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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Nov 16. 2018

케렌시아, 숨 고르기 혹은 실존에 대한 고민

힐링을 가장한 소비인가? 현실로부터의 도망인가?

점심시간에 ‘수면카페’에 들러 낮잠을 자거나, 퇴근 후 맥주 한 잔에 독서를 즐기는 '책맥카페'를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미니멀리즘적인 가구 배치에 홈가드닝 Home Gardening, 그리고 은은한 조명까지. 셀프 인테리어로 내 집을 온전한 나만의 쉼터로 바꿔보기도 한다. 빡쎈 일상에서 ‘한숨 돌리고 가자’는 것. 당신의 숨 고르기는 어떤가?




빡쎈 일상을 달래주는 트렌드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때, 유행했던 카드사 광고카피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쓰질 않으니, “일만 하지 말고 돈 좀 써라”는 노림수다. 무한경쟁과 성장, 그리고 생존의 압박에 지친 사람들에게 ‘사이다’ 같은 말이었으리라. 이 같은 말들이 사회의 분위기가 되며, 사람들은 무자비한 경쟁과 성장 대신 ‘나’라는 개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삶의 무게 중심이 개인에게 옮겨지며, 소비도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소비사회는 쉴 틈 없이 트렌드를 던져주고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끈다. 그러면 사람들은 소비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착각이 소비사회를 유지하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속하게 해 주는 큰 힘이다.


 최근엔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YOLO’, 일과 삶의 밸런스 ‘워라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 신념을 소비하는 ‘미닝아웃’, 등 다양한 트렌드들이 이슈가 되고 소비되었다. 사람들은 관련 상품을 소비하고 SNS에 공유하며, ‘행복지수 후진국’에서도 행복을 찾아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인생은 한 번이 아니라 지속하며,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엔 현실이 너무 퍽퍽하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소소한 행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신념을 소비한다는 허상은 신념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공허함만 줄 뿐이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빡쎈 일상에 ‘언 발에 오줌’이라도 누어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소비는 유지된다.



차가운 현실을 피해공간의 따뜻함을 소비하다


 스트레스 ‘만땅’인 사회생활, 결혼과 육아, 집장만에 노후까지. 답 안 나오는 문제들 앞에 우리는 여전히 숨이 가쁘다. 소비행위로 인한 ‘잠깐의 행복’ 이후 엄습하는 공허함에, 더 큰 불행을 느끼기도 한다. 일상이 지속하도록 여행과 맛집과 스파를 다니며 억지로 숨을 골라 보지만,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가빠지는 숨은 어쩔 수 없다.


 하여 현실을 피해 방해받지 않고 휴식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케렌시아 Querencia’가 필요해졌다. 케렌시아는 본래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사람들도 각자 자신만의 케렌시아를 갖는다. 패스트 힐링 Fast healing으로 지친 심신을 간단히 달래거나, 자기만의 아지트를 꾸미고, 초연결사회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추구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이미 ‘코쿤 Cocoon’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있다.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은 '불확실한 사회에서 단절되어 보호받고 싶은 욕망을 해소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1981년 코쿤을 처음 사용했는데, 나중에는 위험하고 복잡한 현실로부터 도피해 '누에고치'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칩거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코쿤과 같은 현상은 가까운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회생활을 극도로 멀리하고, 방이나 집 등의 특정 공간에서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 은둔형 외톨이)’가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더 많이 겪게 되는데, 사람들은 차가운 현실을 피해 집과 같이 따뜻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케렌시아쉼인가도망인가?


 그런데, 나만의 케렌시아를 갖기 위해 검색을 해 보면, 케렌시아를 위한 쇼핑, 인테리어, 카페, 여행, 펜션, 마사지 관련 상품 정보가 나온다. 감성 충만한 분위기 좋은 ‘잇 플레이스 It Place’ 소개도 있다. 흡사 케렌시아는 여행업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 용어가 아니면, 먹고 놀고 즐기는 ‘맛 따라 길 따라’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원래 케렌시아는 단순히 '편안한 장소' 이상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담고 있다.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오후의 죽음 Death in the Afternoon>에서 “소는 본능적으로 케렌시아를 찾는다. 그곳은 소의 뇌리에 단박에 나타나지 않고, 인간과 싸우는 동안 집을 짓듯이 서서히 만들어진다. 소는 거기 들어서면 벽에 등을 대고 있는 것처럼 안정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여 죽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라고 묘사했다.


 투우장의 소는 ‘피카도르 picador’에게 상처를 입고, ‘반데리예로 banderillero’의 작살에 피투성이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 투우사 ‘마타도르 Matador’와 대면하는 순간, 소는 투우장 한곳에 멈춰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끌어모은다. 우리는 투우장 소의 케렌시아 이야기를 여기까지 듣게 된다. 하지만 케렌시아 이후 무시무시한 ‘진실의 순간 Moment Of Truth’이 있다. 소가 죽느냐? 마타도르가 죽느냐의 피할 수 없는 순간 말이다. 


 우리의 거친 일상도 투우장의 소와 같다. 죽음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케렌시아 이후 진실의 순간을 직면하는 것처럼, 죽을 만큼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 위해 힐링을 해도 결국 현실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잠시 도망가는 것도 좋다. 하지만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카렌시아라는 ‘망각의 약’에 중독된다면, 결국 ‘마타도르의 칼’에 죽을 수도 있다.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여 현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현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있다.



소비 대신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찾아라


 케렌시아의 소가 숨을 고르고 강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죽음을 담보로 한 일전(一戰)의 순간을 앞두고 온 힘을 모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바쁘지만, 뒤도 보며 살자’ 정도의 여유와 회복의 의미가 아닌, 소비 트렌드로써 카렌시아가 이야기되면 안 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실존에 대한 물음에 답하지 않는 소비는 결국, 우리의 ‘숨 고르기’ 기능을 마비시키고 소비만 지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케렌시아에 대한 류시화 시인의 말에 마음이 간다. "정적인 장소나 시간만이 아니다. 결 좋은 목재를 구해다가 책상이나 책꽂이를 만들고 있으면 번뇌가 사라지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 자체로 퀘렌시아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장소,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혹은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다정한 친구와 차 한 잔의 나눔, 이 모두가 우리에게 퀘렌시아의 의미를 갖는다. 정결한 곳에서의 명상과 피정, 기도와 묵상의 시간,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잔잔한 음악을 듣는 밤도 퀘렌시아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없다면 생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정신은 거칠어진다."..."그러한 장소와 시간들이 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내가 그 순간만큼은 진정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걸 어느 날 깨달았다. '가장 진정하고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퀘렌시아인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속에 휴식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전체가 나의 퀘렌시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힐링 트렌드 대신 자신의 내면을 쫓을 때, 진정한 나만의 케렌시아가 실현될 것이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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