장님에게 얻은 정보로는 2명을 뽑는 것 같았다. 경쟁률이 5:1 이었다. 20% 면 생각보다 높은 확률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드디어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나와 함께 들어간 5명이 각자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대부분 좋은 학벌에 부동산 전공자가 대부분이었고 석사도 있었다. 어떤 분은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경영했던 실무 경험까지 있는 분도 있었다. 나만 전혀 관계없는 딴 나라 사람이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하면서 성실한 태도와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 최선의 답변을 하면서 심사하시는 분들 과도 지속적으로 눈을 마주쳤다.

심사 위원 중에는 젊은 여자분도 있었다. 알고 보니 영어 인터뷰를 위해 들어온 대리였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이번 채용 인원은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 소유의 부동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동산 지식을 겸비하고 영어까지 해야 된다니 점점 나와는 멀어지는 듯했다.

사실 비전공자인 나는 부동산 관련 질문에는 크게 임팩트 있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외에 회사 생활과 향후 비전에 대한 대답을 할 때는 소신껏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뻔한 답변이었지만 성실한 태도와 내 성품을 심사자분들이 알아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부동산 회사에서 면접을 끝이 났다. 이리저리 비교해 보고 같이 온 면접자들과 대기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가망성은 점점 낮았다. 부동산 전공자에 실무 경험까지 있는 중고 신입분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나마 가졌던 작은 희망을 버리고 다시 취준생 모드로 돌아갔다.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부동산 회사로부터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말도 안 되는 스펙으로 부동산 회사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쁨은 더욱 컸다. 그렇게 나의 취업 스토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우연히 검색하다 회사를 찾았고 곧바로 이력서를 제출해서 전공자들을 제치고 취업을 했다. 취업 과정을 듣고 보면 정말 운이 좋았다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회사 입사를 위한 건강검진을 마치고 며칠 기다리다 첫 출근을 했다. 나는 자산 관리팀에 배정되었다. 새로 수주한 외국계 부동산 투자회사의 부동산 자산관리를 하는 업무였다. 해당 물건은 조금 특이했다. 전국에 흩어진 38개 빌딩들을 한 개의 펀드로 묶여 있었고 우리 팀은 그 물건에 대한 자산관리를 하는 게 주 업무였다.

당시 나와 함께 합격한 분이 1분 더 있었다. 그분도 같은 팀 소속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운 좋게 마음을 나눌 직장 입사 동기도 있었다. 아무튼 합격을 했으니 마음이 홀가분 해졌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 자리에서 팀장님께 어떻게 내가 합격했는지 물어봤다. 아무래도 내가 합격한 게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정말 궁금했다. 왜 나를 뽑았는지....

그분이 말씀해 주신 내가 합격한 이유는 2가지였다.

1)     이번에 새로 수주한 부동산은 전국에 흩어진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으로 기존과는 다른 관리 방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했다. 부동산 회사에는 이미 부동산 전공자가 많으니 다른 전공이라도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생각이었다.

2)     기존과 다른 방식의 관리가 필요한 외국계 투자회사의 부동산 포트폴리오라서, 새로운 지식 습득이나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을 뽑았다. 즉, 돌발 업무도 많을 텐데 이에 잘 적응할 것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나와 함께 합격하신 분도 좋은 학벌이었지만 부동산 전공자가 아니었다.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요인을 찾아보면 부동산 회사에서 비전공자를 찾는 프로젝트가 있었고, 마침 운 좋게 비전공자가 지원해서 합격을 한 것이었다.

전공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회사 생활이 적응된 뒤에 인사팀장님께도 같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면접장에 일찍 도착해서 회사에 대해 질문을 하는 태도가 보기 좋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일찍 도착해서 준비하는 모습과 회사에 관심을 갖는 태도가 합격에도 조금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냥 정시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뷰에 응했다면 아마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취업 이야기가 장황했지만 내가 비전공자로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태도밖에 없다. 지금까지 부동산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진 좋은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일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에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신경을 쓰는 일은 중요하다. 무언가를 바라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런 태도를 갖고 있으면 바라지 않아도 좋은 일이 생겨난다고 나는 믿는다.

내 이야기를 듣고 분명 화가 날 만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떨어지는데 너무 쉽게 합격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도 사실이다. 나는 그런 점이 일종의 열등감으로 작용해서 취업 후에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합격한 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본다.

생각 나눔 :
무엇보다도 내가 비전공자로 부동산 회사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궁합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뽑아준 팀장님께서는 내가 회사를 퇴사할 때까지도 나를 좋게 평가해 주셨다. 실력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할 사람과는 불편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점은 어디까지나 첫인상이나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품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을 봤을 때 느낌으로 충분히 전달 가능하다. 

특히, 부동산 업무를 하다 보면 서로 간의 믿음이 중요하다. 회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보를 다루고 모든 일이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좋은 품성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동산 업계에서 일하는데 큰 강점이 된다. 내가 비전공자로 부동산 회사에 합격한 것은 어찌 보면 그저 ‘운이 좋아서’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운도 도전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일반적인 설명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런 일은 나처럼 취업을 준비할 때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일을 준비하다 있을 수도 있다. 그 시기를 예상할 수도 없지만 그런 요행을 바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생각했던 것을 실행하거나 시도하다 보면 그런 운도 따르는 것이고 어찌 되든 결과도 나온다. 그래서 부동산업계로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지원하라고 조언한다. 나중에 자격증이 준비되면, 공인중개사에 합격하면 도전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그때가 되면 상황은 또 변하고 시도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을 때 바로 실행해 보는 게 최선이다. 지금 나온 채용 공고의 포지션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라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서 나의 전공이나 현재 상황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냥 체념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지금 당장 시도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http://www.airklass.com/k/EXPC9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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