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사랑하는 그, 다른 사랑을 기다리는 나
"사랑해... 이제야 말하지만. 너한테 이 말하는데 10년 걸렸다."
"..."
"나, 이젠 너를 떠나고 싶지가 않아. 니 옆에 있고 싶고. 항상."
"..."
사랑이란 감정은 지독히도 제멋대로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를 향해선 불에라도 던져진 듯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에 휩싸이지만 나만 쳐다보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낯선 사람들처럼 따뜻한 웃음 한 줌도 지어지지 않는.
10년이라고 한다. 그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이. 왜 그걸 이제야 말하는 걸까? 그리고 나라는 인간은 또 얼마나 둔감하고 멍청하길래 여태껏 그걸 몰랐던 걸까? 둔하고 눈치 없는 자신으로 인해 길고도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을 그를 보며, L의 입에선 휴- 하고 탄식이 나왔다. 덩치 큰 이 남자의 수줍은 고백이 왜 이리도 가슴을 짓누르는 걸까. 이런 고백받으면 기뻐야 하는 게 아닌가. 행복하고, 신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L은 슬펐다. 10년 만에 전해진 그의 고백 때문에. 자신만을 사랑해 준 그 남자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어서.
"커피 맛이 참 좋네. 너랑 커피 마시니까 좋다."
"...미안하다. 갑자기."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중 반은 남자라지만. L이 기다리는 건 단 한 명의 남자다. 그 남자. 이름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텅 비어있는 그녀의 마음일지라도, 다른 남자는 들어올 수가 없다. 10년을 기다린 그 남자라도, 그건 안 된다.
Lately, I've had the strangest feeling with no vivid reason here to find
Yet the thought of losing you'd been hanging around my mind...
"스티비 원더는 의외로 슬픈 노랠 많이 불렀어. 그 사람, 참 슬픈 눈을 가졌을 거야. 선글라스 때문에 보진 못했지만"
“...여전하구나, 넌. 내가 처음 널 본 그때랑 똑같아.”
덩치 큰 바보와 L은 그렇게 묵묵히 식어버린 커피를 마신다. 어느새 내리기 시작한 눈은 카페의 커다란 창을 가득 메우고 거리를 하얗게 덮는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마주 보는 사랑은 왜 이리도 힘든 걸까. 왜 사람들은 누군가 떠나간 길을 바라보며 바보처럼 사는 걸까.
I'm a man of many wishes, hope my premonition misses
But what I really feel my eyes won't let me hide
'cause they always start to cry 'cause this time could mean goodbye.
세상 어딘가엔 L을 위한 남자가 있을 거다. 그는 L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을 것이고, 이기적인 사랑으로 외롭게 하지도 않을 거다. 그래서, L은 지금도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동안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바보와 이렇게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흰 눈 내리는 창 밖 어딘가를 보며.
사랑은 지독히도 제멋대로인 감정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그에게만 따뜻하게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