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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Mar 15. 2020

"브랜딩이 왜 필요하죠?"라는 질문에 보낸 회신

[콘텐츠, 커머스, 마케팅, 브랜딩]

콘텐츠(Content)로  밥벌이를 하자면 마케터나 크리에이터 혹은 그 둘의 역할을 다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마주하거나 그것들의 주체가 되곤 했다.


브랜딩은 연애의 감정과 같다.


1. 없어도 살지만 그만한 게 없다

- 대체(代替)의 어려움   


2. 좋은데 얼마나 좋은지 정량화가 어렵다

- 측정의 어려움


3. 돈을 써야 하지만 얼마나 써야 할지 모른다

- 예측의 어려움


4. 돈을 썼지만 건별 ROAS는 모른다

- 계산의 어려움


특히 이런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사치앤사치(Saatchi&Saatchi)의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가 일찍이 '러브마크(Lovemark)'를 외친건가. 


언젠가 전사의 전략과 자원을 놓고 유관부서와 나누던 얘기가 떠올랐다. 나는 자원을 들여 콘텐츠(Content)를 만들어 사업 가치를 높이는 역할이었다. 내 일은 시장에서 비교적 새로운 트렌드였고, 신사업과 마케팅의 개념이 뒤엉켜 있었다. 현업이 아닌 스탭 부서는 자원배분 측면에서 공감대가 다를 수 있었다. 그래서 '브랜딩'의 가치를 연상시키며 설명하려 했다. 브랜딩은 보편적으로 가치와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의 질문이 들어왔다.


브랜딩이 왜 필요하죠?

'나랑 싸우자는겐가'


질문을 듣고 처음에 든 생각이다. 아무리 전략 스탭이라지만 학력과 업력이 뛰어난 리더인데 브랜딩이 왜 필요한지 모를리가 없으니. 그러나 그는 진지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신사업과 미래 성장 동력을 논의하다가 브랜딩의 가치까지 닿으니, 문득 본질적인 궁금증과 마주했나 보다. 마치 뉴튼이 사과는 왜 아래로 떨어지나를 스스로 물었듯이 그도 그랬나 보다. 내가 bias 가 심한 인간이라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뭘 해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당황해 횡설수설 답했다. 그날 밤 내 잠자리에선 먼지가 많이 날렸다. 이불킥을 격하게 해서다. 그 다음 날인 주말 아침 곰곰이 생각했다. 내 대답은 왜 어수선 했으며, 그게 그렇게 또 억울할 일인가.


억울할 일이었다. 좋은 질문인데 좋은 대답을 못했다. 사전적 의미도 싫었고 추상적인 답도 싫었다. 나만의 가치 정립이 아니라 적당히 썰을 푸는 데 그쳐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쓴 메일 회신이다.  



안녕하세요.

실장님이 어제 좋은 질문을 주셨는데 저는 어수선하게 답한거 같습니다. 질문만큼 좋은 대답을 하고파서 굳이 다시 묻지 않으셨지만 정리해 봤습니다. 상상의 문답 형식으로 썼습니다.


-


Q : “브랜딩은 왜 필요하죠?”


A : 뉘앙스를 만들려고




Q : 뉘앙스가 왜 중요하죠?


A :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니까




Q : 뉘앙스가 왜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죠?


A : 사람의 의사결정 알고리즘은 휴리스틱(heuristic) 을 따르므로




Q : 사업과 마케팅의 비용 관점에서도 해당하나요?


A :

우리 사업이 휴리스틱과 멀면 브랜딩 투자 낮아도 됨

우리 사업이 휴리스틱의 영역과 많이 겹치면 브랜딩 투자 높여야 함




Q :  사업에서 휴리스틱이냐 아니냐는 상호배타적인가요?


A :

적어도 이커머스는 아니다.

휴리스틱의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뒤섞여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비중과 단계가 다를 뿐이다.



[이하 첨언들]


1. 쿠팡은 체감으로 시작해 휴리스틱으로 묶는다.  


