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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Jan 09. 2019

트렌드 도그마의 종말을 고하라!

2019년, 트렌드가 아닌 각자의 삶에 집중할 때

최근까지 한국경제는 반도체 호황이 견인했다. 그러나 지속 성장은 불투명하다. 여기에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마저 못 찾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 유례가 없다. 복잡한 갈등은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파편화했다. 이 와중에 우리는 지향점을 잃고 트렌드가 지배하는 일상을 소비하고만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올해도 당신의 삶은 트렌드에 저당 잡힐 것이다. 이에 트렌드 대신 각자도생(各自圖生)할 것을 추천한다.



각자’ 정의를 외치는, 혼돈과 노no 답의 한 해


흔히, 추세, 경향, 그리고 유행을 트렌드라 한다. 트렌드는 ‘어떤 방향성을 가진 변화’를 의미하는 '현재진행형'의 개념이나, 해마다 트렌드를 결산하고 다음 해를 예측하는 것은 전 세계 연례행사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사전(辭典)회사’가 선정한 키워드를 일반적으로 많이 인용한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곧 트렌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없거나 사용할 수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의미하는 'nomophobia (no mobile phone phobia)’(케임브리지 사전), 유독성(有毒性)을 의미하며 관계, 문화, 환경, 정치인 행태 등을 설명하는데 많이 쓰인 'toxic'(옥스퍼드 사전), 그리고 사회경제 전반에 두루 쓰인 ‘정의 justice'(메리엄-웹스터 사전) 등이 '2018년 단어'로 선정되었다.


미(美) 주간지 타임 TIME은 '2018 올해의 인물'로 ‘기자 journalist’를 선정했다. 도대체 ‘정의 justice’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우리의 삶을 둘러싼 ‘유독 toxic’한 면면이 ‘휴대폰 mobile’을 통해 드러나는데, 시쳇말로 ‘총대 메는’ 이는 없는 상황이니 ‘2018년 단어’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부정부패, 부조리와 싸워 정의와 진실을 알리는데 목숨을 걸었던 ‘기자’들이 선정된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도 격동의 한 해를 보냈다. 새 정부에 거는 희망이 지방선거로 이어졌고 적폐 청산, 미투 운동, 갑질, 통일 이슈와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가 평창 올림픽이나 러시아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행사와 맞물려 다소 흥분되기까지 하는 한 해였다. 반면, 저출산∙고령화나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먹고사는 민생 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경제 문제와 남녀∙세대 갈등은 좌절감과 피로감을 주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급격한 변화 속에, 주의 주장만 있는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트렌드를 소비하는 것이 트렌드인 시대


각자 답을 찾아야 할 만큼 혼란스러운 사회, 그리고 개인 경제의 위기는 불안심리를 유발한다. 그리고 불안심리는 그대로 트렌드에 반영된다. 하여, 2018년은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욜로 YOLO’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 라이프’가 회자 되었다. 자신의 취향이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아웃 meaning out'과 함께, 아지트처럼 자기만의 안식처로 숨어 들어가는 현상도 공존했다.


개인의 삶과 행복이 중요해지는 이러한 현상은 소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격대비 만족할만한 성능의 제품을 추구하는 ‘가성비 소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소비’, 그리고 가성비에 심리적 만족을 더한 ‘플라시보 소비’가 유행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의 기준대로 살기엔 돈도 없고 피곤하니 ‘나’ 중심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목소리와 삶의 방식은 경직된 우리 사회에 많은 자극과 기회, 그리고 변화를 주었다.


이어 '황금 돼지의 해'라며 '희망'을 담은 트렌드가 제시되었다. 2019년 소비자들은 원자화하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환경’과 같은 굵직한 키워드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개인화되고, 작고, 실용적인 트렌드가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자기만의 스타일과 SNS를 기반으로 한 ‘1인 시장’, 단순한 복고의 재현이 아닌 ‘자(自)해석’, 밀레니얼 가족의 ‘적정행복 추구’ 등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이슈로 지속한다.


이에 따라, 올해는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고, 각자가 능동적인 삶을 살며, 다양성이 넘치는 한 해가 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왜 트렌드는 매년 다른지, 왜 트렌드는 기-승-전-‘소비’ 이야기만 하는지, 그리고 왜 최근 몇 년 사이 대한민국은 트렌드 신드롬에 빠져 있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트렌드에 속지 마라!


매년 연말∙연초면 트렌드 예측이 유행이다. 거친 비즈니스 환경에서 여러 흐름을 예측하여 지속성장을 담보해야 하는 기업은 트렌드를 분석하여 각자의 생존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개인의 일상도 그러해야 하는가?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삶을 공유하는 방식’, 즉 나름의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산업사회를 거치며 문화는 ‘대중문화’라는 산업으로 탈바꿈한다.


