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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Sep 18. 2018

나 없는 나, ‘나는 누구인가?’

“로드무비처럼, 길 위에서, 정체성을 찾아라”

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길 위에서의 여정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로드무비 road movie라고 한다.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의 여정에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고, 자유를 찾고 싶은 -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곤 한다. 갈등과 혼란, 그리고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로드무비가 주는 은유는 무엇일까?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들의 시대


인류학자 반 즈네프 Van Gennep는 출생·성인(成人)·결혼·죽음과 같이, 개인이 새로운 지위·신분·상태를 통과할 때 행하는 의식을 ‘통과의례(通過儀禮)’라 하였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으레 유사한 통과의례를 치르며 같은 모습으로 사회화된다. 거대담론이나 미디어의 프레이밍 framing은 ‘세상을 동일한 관점으로 보고 생각하게’ 하며, 트렌드는 끊임없는 소비를 창출한다. 이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러한 메커니즘 안에서 ‘나’라는 개인은 기능과 역할로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바야흐로 이성과 합리성을 해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기존의 틀을 파괴하는 디스럽터 Disruptor가 뒤섞인 혼란의 시대다. 거대담론도 없으며, 프레임도, 트렌드도 작동하지 않는다. 디지털은 통과의례라는 일반적인 삶의 경험마저 극도로 개인화한다. 이러한 새로운 메커니즘 하에서 우리는 ‘나’를 잃어가고 있다.


'삶의 행복'이라는 명제를 죽어라 쫓아도,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의 공허함만 남으니, 최근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영정사진을 찍는 것이 한편으론 이해가 될 정도다. 여기저기선 ‘인생은 한 번뿐(YOLO)’이라며,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라’ 하지만, 그 구질구질하고 구태의연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시대에 ‘인간의 실존’에 대한 본질적이고 엄숙한 물음 대신, 어떻게 하면 이 시대를 좀 더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지 삶의 목적과 방향성에 대한 ‘정체성’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고민의 답을 로드무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드무비는 익숙했던 자아를 ‘타자화’ 함으로써 새로운 자아를 찾는 여정이므로, ‘계획 없는 여행’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힌트를 준다. 로드무비의 대명사라 불리는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 리들리 스콧 감독)’를 보자.



정체성을 찾기 위한 질주, ‘델마와 루이스’


‘가부장적’인 것을 넘어 ‘아빠’ 같은 남편에게 시달려 온 델마(지나 데이비스)는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절친 루이스(수잔 서랜든)와 여행을 떠난다. 들뜬 마음에 낯선 남자와도 어울리지만 델마는 곧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고, 루이스는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즐거운 여행은 시작과 동시에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만,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녀들은 자유로운 도주를 만끽한다.


그 와중에 수배령은 떨어지고 추적을 피해 멕시코로 도망가려 하지만 돈마저 도둑맞는다. 그리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상점까지 털면서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델마는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고 닦달하는 남편과 결국 이별을 하고, 루이스는 브래지어, 반지, 귀걸이 등 여성의 상징물을 버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들은 여정에서 갈등을 만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느끼며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한편, 경찰의 포위망은 좁혀오지만, 이제 그들에게 협상은 없다. "난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난 그냥 살 수가 없어...한번도 이렇게 깨어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모든 게 달라 보여"라는 델마의 대사는 그녀가 ‘정체성’을 찾고 ‘지금’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결국 추격 끝에 경찰과 대치한 그들은 절벽을 향해 질주한다. 영화는 마치 절벽을 박차고 나는 듯한 차를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 난다.


로드무비는 대개 이런 식이다. 일탈이나 모험, 혹은 회복을 꿈꾸며 길을 나서지만, 그 끝은 갈구했던 평화나 안도감보다는 오히려 길을 나설 때보다 더한 갈등을 맞거나 삶의 종지부를 찍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깊은 공감을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의 약자인 여성의 갈등에서, 이 억압적인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소비사회는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상실을 만든다.


로드무비는 기성세대의 틀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은 기존 관습에 대한 저항과 도전까지 다양한 여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길'이라는 모티브는 우리에게 ‘길을 떠나지 않으면, 반복적인 삶 속에 매몰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연구는 더 심오해지고 있지만, 정작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은 왜 더 많아지고 있을까?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을 노동에서 소외시키고 개인의 개성을 박탈함으로써 정체성을 말살한다. 또한, 미디어와 트렌드는 개인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방해한다. 마케팅은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게 하여 ‘더 나은 나’를 위해 소비하게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무함만 키운다. 물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며 불확실성이 주는 극도의 불안감과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바뀐 삶의 방식으로 인한 혼란감도 있다. 


이렇듯, 현대사회를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개인의 ‘정체성 혼란’의 이유는 많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체성 상실’의 문제는 소비사회의 독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생산의 주체이자 소비의 주체로서 소임을 다할 때, 그리고 자신만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이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소비사회에서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방식과 사회 참여방식, 그리고 문화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바뀌었으며, ‘라이크 이코노미 like economy’라 불릴 만큼 ‘좋아요 like’가 가지는 경제적 영향력은 커졌다. 하여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나 ‘추천’을 누르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사회에 참여하고 노동을 한다고 -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정작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일상은 '먹고 사는' 이야기며, '먹고 사는 것'을 위한 '노동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일상은 견고한 사회적 관계와 관습이라는 틀 속에 우리를 가두고, 거기에 더 열심히 적응하면 할수록 필연적으로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게 만든다. 델마와 루이스처럼. 그러나 탈출을 직접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정체성은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찾는 것이다.


논어(論語)에서는 30세를 '자립한다'는 의미로 이립(而立)이라 하였다. 평균 수명이 지금의 반밖에 안 되는 시대와 비교는 무리지만, 지금의 성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사춘기의 고민과 방황, 그리고 감정 기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 없는 질문의 연속으로 무력감에 빠져, 스스로를 오춘기, 육춘기라 하며 삶의 도전을 피한다. 


하지만, 그 삶의 무게를 직면하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아를 못 찾을 수도 있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영원히 이방인이 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대신,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이 오지로 떠난 이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며, 로드무비에서 보여주는 여정을 ‘현실과의 단절'로 착각하고 무작정 일상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이란 것은 짧은 여행 trip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 journey라 할 수 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는데, 이는 죽을 때까지 지속하기도 하며, 완성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여정을 짧은 여행으로 생각하고, 조급하게 정체성을 찾으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 그 자체”이며, "인생은 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 알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로 충고를 대신한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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