쿠팡 같은 사업의 영역은 고객 입장에서 실시간 실측의 경제성이 핵심이다. 콘텐트에 대규모 비용을 투입하는 브랜딩이 최우선은 아니다. 신뢰를 담보하고, 구색이 많고, 가격이 싸고, 배송이 빠른게 우선이다.(이커머스 비즈니스의 핵심 가치와 계층 구조)


다만 객관적 체감을 휴리스틱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업도 브랜딩으로서 투자했다. ‘로켓배송’의 브랜드화, 깨끗하고 정성스런 배송의 뉘앙스를 심은 ‘쿠팡맨’ 페르소나는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배송=쿠팡'의 상(像)을 새겼다. 이는 휴리스틱의 영역이고 그래서 브랜딩 투자다. 이로써 후발주자가 쿠팡의 배송보다 빠르고 깨끗해도 이 뉘앙스를 뒤집기에는 많은 시간과 리소스가 들어가야 하는 허들이 되었다.



2. 휴리스틱과 브랜딩의 투자는 배분이 핵심이다.  


이렇듯 쿠팡 하나만 봐도 하나의 사업 안에 휴리스틱(브랜딩) 개입이 단계에 따라 다른 리듬으로 배분된다. 마켓컬리도 뒤섞여 있다. 마켓컬리는 콘텐트로 다져진 뉘앙스로 브랜딩 해 시작했지만, 구매 최종 단계에서 가격과 배송이 밀릴 순 없었다. 그 단계에선 실시간 실측의 경제성과 체감이 자신들의 브랜딩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투자를 한다.


쿠팡은 체감의 구현으로 시작해 휴리스틱의 영역으로 소비자의 인식을 이끌었다면, 마켓컬리는 그 반대의 흐름이었다. 그들의 MD를 콘텐트로 차별화하며 시장과 소비자의 인식에 진입했고, 그 흐름의 끝이 가격과 배송에서 우월한 경쟁사로 귀결하지 않게끔 물리적 체감(새벽배송)에 투자했다. 브랜딩에 먼저 투자하고, 그에 대한 소비자 기대값을 증명하는 실시간 실측에 투자를 이어감으로써 휴리스틱을 형성했다.



3. 이커머스는 특히 휴리스틱이 뒤섞여 있다.


이렇듯 휴리스틱을 완성하려는 브랜딩 투자는 하나의 사업에서도 단계마다, 사업마다, 전략마다 다르게 뒤섞인다. 무신사로 예를 들면, 무신사가 콘텐트로 시장(소비자&입점사)에게 뉘앙스를 다져놨다 해도, 정작 같은 옷을 더 비싸게 팔거나 느리게 배송하면 안되는 이유다.


- 무신사는 브랜드와 패션 콘텐트에 투자를 하며,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기대감을 줬고,(휴리스틱의 설계)

- 소비자에게는 구색과 가격, 판매자에게는 트래픽과 매출이라는 실시간 실측으로 그 기대감을 증명한다.(휴리스틱의 완성)

- 이를 테면 콘텐트로 기대감을 주며 입점사로부터 단독, 한정, 최저가를 확보했고,

- 이로 인해 소비자로부터 ‘여기가 제일 많고, 싸고, 빠르다'는 체감을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트래픽과 판매량을 얻었고, 이는 다시 입점사로부터 구색과 최저가를 확보하는 지배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 모티브의 중심과 시작이 콘텐트였다. 콘텐트로써 브랜딩의 가치를 심고, 경제적 체감으로써 브랜딩의 가치를 증명하면서 휴리스틱 루프를 완성하는 타입이다.




[요약]


1. 브랜딩은 휴리스틱을 점유하려는 투자


2. 이커머스는 휴리스틱과 실시간 실측이 뒤섞인 사업


3. 휴리스틱은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적용되며,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적 순환구조


4. 가격비교, 종합 카테고리 이커머스는 <느낌의 뉘앙스>가 아니다. <체감의 경제성>이 고객의 의사결정을 지배한다. 실시간 실측의 영역이다. 따라서 휴리스틱의 우선 순위가 낮다. 하지만 필요하다.


5. 취향기반, 카테고리 킬러 이커머스는 휴리스틱의 우선 순위가 높다. 다만 소비의 마지막 단계인 구매의 순간에서 동일 상품인데 비싼 가격으로 나쁜 경험을 주면 독이 된다. 배신감이 두배가 되어 나쁜 휴리스틱이 형성되어서다.  


결국 브랜딩과 콘텐트의 투자 여부나 규모는,


- 우리는 휴리스틱이 얼마나 중요한가?

- 우리의 휴리스틱에 콘텐트는 얼마나 중요한가?


_가 판단 기준이다.



-


제 생각도 정갈하게 정리하는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어제의 대답이 아니라 오늘 이 메일로 제 대답을 업데이트 해주시길 바라며 :)


고맙습니다.



/ 김현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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