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서 드물게 먼지 하나 없는 비 갠 아침.연회색빛 컨테이너 건물들 사이,보기에도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필체의 간판이 눈에 띈다.
한국의 삼청동같이 미술관, 카페 등이 몰려있는 알서커에비뉴 alserkal avenue에 위치한 피코 PEKOE가 바로 그곳이다.
티 앤 브레드 바 Tea and Bread Bar?
이름만 들어서는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인도의티소믈리에와 중국인 파티쉐가 함께 만든, 두바이에서 빵으로 꽤 유명한 곳이다. 비싸고 겉모습만 화려한 베이커리가 즐비한 두바이에서 얼마나 맛있길래 그런가? 하고 늘 궁금했다.
아이들의 짧은 방학기간, 근처에 있는 미술학원에 아이들을 보낸 후, 혼자 사심이 섞인 휴식시간을 만들어 이곳에 왔다.
허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쩜 이리 내 취향일까. 원목 가구와 톤 다운된 다기들이 한눈에 봐도 따뜻하고 정갈하다.
도쿄 번화가에서 딱 한 블록 떨어져 동네 사람들만 아는 카페 같기도 하고, 숨겨진 정원이 있을것 같은 교토의 한적한 카페스럽기도 하고, 북촌에 있을법한 다도 카페 같기도 하다. 여전히 정체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차 한잔과 빵을 먹기엔 꽤 마음에 드는 분위기다.
운동을 마치고 온 커플과,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외국인을 마주 보며 자리를 잡았다. 차 한잔만 하려했는데, 벽면에 미술관처럼 전시해 둔 빵들을 보니, 빵 하나는 먹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브레드 앤 스프레드, 그리고 히비스커스 상그리아.
브레드 앤 스프레드는 빵과 잼 혹은 버터 중 2가지, 빵에서 2가지를 고르면 된다. 오늘도 역시나 추천을 받아,이곳에서 직접 만든 펌킨사워도우, 밀크브레드, 거기에 미소버터와 망고 앤 바질 잼을 주문했다.
바삭하게 구워진 펌킨 사워도우에미소버터한 스푼. 미소 버터라길래 어제 아이들에게 오이와 함께 줬던 쌈장 마요네즈가떠올랐지만, 맛은 완전히 달랐다.짭짤하면서 고소하고,버터의 부드러운 맛까지 더해져 빵과 함께 먹으니맛이 아주 좋았다. 명란바게트 같기도 하고, 자주 먹던 사워도우가, 미소버터를 만나니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다.
망고앤바질잼역시, 망고의 단맛을 바질이 잡아주어 적당하게 달았고,또 바질 특유의 향이 느껴져 꽤 마음에 드는 한입이었다.
두바이에 와서는 작은 것에 불같이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작은 한입들에 기분이 꽤 좋아진다.
안에만 있기에날이 너무 좋아, 자리를 야외로 옮겨, 히비스커스 상그리아 한잔을 마셨다. 아이를 갖기 전엔, 혼자 밥도 잘 못 먹었는데, 두바이에 와서 정말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되었다.
다기에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와인잔에 가득 한잔이 나와, 혹시 알코올이 들어간 건 아닌지 묻기까지 했다. Absolutely Non- Alchole 앱솔루틀리 논알코올.
하지만 잔때문인지, 뭔가 햇살 가득한 대낮에 시원한 화이트와인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 비온뒤 맑디 맑은 하늘도 이 분위기에 한몫 했다.
카페 배경음악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베이비 원모타임'의 어쿠스틱버전. 도대체 이 무슨 조화인가 싶지만 거슬리지않았다. 정체성이 뭐가 중요한가, 여전히 국적은 불분명한 조합들이지만, 딱 두 시간 자유시간이 말 그대로 자유로웠다. 이래서 티 앤 브레드 바 인가? 차 한잔, 빵한입에 딱 기분 좋게 취했다.
공존의 도시, 두바이에선 여러 나라의 문화가 함께 모여 두바이만의 독특한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섞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따로 놀지도 않고, 와인과 안주, 빵과 버터의 페어링처럼 서로의 장점을 잘살려새로움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내가 느낀 두바이스러움이고 두바이의 힘이다.
그리고 피코 역시 심플함과 좋은 원료라는 방향성으로 여러 가지 것들이 어우러져
세련되고, 간결한두바이 바이브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피코는 참으로 두바이스러운 빵집이다. 두바이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 자유시간 끝. 이 두바이 바이브를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2시간도 아쉽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있고 싶다. 아마 조만간 또 가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