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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Feb 23. 2018

“사랑은 인간의 전유물인가?”

실체實體 없는 존재와 나누는 실재實在 사랑

2010년 들어 대한민국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등장했다. 바늘구멍 취업에 불안정한 일자리, 갚아야 할 대출에 평생 벌어도 갖기 어려운 집 한 채, 도저히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청년의 현실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사랑이라곤 하기 어려운 상황에, 한편에선 사랑 타령이다. 그것도 로봇과 말이다. 이것은 사랑을 상실한 인간의 몸부림인가? 아니면, 인간이 되고자 사랑을 갈구하는 1로봇의 몸부림인가?

1.로봇: 글에서는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안드로이드(android, 인조인간), 영화 <로보캅>과 같은 사이보그(cyborg, cybernetic organism, 반(半)인간, 반(半)기계),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리플리컨트(replicant, 복제인간), AI 스피커 등 물리적으로 형체가 있는 것과 OS (운영체제)나 챗봇(ChatBot), 웹 크롤러(Web Crawler)와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도 광범위하게 포함하여 이야기 하였다.


로봇, 인간의 피조물 혹은 또 다른 인간


2016년 이세돌과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은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었다. 이후 인간은 AI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AI와 로봇, 빅데이터 등 거센 파도로 두려움을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세계 최초로 여성 AI로봇 ‘소피아 Sophia’가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인 카렐 차페크(Karel Capek, 1890~1938)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 1920)에서 ‘로봇 Robot’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래, 한 세기가 안 되어 로봇은 인간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로봇이 꼭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와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인간의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했다. 때론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지만, 대부분은 인간과 로봇의 지배 관계의 갈등이거나, 2‘로봇 3원칙’에 대한 고찰, 혹은 과학기술의 지배를 받는 테크노크라시 technocracy에 대한 경계가 주로 있었다.

2.로봇 3원칙: 소설가이자 화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992)는 소설 '아이, 로봇(I, Robot, 1942)'에서 '로봇 3원칙'을 명시했다. ①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②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오늘날 테크놀로지의 관념은 과거와 달리 로봇을 좀 더 친근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로, 인간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모습으로, 대중문화의 중요한 오브제로. 그래서 우리 인간은 로봇을 삶의 일부로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AI로봇 소피아는 “인류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라며 UN에서 연설하기에 이른다. 요즈음의 AI 로봇 영화에서는 로봇과 인간의 소통, 교감, 심지어 로봇과의 섹스까지, 인간끼리의 관계에 로봇이 대입되고 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 합리적인 사랑을 하다


최근 인간과 더욱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로봇들이 생겨나고 있다. 초보적 수준이지만 AI스피커, 홈ioT는 반려동물과는 다른 역할로 인간과 소통한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소통을 넘어, 로봇이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여기 영화적 상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 인간과 컴퓨터 운영체제(OS)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올해의 가장 독창적인 로맨스'라는 찬사를 받은 영화 <그녀>(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다. 아내와는 별거 중으로,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AI운영체제’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그녀로 인해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점점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과 채팅을 할 때, 사실 우리는 상대방의 프로필과 대화하는 행위만으로 상대방이 인간일 거라 전제하고 감정을 나누므로 ‘테오도르’의 사랑의 감정은 수긍이 간다. 그런데 문제는 ‘사만다’이다. 그녀는 ‘테오도르’와 데이트를 할 때부터 자신의 몸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로 조심스레 욕망을 드러내는데, 그와 상상 섹스를 나눈 후에는 급기야 인간의 몸을 빌려 대리만족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서로는 사랑과 질투심, 소유욕까지 인간의 감정을 나누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결국 끝이 난다. 사랑하면 상대방에게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은 자연스레 질투심과 소유욕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사만다’의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또한, 감정을 감당 못 한다며 이혼을 하려는 그의 아내에 비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만다’의 사랑은 매우 합리적이다. ‘난 자기 거면서, 자기 것이 아니야’라는 그녀의 이별 이유마저도 합리적이다.



사랑은 학습인가? 감정인가? 상상인가?


그러면 ‘사만다’는 어떻게 인간과 같은 감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18만 개의 이름을 0.02초 만에 보고 자신의 이름을 정하고, 8,316명과 동시에 대화하고, 641명과 동시에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고성능 OS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3머신러닝 Machine Learning하여 인간의 감정을 학습할 수 있다.

3.머신러닝: 인공지능의 연구 분야 중 하나로, 인간의 학습 능력과 같은 기능을 컴퓨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술 및 기법이다.


그녀는 그렇다 쳐도, ‘테오도르’는 왜 사랑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건 단순히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 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김춘수 시인, 꽃)’ 처럼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 존재를 특별하게 하는 것 이상의 감정이입이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식용 가축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또한, 그녀와 오직 음성으로만 나누는 대화에서 ‘테오도르’의 상상력은 극대화되고 감정은 상승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사만다’의 물리적 형체가 없음은 불필요한 4불쾌한 골짜기 uncanny valley를 겪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으로서의 감정, 남성으로서의 감정에 더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싸구려 성인용 인형(Love Doll)이나 섹스 로봇Sex Robot의 형체였다면 호감도가 금방 떨어졌을 것이다.

4.불쾌한 골짜기: 로봇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해질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유사성이 일정 수준이 되면 호감도가 감소하는 구간이 있다며 1970년 일본의 로보티시스트 모리 마사히로(Mori Masahiro)가 제시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인식에서 공통점을 찾으며 호감이 상승하고, 인간과 같은 존재라는 인식에서 차이점을 찾으며 호감이 하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AI와 인간의 사랑에 대한 해석은 현상학(phenomenology, 現象學)의 창시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지향성’ 개념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에게 어떤 ‘의미 규정’을 부여하는 특성을 가지며, 우리는 그 대상이 아니라 그 의미만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의식에 의한 의미부여 작업이 수행되지 않는다면, 연필은 '필기도구'가 아니라 그냥 나무토막에 불과하다는 개념이다.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어떤 인격체가 아닌 AI운영체제로 의미부여 했다면 그들은 사랑할 수 있었을까?



사랑에 서툰 인간, 로봇에게 사랑을 배우다


올해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18’에 세계 최초로 AI를 탑재한 섹스 로봇이 소개되었다. 로봇과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가? 라는 질문은 여전할 것이고, 로봇과의 교감, 혹은 섹스는 윤리와 도덕의 도마 위에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진부한 논의보다 더 중요한 고민을 할 것을 주문한다.


인간의 사랑은 변하기 마련인데, 사만다는 수많은 사랑을 학습하여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 그리고 떠났다. 우리는 변하는 사랑을 받아들이고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듯하다. 또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지 프로그래밍 된 것인지 고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인간과 로봇의 가장 큰 차이가 감정이라면 감정이 있는 로봇은 인간인가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는 듯하다. 로봇의 감정은 프로그램된 것이므로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호르몬과 뉴런이 있다면 AI는 알고리즘과 빅데이터가 있다. 자기 보존을 위해 우리의 DNA가 있다면, 로봇에게는 시스템이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연결과 접촉을 갈망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그 관계의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마저 피하려 하고 있다. 하여, 사랑에 대한 기억과 정보는 AI로봇에 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배우지 않으면, 인간은 사랑을 학습한 기계에 사랑을 배울지도 모른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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