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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Oct 31. 2018

미닝아웃, 나를 표현하는 똑똑한 소비?

행동 없는 ‘신념 소비’는 ‘호불호’와 다름 아니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르네상스를 거쳐, 권위와 통제를 ‘해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중세에서 근대, 그리고 지금에 이르는 역사는, 결국 ‘개인’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바야흐로, 현대 사회는 자신의 재력과 취향을 넘어 자신의 몸마저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신념을 표현하고 소비한다. 




메시지, 혹은 신념을 소비하는 사회


”나는 정말 관심 없다. 당신도 그런가? I really don’t care. Do U?” 이 한 문구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는 최근 이슈가 되었다. 문구가 적힌 레터링 lettering 재킷을 입고 이민자 아동수용소를 방문한 것. 상황상 이것은 “난 사실 아동 난민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입방아에 올랐으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어떤 상징이나 글귀는 ‘무엇을 의미’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곤 한다. 메시지엔 신념이 담기게 마련인데, 이렇게 옷에 메시지를 새겨 입는 슬로건 slogan 패션은 1960~70년대 히피 문화 속에서 싹텄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메시지로 “MAKE LOVE NOT WAR”를 옷에 프린팅해 입고 다닌 것. 이후 이것은 하나의 패션이 되고, 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구환경 지속 등의 대의명분을 담은 캠페인에 적극 사용된다.


이러한 행위는 소셜미디어상에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 혹은 주장에 해시태그(#, ‘해시 hash’ 기호를 붙여 글에 꼬리표-‘태그 tag’를 단다는 뜻)를 붙이며 급진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를 달면 ‘#’가 달린 게시물은, 전 세계가 연결된 소셜 네트워크상에서 하나의 정보로 묶여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PrayForParis’,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임을 알리는 ‘#MeToo’,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ActOnClimate’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부터 캘빈 클라인의 ‘#mycalvins’와 같은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명 '얼음물 뒤집어쓰기'로 유명한 루게릭병 환자 돕기 캠페인인 ‘#IceBucketChallenge'처럼 좋은 성과를 냈음에도, 나중에는 재미적인 요소만 강조되며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왜 신념을 소비하는가?


인간은 오랜 기간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 집단 속에서 안전, 즉 생존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이제 개인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집단을 이룬다. 그리고 집단마다 고유한 특성에 자신을 맞춰간다. 그러나, SNS의 일상화, ‘#’와 같이 자동으로 취향을 묶어주는 알고리즘, 온라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받길 바라는 심리 등이 합쳐지며, 신념을 표현하고 소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다르다’와 ‘틀리다’가 같은 의미로 쓰일 정도로 수용성이 낮은 곳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금세 퍼졌다.


모 트렌드 연구소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취향이나, 사회적 신념 meaning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coming out 현상을 일컬어 ‘미닝아웃 meaning out’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제품의 유용성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생각하기 때문에 ‘나쁜 회사’ 제품은 소비해 주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절감, 친환경 소재 사용, 재활용 독려 등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신념이 무엇이길래 소비의 기준까지 되었는가?


신념(信念, belief)이란 어떤 대상의 특정 측면에 대한 일종의 느낌 또는 정서이며, 단순히 주장하는 관념 이상의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신념은 경험, 정보, 추론 등으로 결정되므로 매우 주관적이며, 때때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되기도 한다. 소비(消費)란 돈이나 물건, 시간, 노력을 ‘써서 없앤다’는 의미다. “당신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봐요.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겠습니다(장 보드리야르)"는 말처럼, 소비사회에서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소비 행위에는 재력이나 취향뿐만 아니라 신념이나 가치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회와 개인이 드러내는 신념에는 ‘선의(善意)’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하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인식’이 깨어 있으며, 선의를 가지고 있으며, 합리적이라는 명분을 얻게 된다. ‘#북극곰을지키자’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구매하고, 입고 다니며 사진 찍어 SNS에 올린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사회에 동참하고 있다는 자존감과 행복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저것이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니, 나도 동참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의’의 신념은 ‘소비할 가치’가 있으므로,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분명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낼 것이다. 이제, 밝고 명랑한, 공정하고 투명한, 공존하고 지속가능한 세계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여전히 문제투성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



신념 소비의 진실


신념 소비는 어떻게 트렌드가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신념을 소비할까? 우리가 사는 소비사회는 지속적인 소비로 지탱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한다. 그 결과 누구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충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소비자는 팬심으로 브랜드를 소비한다. 그런데, 더 이상 브랜드 ‘약빨’이 받지 않게 되었다. 브랜드로 아무리 팬심을 구축해도, 지금과 같이 경기가 어렵고 구매력이 떨어질 때는 더 싸고, 더 많은 것을 주는 것이 장땡이다. 더군다나 대량생산 기반의 브랜드와 제품들을 대신하여 ‘개(인)취(향)’에 맞는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브랜드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브랜드는 포기해야 하는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가령, 식당을 선택할 때, 맛, 가격, 서비스 등의 ‘속성’을 고려할 것이다. 사람마다 각 속성에 대한 신념이 다르므로, 특정 식당에 대한 ‘좋다’, ‘싫다’와 같은 다른 ‘태도’가 형성된다. 신념은 보통 마음속에 있고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태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신념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반대로 소비자가 생각하는 신념을 이용하면 손쉽게 소비를 하게 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좋더라도 가격이 비싸면 ‘싫다’라는 태도를 가진다. 그런데 “유기농은 비싸다”는 신념을 이용하면, “비싸더라도 유기농이면 먹겠다”는 소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사회는 신념을 소비하라고 한다.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신념에 ‘#’를 붙인다. 이 둘을 붙이면 브랜드를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비싼 대중매체를 통해 브랜드를 파는 것보다, 더 경제적이면서도 강력한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SNS에서는 신념 소비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SNS에서 다수의 사람이 특정 신념에 대하여 소비하고 있다면(그것이 맞고 틀린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 신념과 다른 소수는 고립에 대한 공포로 침묵한다(침묵의 나선이론 Spiral of Silence Theory). 그러면, 특정 신념은 확대재생산 되며 더 많은 사람이 소비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집단에 속하기 위해, 단순히 타인의 행동을 따르기도 한다(동조 Conformity). 이렇게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것 자체가 힘이 되고,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암묵적 분위기로 작용하게 된다(복종 Obedience). 



행동하지 않는 신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과연 우리는 신념대로 소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소비사회는 신념 소비를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고, 기업도 개인도 결국 소비사회에서의 더 많은 소비를 위한 명분을 실천하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 결과 문제투성이의 세상은 변하지 않고 변하는 척만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랑하기 위한 ‘신념팔이’ 정도로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말 신념을 소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념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소비를 통한 '신념 팔이'는 우리에게 신념대로 살고 있고,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착각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동하지 않는 신념은 아무것도 아니다. “비싸더라도 윤리적 소비라면 하겠다”는 허울좋은 신념 말고, “윤리적 소비를 위해 싸게 생산하겠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신념 소비’를 넘어 소비자 스스로 사회적 감시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맞겠다.


트렌드로서의 신념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아진다는 착각 속에 더 나쁜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신념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명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자기의 신념을 발표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비로소 신념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토스카니니)"는 말을 잊지 말자.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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