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호훈 Mar 08. 2019

온라인 사교모임, 오프라인 살롱으로 나오다

살롱문화 제대로 즐기려면, 자기중심적이 되라!

(커버 이미지 설명) Author: Carl Schweninger jr. (1854-1903) | Description: Klatsch und Tratsch im Salon(살롱에서의 수다와 잡담)



“누구 건물주 없니? 회사 때려치우고, 살롱이라도 차리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술자리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퍽퍽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타령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은 단절화, 원자화된 관계를 넘어 취향 중심의 느슨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 경계 없는 소통이 주는 지적 충만함, 그리고 권력과 돈이 되는 인간관계의 힘을 살롱이 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살롱문화는 어떠한가?



방’마다 독특한 문화가 소통되는 사교클럽


인터넷에서 ‘살롱’을 검색해 보자. 그러면 패션뷰티나 쇼핑몰처럼 개인의 취향을 소비하거나, 작은 음악회, 전시회 혹은 서울오토살롱과 같은 박람회 성격의 수식어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기사에서는 주로 '룸살롱 접대' 등 부정적 의미로 다뤄지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 공유와 지적이고 세련된 사교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원래 살롱 salon의 의미는 ‘방’이다. 여기에 ‘-s’가 붙으면 ‘사교계’라는 의미가 되고, ‘s-‘를 대문자로 쓰면 ‘미술 전람회’나 ‘제품 전시회’를 지칭하니, 검색 결과와 문맥상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사랑방 문화는 공간과 커뮤니티, 세련된 매너와 풍부한 지적, 미적 경험을 통틀어 의미하므로 그 기원을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16세기 상류층이 자신의 응접실에서 시, 문학, 음악, 예술 등 ‘같은 취향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교 모임(공간)을 즐긴 것을 본격적인 시작으로 본다.


초기 소통 거리가 문학과 철학이었다면, 이후 살롱은 예술가를 발굴하는 아카데미의 역할도 하고, 귀족들의 소장품을 전시하여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17세기 이후에는 토론과 독서 센터 역할을 하는 커피 하우스의 모습이기도 했으며, 서민들의 술과 오락을 위한 펍 pub, 음식과 엔터테인먼트가 제공되는 카바레 cabaret, 가볍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 cafe 등 현재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문화 소비 활동의 모태로 변모했다.


현대에 와서는 패션뷰티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 개념으로 확장되었는데, 살롱이 중요한 것은 방이라는 공간에 초대된 사람들은 주최자의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지적 교류를 하며 독특한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방이라는 공간에서 생산, 소비되는 다양한 문화적 담론과 행위들은 방을 나와 시대정신 혹은 문화사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취향과 소통의 공간, 온라인으로 들어가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살롱은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과 결합하며 보다 활성화된다. 이후 개인의 경제 여건이 높아지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되며, 살롱은 확실한 취향과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전개되며 살롱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빠른 정보 교류와 무한의 연결성은 가상의 공간에서의 살롱을 가능하게 했다.


국내에도 PC통신과 함께 전에 없던 소통의 공간들이 생겨났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각종 커뮤니티는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 커다란 해방구였다. 다양성에 기반한 ‘취향 소통’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특히,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는 ‘취향 소통’ 사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산업사회에서 파편화된 삶을 사는 ‘고독한 개인’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음양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많은 사람이 온다는 것(조회수)은 곧 ‘돈’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 광고와 이벤트로 도배되고, 애초 취지와는 다른 방향의 운영과 자신의 주의, 주장만 있는 댓글에 결국 신물이 나게 된다. 순수한 의도로 찾은 온라인 살롱이 비즈니스화되며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즐기기 어려워진다. 특히, 단톡방에서는 자신의 입장이 소수의 의견일 경우 고립될까 봐 두려워 침묵하는 '침묵의 나선' 현상(소위 '눈팅')이 비일비재하니 이쯤 되면 ‘소통’이 아니라 ‘고통’이다.


이러한 현상은 살롱의 특수성 때문에 더 강화된다. 오프라인에서의 살롱에서는 그 공간이 담고 있는 내용물이 주최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온전히 반영하여 독특성은 있되, 주최자나 참여자 모두 동일한 위치에서 즐겼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침묵의 나선’ 현상 때문에 ‘급’이 맞는, 혹은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소통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여 다양성은 소멸하고 오히려 편협한 정보와 편향적 관점, 그리고 불편함 마저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피로감 digital fatigue은 탈(脫) 디지털 문화 운동 혹은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만들었다.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부상한 ‘살롱문화’


다시 오프라인으로 나온 살롱에 대하여, 이야기꾼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 YOLO’, 그리고 ‘가치 소비’ 등이 이유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돌고, 자신의 인생과 행복을 중시하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다.


살롱에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소통 대신 자유롭고 수평적인 소통이 있다. 나이, 학벌, 직업과 같은 개인 신상에 따라 (차별)대우를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소통방식이 가능한 것은 외로움 때문에 모였던, 무언가 배우러 모였던 취향이라는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진정성을 가지고 얼굴을 마주하겠다는 ‘열린 마음’일 게다. 또한 그동안 한국사회의 주요 관계 형성이 학연, 지연, 혈연인 것과 달리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나이보다 자신의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존중받기도 한다.