과거 농업 중심의 공동체는 산업사회를 맞아 도시의 노동자로 변모하는데, 지배계급은 이질적인 대중 mass을 새로운 가치와 규범으로 묶을 필요가 있었다. 문화의 표준화를 통해 대중의 정신과 소비행태를 그들의 부와 권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서다. 이 역할은 미디어를 통해 실현되었는데, 미디어의 발달은 대중의 사고와 감성 구조를 더욱 유사하게 만들어 결국 ‘대중문화를 통한 소비’와 ‘이데올로기를 통한 지배’를 더욱더 공고히 해주었다.


그리고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는 ‘끝없는 소비’를 지속하기 위해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대중은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대중문화의 소비를 넘어, 보다 능동적이고 세련된 소비를 통한 자기실현을 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비를 능동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며, ‘구닥다리’가 되지 않기 위해 보다 열심히, 자발적으로 트렌드를 소비하며 ‘스타일’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것도 세월이 좋을 때 이야기다. 먹고 살기 퍽퍽한 시대에 소비 여력이 없는 대중은 이제 맹목적으로 트렌드를 쫓지 않는다. 미래가 불투명하니 현실의 만족에 충실하게 되고, 피곤한 규범 대신 자신의 취향을 우선시하고, 남의 눈치 보며 브랜드를 소비하는 대신 실용적 소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즉, 각자도생의 시대에 트렌드가 더 이상 대중의 소비를 자극하는 것은 한계가 온 것이다. 그러나 소비사회는 소비를 지속시켜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트렌드가 작동하지 않으면 또 다른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


최근 트렌드들을 보라.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몇 년은 지속하여야 트렌드라고 하는데, 1년도 못 가는 일시적 유행(패드, fad)이 트렌드라니! 물론, 유행은 시간의 개념과 동조 범위(혹은 인기)를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므로, 영리한 소비사회는 드라마나 SNS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대세감을 형성하여 기필코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트렌드라는 메커니즘에 빠져 탕진하기 싫다면 트렌드에 속지 말아야 한다.



“Do your job!” 혹은 각자도생


이렇듯 소비사회는 소비자로 하여금 ‘트렌드 소비를 통해 남보다 앞서가고 있으며, 세련된 자기실현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내가 소비하는 것이 곧 나’이며, 소비만이 나의 존재감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중에게 있어 트렌드는 ‘단지 소비하게 만드는 힘’이며, 그 외에는 악영향이 더 크다. 적어도 지금 시대에는 그렇다.


가령 ‘핵인싸(무리를 주도하는 인사이더)’가 되려면 ‘급식체(10대들의 온라인 용어)’를 알아야 하고 모르면 ‘아싸(아웃사이더)’라며 타자화(他者化)하는 트렌드는 소통이 아닌 갈등만을 유발함에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불안감은 애나 어른이나 이 정체불명의 말을 쓰게 한다. 학벌보다 실력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학벌로 계급이 정해지는 학벌사회 타파를 주장하지만, 학벌에 기반한 서열과 계층상승의 욕망을 그린 ‘SKY 캐슬’ 같은 드라마가 유행되기도 한다. 작용과 반작용처럼 트렌드도 역트렌드가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한눈팔면 미디어는 우리 스스로 시대정신을 잊게 만든다. 또한 다양성을 원하면서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는 (가치관이 아닌) ‘가취관’ 같은 트렌드는 오히려 편향성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몇몇 연구소에서 해마다 내놓는 트렌드가 시금석은 아니다. 극도로 다양해지는 지금의 시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념과 태도를 거기에 맞추고 무조건 따르는 ‘트렌드 도그마(교조주의 dogmatism)’를 조심해야 한다. 트렌드가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예측이므로 예측에 자신을 맞춰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 발자국씩 내딛음으로써 현실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예측대로 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래를 여는 열쇠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으므로, 트렌드가 아닌 각자의 삶에 집중하자! 그것이 가장 확실한 ‘개인의 취향’을 실천하는 길이며, 예측을 현실화하는 길이다.


[각자도생 연관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심리학이 답한다]




            ※ 브런치 매거진, 『프로그래밍화된 심리』는 심리학 '이론' 자체보다는 '개론'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심리학자가 아닌 까닭에 적정선에서 다루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심리학을 심리학 밖으로 꺼낼 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 현상을 모티브로 하여, 우리 일상의 고민과 소비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우리네 고민의 대부분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이념, 정체성, 관계, 그리고 안정감(불안 해소)까지도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성, 그리고 혼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소비사회의 메커니즘과 매스미디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이죠.
           즉 '불안'과 '죄책감'과 같은 심리상태는 사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세상을 보는 틀' 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의 방식'마저 재단 당하고 암묵적으로 지시당한 결과 느끼게 되는 '프로그래밍화된 심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그 어떤 '메커니즘'에 더 강하고 깊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리를 더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자신의 삶에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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