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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Feb 04. 2024

나를 위한 환대, 가와 Gahwa

두바이 카페, 로우 커피 컴퍼니 Raw Coffee company

[ 가와 Gahwa ]

아라비카 커피의 아랍식 옛말.

수많은 창고와 공장들로 모래 먼지가 풀풀 풍기는 두바이 알 쿠아즈 Al quoz 지역. 여기에 카페가 있긴 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마치 에티오피아 어느 커피농장에 있을 법한 창고 같은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중동 지역 최초로 스페셜티 커피 로스팅을 시작한 로스터리 카페, 로우 커피 컴퍼니 Raw Coffee Company 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총 4천 개의 카페가, 그리고 그중 650개의 카페가 두바이에 있다. 임신 기간에도 디카페인 커피 한잔은 늘 먹었을 정도로, 커피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곳의 모든 커피가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 커피는 너무 밍밍하거나, 혹은 너무 써서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가와 Gahwa, 이곳에서 전통 아라빅 커피로 통하는 커피는 한약 저리가라로 쓴맛이 느껴져, 아직은 그 깊은 맛을 즐기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늘 스타벅스. 익숙한 맛이 그립기도 했고, 음식도 입에 안 맞는데 커피까지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두바이에는 한 블럭마다 스타벅스가 있어 나의 커피 사랑은 계속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7시에 아이들과 집을 나서는 새벽 등원 후 너무 잦은 빈속 커피로 나의 위는 결국 탈이 났고, 습관적으로 아침마다 먹던 커피를 줄여야 했다. 그렇다면 양보다 질! 빈도를 줄이는 대신, 여기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자. 15세기부터 커피 로스팅을 시작한 것도 중동 문화권이니, 그만큼 새로운 커피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찾은 보물 같은 카페가 바로, 로우 커피 컴퍼니 Raw Coffee Company이다.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서의 커피다. 두바이는 어디든 타인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무시나 무관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배려를 의미한다. 카페에서도 내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늘 예의주시 하지만, 나의 시간을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바이는 혼자 커피를 마시기 아주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왠지 추천을 받아보고 싶었다. 내리는 방식부터 원두 종류 등 두바이답게 커피 메뉴만도 29개이니, 선택이 어렵기도 했다. 스타벅스 또는 아라빅 커피가 당연했던 17년 전 처음으로 스페셜티 커피시대를 열었으니, 이곳의 안목을 한번 믿어보자. 

한눈에 봐도 친절해 보이는 바리스타는 내가 커스텀 커피를 주문했나 착각할 정도로 차가운 게 좋은지 따뜻한 게 좋은지, 쓴맛이 좋은지 신맛이 좋은지, 과일 향이 좋은지 초코렛 향이 좋은지, 부드러운 게 좋은지 산뜻한 게 좋은지, 나도 잊고 있던 나의 커피 취향을 찾기 위해 세세하게 질문했다. 두바이의 많은 곳은 늘 이렇게 친절하다. 그만큼 다양한 원두와 커피 내리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서겠지만, 오랜만에 내 취향을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추천은 콜드브루 라떼. 자신을 믿어보라고 했다. 

평소 쓴 커피는 싫어했지만 콜드브루 라떼의 진한 그 맛이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유와 만나니 고소한 맛이 배가 되었다. 마치 알람 소리 없이, 잠에서 스르르 눈이 떠지는 기분 좋은 아침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부드럽게 나를 깨우는 느낌이다. 그녀의 추천은 옳았다. 


중동 문화권에서 가와라고 불리던 커피는 배려와 환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면, 바로 앞에서 원두를 직접 갈고, 끓이고, 카다멈 같은 향신료로 향을 더해 그 사람만을 위한, 정성 어린 한 잔을 대접했다. 

그리고 2024년 오늘, 나에게 딱 맞는 커피 취향을 찾아주는 이 카페에서 나 또한, 나만을 위한 환대를 느꼈다. 방법과 맛은 달라졌어도, 타인을 대하는 진심 어린 마음과 태도가 이곳의 커피로 이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로우 커피 컴퍼니가 17년을 사랑받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커피는 이태원 챔프커피 Champ coffee와 방이동 프로퍼 커피바 Proper Coffeebar였다. 챔프커피는 날씨 좋은 봄날에 회사 동기, 후배, 팀원들과 재잘거리며 마시던 그 쌉싸름한 맛이, 프로퍼 커피바는 아이가 없던 신혼 시절, 남편과 늦은 저녁, 밤마실로 들러서 마셨던 플랫 화이트의 고소함이 좋았다. 돌이켜 보면 두 곳의 커피맛도 커피맛이지만, 좋아했던 사람과 맛있는 커피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회사를 그만두고, 늘 아이들의 시간표에 나를 맞추면서, 비단 커피뿐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내 취향에 맞는 일은 조금 미뤄두는 일이 잦았다. 후회는 없지만, 그렇게 매일매일의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면서 내 취향에 대해 점점 무뎌져 갔다. 커피도 습관적으로 빠르게 아이스라떼.


그래서인지 전 세계에서 두바이에 딱 하나 있는 이 카페에서, 혼자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내 입맛의 커피를 찾고, 또 대접받는 이 시간이 소중했다


'취향의 독립'이라고 해야 할까? 


커피 한잔이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간섭도 없이 온전히 내 취향이 무엇일까 재정의하고, 또 그것을 찾아내는 여정에서 오랜만에 나를 느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 타인 You보다는 나 Me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로우 커피 컴퍼니에서 내가 찾은 두바이식 작은 행복이다.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릴러 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돌아가자. 나의 환대를 기다리는 꼬맹이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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