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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Jan 26. 2018

“마마걸과 특급 효자의 헬리콥터맘 탈출기”

엄마의 세계에서 사는 미숙한 성인들

    TV드라마가 인기 있는 이유를 묻는다면 ‘막장’ 요인을 빼고는 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대개 완소남과 불우하지만 밝고 꿋꿋하고 예쁘기까지 한 여성이 주인공이 되고, 그들과 상반된 입장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악역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 갈등이 어떤 불륜의 형태와 강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소위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완성된다. 




막장의 새로운 구도, 역고부갈등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주 소비층은 주부들이다. 그래서 일찍이 솝오페라 soap opera 라는 말이 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통속극이라 비누회사가 스폰서를 하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불리게 되었던 것. 주부들이 많이 보다 보니 그들의 동질감과 공감대를 얻기 위해, 주부의입장이나 속성을 투영한 배역이 많이 나오기 마련이다.


          여전히 가부장적인 가정과 불편한 시댁, 그리고 자식을 통해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풀어나가는 주부들의 인생사가 그대로 드라마에 나온다. 그래서 주인공은 소위 ‘시월드’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피해의식과 성평등의 한계를 극복하는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식의 캔디 캐릭터에 자식에 대한 욕망과 이상적인 남편상이 투영된 품절남 캐릭터가 버무려진 캐릭터로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며, 조연은 주인공을 공격하는 악역 캐릭터로서 주부들의 분풀이 대상이 된다.


          그런데, 시청률의 덫에서 드라마는 경쟁적으로 자극적으로 되어 간다.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삼각관계, 물질만능주의는 기본, 집단구타에청부살인까지 수위는 높아진다. 비윤리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욕하지만, 현실 세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희망은 드라마의 대결 구도에서 주인공이 승리하는 것을 봐야만 해소된다. 


          최근 이러한 공식을 벗어난 이야기로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다. MBC 주말드라마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는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고부갈등’이 아닌 장모와 사위 간의 ‘역고부갈등’이 헬리콥터맘과 마마걸의 관계 안에서 리드미컬하게 그려지며 극의 전개에 재미를 주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재미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자식을 떠나지 못하는 ‘엄마라는 이름의 헬리콥터’


          극 중에서 딸에 죽고 딸에 사는 돈 빼곤 인생이 불행 그 자체인양춘옥(김수미분)과 그녀의 딸인 무개념 마마걸 하연주(서효림분), 그리고 특급 품절남 이소원(박진우분)의 갈등이 있다. 춘옥은 가난한 소녀로 자라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갖은 역경 속에서도 큰 돈을 모으고 외동딸을 얻는다. 그녀에게 딸은 인생의 목적이자 희망이자 삶 그 자체이다. 당연히 졸부의 무남독녀 외동딸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엄마 덕에 돈 쓰고 치장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녀는 좋다. 불행했던 그녀 인생의 보상이므로.


          그녀의 딸은 엄마가 점지한 일등신랑과 아무런 고민 없이 결혼한다. 사위는 그야말로 특급 품절남으로 장모가 병원을 차려주는 대가로 처가살이를 하는데, 딸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장모와 마마걸 사이에서 갈등이 끊일 날이 없다. 사위마저 손아귀에 넣어야 성이 차는 장모의 세계에서 사위는 혼자만의 자리가 필요하고 결국 이혼의 입구에까지 도달한다.


          춘옥과 같이 갖은 걱정과 근심을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자식 주위를 맴돌며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 캐릭터를 ‘헬리콥터맘’이라고한다. 어릴 적 ‘먹고 자고 싸는 것’을 해결하던 엄마는 학교와 학원을, 진로와 취업을, 그리고 결혼과 그 이후의 삶까지 직접 해결하려고 개입한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자식을 통해 자기 인생의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보상심리,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뒤처질까 걱정하는 불안심리, 인생의 의미를 잘 키운 자식을 통해 증명하고자하는 기대심리 등 다양하다.


          헬리콥터맘의 자식은 무언가를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 본 적이없기 때문에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실패와 상처가 두렵다. 결국, 사소한 선택도 못하는 결정장애를 유발한다. 또한, 부모가 모든 것을다 해주었기 때문에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포기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캥거루족 혹은 마마보이(걸)이 되기도 하고,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 되면 쉽게 우울증에 빠지고 평생을 낮은 자존감으로 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 상호의존성이 커져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효자 콤플렉스와 아직 엄마품이 좋은 미숙한 딸 


          다시 드라마로 와 보자. 조건맞춤 결혼으로 쇼윈도 부부 생활을 하는 이소원과 하연주에게 결국 시련이 온다. 소원은 숨 막히는 처가살이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는 특급 효자다. 부모의 희망대로 의대에 진학하고 또 부동산 재벌가에 결혼했으며, 어릴 적부터 부모 속 한번 안 썩인 품절남이라는 거다. 소원은 도를 넘는 장모의 결혼생활 간섭에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버지 체면 때문에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로부터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사랑받을수 있다는 것을 강요당해 순종적으로 된 아이는 착한아이(아들) 콤플렉스에 빠지게 되고 결국 효자콤플렉스로 결혼생활을 망치기 일쑤다.


          소원은 결국 이혼 대신 분가를 하기로 하는데, 엄마 껌딱지인 마마걸 연주가 갈등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엄마 대신 사랑을 따라가기로 하는데, 이 대목에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마마걸의 엄마 이별기는 엄마 손을 떠나 첫 등교하는 아이를 연상케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엄마의 눈물이다. 헬리콥터맘인 춘옥은 그야말로 서운함, 안타까움, 사랑, 상실, 분노, 걱정, 배신 등 다양한 감정을 눈물로 담아낸다. 고작 결혼한 자식이 분가한다는데.


          발달심리학자 로버트 헤비거스트Robert J. Havighurst 는 인간발달 과정에서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각 발달단계에서 반드시 획득해야 할 지식과 태도, 기술들을 ‘발달과업’(developmentaltask)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한 단계에서의 발달과업을 잘 성취하면 행복하게 되고 다음단계의 과업을 원만히 수행할 기초를 마련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사회의 인정을받지도 못하고 다음 단계의 과업수행에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개념에 따르면, 엄마들은 중년기(30~60세)의 발달과업 중 하나인 '10대 자녀가 행복한 성인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고, 아들은 청소년기(12~18세)에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부모와 다른 어른으로부터 정서적독립’을 성취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이 캐릭터들을 설명할 수 있겠다.


이제 엄마의 세계에서 나와 성인의 인생을 살아라


          그래도 드라마에 막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지 않은 것은 효자와 마마걸 모두 엄마의 세계에서 나와 하나의 성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는 것이다. 백세시대를 맞이하여 하버드대학 성인발달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중년 연구를 해 온 윌리엄 새들러 William A.Sadler 교수는, 청년기 1차 성장과는 다른 깊이 있는 2차 성장을 통해 삶을 재편성하는 시기인 서드에이지(Thethird age, 마흔 이후 30년)라는 개념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이 단계는 엄마아빠에게 배우는 시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성장하는시기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은 급변하고 다양하고 예측 불가의 시대이다. 이제 누가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 주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부모일지라도. ‘귀하게 키운 자식’이 사회에 나와 하나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사람들에게 귀하게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실패의 경험을 통해 건강한 성인이 될수 있도록 부모도 자식도 삶의 단계마다 지불해야 할 성장통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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