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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Jan 26. 2024

인생도 팝업처럼

한정판 두바이 겨울 사막카페, 히든 Hidden

[ 사막 카페  Desert Cafe ]

두바이의 겨울에만 한시적으로 문을 여는, 사막 한 가운데 건물도 없이,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음료와 먹거리를 파는 두바이의 카페들

처음 맞이한 두바이의 겨울은 신기했다. 


여름만 있을 줄 알았던 이곳도 겨울이 온다. 한국으로 치면 초가을의 날씨. 그리고 길어야 4개월. 1년 중 4개월이라는 이곳의 짧은 황금기를 누리기 위해 모두의 마음이 바쁘다. 곳곳에서 야외 행사가 열리고, 실내에만 있던 카페들은 공원이며, 바닷가에 뚝딱뚝딱 팝업Pop-up 카페들을 연다. 분명 어제 아무것도 없던 곳에, 눈 깜빡하면 새로운 카페가, 레스토랑이 세워져 있다. 두바이에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관계처럼 끝이 보여서 더 아쉬운, 제대로 된 한정판 Limited이다. 

그리고 백미는 겨울에만 문을 열고 봄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겨울 사막 카페들. 그중에서도 나의 선택은 단연코 히든 카페 Hidden Cafe이다 

사막하면 버기카, 전통춤, 낙타 같은 사막투어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히든은 뭐랄까 날씨 좋은 날 한강 피크닉 나가는 기분처럼 가볍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게 되는 사막 피크닉 장소다.거기에 모닥불까지 가능한! 


"날씨도 좋은데 사막이나 갈까?"


마치 한국에서 자주 가던 남양주 가자는 말처럼, 사막 가자는 말을 이리 쉽게 하는 날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40분 거리에 사막이라니.  아, 나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에 살고 있었지.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소리인 아잔 소리가 아니면 여기가 영국인지, 두바이인지 잊고 살다가도, 사막을 떠올리면 내가 아라비안 반도 한복판에 살고 있는 것이 실감이 난다. 


가깝지만 그래도 사막으로 들어서는 건 언제나 긴장이 된다. 기름은 있는지, 타이어 공기압은 괜찮은지, 휴대폰 충전은 되어있는지. 마시멜로와 밤부스틱을 들고 , 사막 카페로 한번 달려봅시다. 

역시나, 한정판 겨울 사막카페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은 아니었을 듯. 오후 4시에 문을 여는 두바이 겨울 사막 카페는 오픈 한 시간 만에 이미 만석에, 대기까지 있다.  아, 괜히 왔나싶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모드의 두바이가 아니던가. 넓은 모래바닥에 자신들의 캠핑의자나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정신없을 법도 하지만 워낙 넓은 사막공간이라 누구도 크게 방해받지 않는 듯 본인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줄 서기에 익숙한 한국인이지만 2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시간을 듣고 그냥 일몰이나 보고 가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들고 온 마시멜로가 아쉬워 모닥불만이라도 가능한지 물었다. 온 지 10분 만에 간이 방석과 모닥불이 우리에게로 왔다. 역시 두바이는 정중하게 부탁하면 백 퍼센트 아니어도 80퍼센트 정도의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이랬다가 저랬다가의 향연이다.

아이들은 두바이 거주민답게 들어서자마자 훌훌 신발을 벗어던지고 씩씩하게 사막을 오른다. 발이 푹푹 빠져 꽤 걷기 힘든데도,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서로 깔깔대며 오르락내리락 신이 났다. 겁이 많아 아이들 손을 잘 놓지 못하는 나도 사막에서 만큼은 그냥 마음 편히 아이들을 놓아준다. 나도 반에 반에 반쯤은 두바이 사람이 되어가는 건가. 그만큼 사막에서의 일몰은 긴장된 모든 끈을 탁 끊어버릴 만큼 아름답다. 

해가 지고 나니 타오르는 장작불이 빛을 발한다. 아 이게 얼마만의 불멍인가. 많이도 그리웠다. 그것도 사막 한가운데서 말이다. 치킨과 맥주는 없지만, 우리에겐 마시멜로우와 밤부스틱, 그리고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있으니 그걸로 됐다. 아이들에게 오늘이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사막 카페 갔을 때 좋았는데, 기억나, 엄마?" 웃으며 이런 얘기하는 날이 오긴 오겠지? 

나는 '한시적'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힘든 일이라면 곧 끝날 것이니 이 또한 나쁘지 않고, 좋은 일이라면 그만큼 소중할 테니 그 또한 좋지 아니하겠는가. 겨울 사막 카페가 더 특별한 것도 곧 문을 닫을 한시적 팝업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두바이도 몇 년 후 사라질 팝업이다. 그 정해진 기간이 있다는 것이 이리 큰 힘이 되는지 몰랐다. 여전히 한국에서의 내 삶이 그립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한시적 팝업이 아닌가. 겨울 사막 카페를 대하듯 가볍게, 여유롭게 즐기면 되는건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모두가 잊고 살지만, 인생도, 사랑도, 육아도, 그리고 해외생활도, 한시적 시간이라는 걸 늘 염두에 둔다면, 모든 것이 좀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전하는 히든의 조언이다. '인생도 팝업처럼' 이라고 말이다.

2시간 남짓 활활 타던 모닥불이 꺼졌다. 겨울 사막도 겨울인지라, 불이 꺼지니 꽤 춥다. 집에 가라는 신호가 왔으니 우리도 한정판 겨울 피크닉을 끝내고 집에 가자. 주머니 가득, 사막 모래와 또 다음날을 살아갈 달콤한 힘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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