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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Jul 23. 2018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그리고 당신의 소확행

“삶의 균형과 행복의 기준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소확행은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다.


시험, 연애, 취업, 되는 것 하나 없다. 도시를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향에서의 평범한 일상에서 평소 잊고 살았던 ‘작은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 만화(2002)를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 2018, 임순례 감독)의 줄거리. 워라밸과 소확행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잘 담겨 주목을 받았는데, ‘힐링 된다’, ‘짠내 난다’ 등 반응은 가지각색. 당신에게 워라밸과 소확행은 어떤 의미인가?



불행한 나라의 행복한 국민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꼴찌, 자살률은 일등.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회의 결과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행복에 빠져있는 듯하다. 근로시간 단축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으로 일명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실현된 듯하고, 다양한 ‘소확행 아이템’으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누리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국민 과자로 유명한 오리온 ‘초코파이’는 먹화점의 대명사인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디저트 전문매장을 오픈하여 프리미엄 디저트를 선보였다. 뷰티 업계에서도 적은 금액으로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마스크팩, 립스틱, 디퓨저 등의 아이템을 내놓고 있다. 자신을 위한 작은 투자 혹은 소비가 유행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워라밸 트렌드가 합쳐져 해외여행을 즐기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단연 일본이 선호도 1위 여행지인데, 소확행 트렌드와 부합하기 때문. 이러한 것을 반영하듯, 유통과 여행업에서는 소확행 특수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힐링’이라는 개념이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자기중심적으로 형성되며 사람들은 쳇바퀴 같은 삶에서 나름의 행복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소비심리의 변화에서 찾는다. 수년간 지속된 경제 불황과 저성장으로 소비를 통한 과시와 경쟁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고 작은 위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으로 쓴 돈이 현대자동차가 한해 수출로 얻은 이익(40억 달러)의 6배가 넘는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소소한’ 소비를 통해 진정 행복해지고 있는가?



강요된 삶의 균형, 워라밸


워라밸은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묘사하는 단어로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등장했는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Alvin Toffler의 《제3물결》(The Third Wave, 1980)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되었다. 앨빈 토플러는 ‘제3물결’(정보사회)은 ‘제2물결’(산업사회)을 지배해 온 원리를 붕괴하고, “보다 인간적이고 다양한 민주적 사회가 이룩될 것이며 이에 따라 인간관과 노동•가족•사회•정치의 형태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예견하였다. 그는 ‘제2물결’에서는 잠자고 깨어 있고, 일하고 노는 시간의 리듬이 근본적으로 기계의 진동에 얽매여 있는데, ‘제3물결’의 정보혁명으로 기존의 관료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직장에서의 일의 변화가 자연스레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선진국의 경우, 일과 가정에 깊이 파고든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젠 Zen 스타일부터 슬로우라이프 Slow life 등으로 다양한 사회적 ‘자각’ 운동으로 확장되었는데, 결국 삶의 가치와 의미에 하나씩 눈뜨고 실천하는 삶을 통해 더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살고자 했던 것이다.


과거, 맹자(孟子)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는 말로, "무릇 백성은 집과 논밭, 생업이 있어 생활이 안정되어야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였는데, 효율성과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은 장기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없앨 것으로 전망되므로, 워라밸이 단순히 ‘저녁이 있는 삶 추구’ 정도로 논의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미디어에서는 퇴사하고 여행을 하거나 자기 사업을 하는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든지 혹은 워라밸 트렌드나 운운하며 워라밸 소비를 조장하며, 워라밸을 ‘예능거리’로써 다루는 것은 우리에게 잘못된 워라밸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확행이라는 헛헛한 행복


소확행은 집, 직장, 결혼 등 크지만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작지만 확실하게 성취할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소위 ‘N포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행복 추구법이라 할 수 있다. 누구는 이것이 올해의 소비 트렌드라며 떠들어 대지만, 사실 이것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에서 처음 쓰였다.


하루키는 1980년대 일본의 경제 침체 시기,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가 아닌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 만족하며 사는 일본인의 심리를 소확행이라는 용어로 담아냈는데, 올해 들어 소확행이 소비 트렌드로 주목받은 것은 일본 사례와 무관하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소비행태가 과시에서 가치로 변한 지금의 우리 사회와 비슷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소확행과 달리, 우리의 소확행은 워라밸과 같이 소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프레임’ 혹은 소비를 조장하는 ‘트렌드’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를 통한 행복 추구는 결국 공허함과 자괴감을 줄 뿐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디어가 구축한 하나의 허상(虛像)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칫 더 큰 불행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자리도 없고 결혼도 못 하고 있는 ‘N포세대’에게 ‘일가정양립’이라니? 경기나 나아질 것 같지 않고 일자리도 늘어날 기미가 안 보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수긍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자기만족이나 느끼라는 사회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인가? 도대체 우리는 삶의 의미이자 목표가 되어야 할 행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Boys, don’t be ambitious? Boys, be ambitious, again!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깨끗한 팬티가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작기는(小) 하지만 확(確)고한 행(幸)복의 하나 (줄여서 소확행)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사고 체계인지도 모르겠다.····또 런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막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퐁퐁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그 기분이란 역시 소확행의 하나이다.”(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랑겔 한스 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 중)