살롱이 트렌드로 부상한 또 다른 이유는 ‘부담 없는 만남’도 있다. 소위 (가치관이 아니라) ‘가취관(가벼운 취향 위주의 관계)’처럼 가벼운 관계로 연결되는 것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편하고 참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 지금의 주류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 단발적이고 휘발적인 관계는 IT플랫폼을 매개로 노동 수요와 공급이 필요 시 즉시 만났다 흩어지는 긱 이코노미 Gig economy와도 닮아 있다. 결국 생산구조는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지적 욕구의 해소도 살롱이 유행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다이내믹 한국’에서 현실의 문제에 매몰되어 올바른 사회 인식을 하기 어려운데 다양한 대화 속에 그러한 것들이 해소될 수 있다. 또한 한 분야의 ‘구루 guru’나 ‘덕후’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양질의 정보를 더 빠르게 습득할 수도 있다. 편안한 이야기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살롱의 큰 의미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이유와 긍정적 부분이 있음에도 살롱문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생각해야 할 것도 있다.



취향 도그마가 아닌, 자신을 찾아라


비즈니스 환경과 미디어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하여 '음'보다는 '양'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롱이 우리의 소통과 자아정체성을 찾는 새로운 탈출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곳에는 지식과 경험, 그리고 즐거움 같은 것들이 있고, 관심도 얻고 의지가 되는 기분이 들어 행복과 안정감을 주니 그럴 수 있다. 물론 거기에 진정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비사회의 모든 트렌드는 소비와 연결된다. 취향으로 뭉친 ‘살롱문화’도 관련 소비를 일으키기 위한 도그마 dogma일 수 있다.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혹은 플랫폼) 넷플릭스 Netflix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기가 막히게 내 취향을 찾아 추천해준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알고리즘이다. 영화를 보는 것은 내 취향의 패턴이 아니라 그날의 기분이나 함께 보는 사람과의 교감 때문에 평소에 관심이 없던 것도 볼 수 있으며, 삶이란 이런 의외성 속에서 다양성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또한 즐기면서 참여해야 하는데 목적성이 강해지면 결국 또 다른 강연회나 세미나 참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살롱에서는 취향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선택적 문화 향유’로 자신에게 맞는 취향을 경험하고 즐기면 그만인데, 자칫 취향을 가장한 트렌드 도그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큰 기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취향이나 취미가 같다고 신념이나 태도가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관계 안에서 나와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살롱으로 불리던, 사랑방 문화로 불리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려는 이 문화 현상이 또 하나의 ‘취향 소비 트렌드’ 자리 잡아 우리에게 공허함을 줄지도 모르니, 취향이라는 ‘있어빌리티’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즐겨라.




[칼럼후기]

1. 살롱문화는 사회적 배경과 더불어 주최자나 구성원들 간의 계층, 문화양식, 라이프스타일 등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 중심의 문화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적·미적·식도락까지 닮아간다. 그리고 그 취향은 특정 계층(계급)의 삶의 방식을 반영하게 되고, 그 삶의 방식 자체가 계층이나 계급을 상징하게 된다.


2. 굳이 남의 나라 먼 이야기 할 필요 없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사랑방 문화와 담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담론이란 말씀 담(談)에 논할 론(論)인데, 이 '담'자가 재미있다. 화롯가(炎)에 둘러 앉아 이야기(言)를 나눈다는 뜻이 합하여 '담'자가 된 것이다. 양반댁 사랑방은 주인이 거처하며 자신의 신분과 유교 덕목(德目)에 걸맞게 꾸며 놓고 손님을 접객하는 공간이었으며, 거기에 화로가 있었다.


3. 양반 외 계급(편의상 ‘평민’이라 하자)의 집에도 화로가 있기 마련인데, 화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자. 양반은 양반끼리, 평민은 평민끼리, 그들의 일상과 입장과 상황과 이해관계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그 담론은 결국 계층(계급)을 반영한 것이 아니겠는가? 살롱문화를 즐기는 분들이 많겠지만, 정말 자유로운 취향 소통이 되고 있는가? 그저 어떤 문화적 현상을 배우고 따라 하려고 참여하는 건 아닌지, ‘여러 사람이 모여 서로 사귀는 사교(社交)’의 의미가 잘 살리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4. 살롱문화와 소비의 관계에 대하여 ‘뭔 껌 씹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케팅적 관점으로 다양하게 해석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를 주며 부모의 학력과 직업, 소득 등(예전에는 차가 있는지, 가전제품이 뭐가 있는지도 기록했던 것 같다)을 적어 냈다. 가장 고민이 된 것은 ‘취미’와 ‘특기’란을 기재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없던 시절 취미는 대부분 독서나 운동과 같은 것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땐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카드사에서 취미와 특기가 아닌 라이프 스타일을 기재하게 한다. 이제는 취향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유통사에서 금융사, 왜 이런 것들을 할까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그 데이터를 가지고 관리와 마케팅에 써 먹겠다는 것이다.


5. 이어 소비적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의 모든 것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일어나고 소비는 브랜드가 아닌 철저히 '가격비교'라는 도마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브랜드로 소비를 하게하면 더 비싸게 팔 수 있는데, 가격비교를 통해서는 이러한 ‘가치 실현’이 어려워진다. 하여 취향소비, 가취관, 살롱이니 ‘트렌드’라는 용어로 자꾸 더 비싸게 팔고, 더 많이 팔라고 한다. 소비사회의 트렌드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니, 취향소비, 이것은 자기중심적으로 향유되어야 한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 #인식 #철학 #인문 #소비 #사교 #살롱 #살롱문화 #salon #취향 #소통 #침묵의나선 #눈팅 #트렌드 #라이프스타일 #디지털피로감 #가치관 #가취관 #긱이코노미 #정체성 #도그마 #넷플릭스 #추천 #자기중심적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심리 #일상 #사보 #칼럼 #작가 #칼럼니스트 #정호훈


일상을 함께 지껄이는 VagabondBoy의 페이스북

일상의 감성을 나누는 VagabondBoy의 인스타그램

이전 01화 트렌드 도그마의 종말을 고하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