[ 출처: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 - 랑겔한스섬의 오후 | 도서출판 백암 ]


이렇듯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은 소비사회가 만들어준 소비로 인한 ‘가짜 행복’이 아닌, 자기만의 생각이나 기분, 혹은 취향을 기준으로 한 ‘진짜 행복’이리라.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하여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자기통제감’을 많이 느낄수록 만족감이 커지고, ‘실제로’ 삶에 대한 통제력이 커질 때 행복을 더 많이 느끼므로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은 이 퍽퍽한 세상에 진정 중요한 의미다.


“Boys, be ambitious!”라고 하기엔 퍽퍽한 시대지만, 소확행을 빌어 “Boys, don’t be ambitious”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사가 다 그렇지만, 전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것은 없다. 쇼핑몰에서 워라밸과 소확행 상품을 사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니, 세상 이슈에 흔들리지 말고 하루키처럼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 결국 행복으로 가는 길이겠다. 끝.



[칼럼 후기]

1. 애초에 이 칼럼의 제목은 “Boys, don’t be ambitious?” - 소확행, 행복에의 강요인가? 일상의 의미 발견인가? 로 할 생각이었다. 워라밸과 소확행이라는 환상들이 비벼진 현실은 결국,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평생 귀가 닳도록 들었던 “Boys, be ambitious” 라는 경구와는 다른 것을 주문한다. 이는 곧, “야망을 버리고 소소하게 살아라”는 좃같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먹방이나 보고 맛집이나 찾아다니게 하는 세뇌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나만의’ ‘작은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2. 그럼에도, 이 키워드는 너무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가령,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은 우리들에게 노동 환경과 노동 방식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워라밸과 개저씨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가 빠르게 노동시장의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규칙은 잘 따르지만 이유가 명확해야 하고’, ‘일에 있어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원하며’, ‘직업의 목적과 의미, 삶의 질, 소통과 협력, 투명성과 신뢰에 큰 가치’를 둔다.


그래서 소위 ‘개저씨’ 리더십으로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동안 리더십은 나이, 경력, 실적 등의 순위에 따른 지도형 멘토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발성에 근거해 상호조력을 기할 수 있는 촉진형 멘토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조직 구성원의 잠재력 발산과 조직성과 창출을 위해서는 당연한 변화다. 즉, 워라밸은 절대적인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환경과 방식, 그리고 상호 존중하는 문화가 핵심인 것이다. 여기서 리더는 organizer가 아니라, facilitator가 되어야 한다.


3. 그리고, 사실 소확행은 ‘군더더기 없는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미니멀리즘과 궤를 같이 한다. 미니멀리즘의 근본 원리는 슈마허 E. F. Schumacher 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1973)”에서 비롯되었다. 슈머허는 ‘불교 경제학’을 이야기 하며, 종교적 정신적 가치를 무시한 채 진행되는 경제 성장은 '올바른 생활'을 발견할 수 없게 한다며, 기존의 성장에 대한 경종을 울렸었다.


4. 어쨌든, 나는 소확행이라는 말을 듣고 참 서글펐다. 편의점에서 에너지음료를 마시며 담배 한모금을 빨며 생각했다. 에너지음료의 판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고카페인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 때문이다. 에너지 음료는 HOT6처럼 HOT한 에너지를, 레드불처럼 강하게, 번인텐스처럼 불태우는, 음료인데 건강 때문에 안 마신다는 것이다. 그깟 카페인이 스트레스와 우울 좌절로 인한 자살보다 사람을 더 죽이진 않을 텐데 말이다.(망할 에너지 음료 회사 직원도 아니고, 카페인과 자살의 수치를 확인해 보진 않았다.)


40 중반이 되어 버린 내 생각은, 에너지 음료를 안 마셔서 건강한 것보단,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자신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며 작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더 건강할 것 같다. 개저씨라 할지 모르겠지만, 남 탓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했던 실패자(나)의 변명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 혁명적인 헤어디자이너이자 창조적 페미니스트인 비달 사순 Vidal Sassoon의 말, “성공(success)이 노력(work)보다 먼저 나타나는 유일한 곳은 사전이다.”(“The only place where success comes before work is in the dictionary.”)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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