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최초 크루아상전문점, 플래키 패스츄리 Flaky pastry
중동에서 신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초승달을 상징하는 빵으로, 얇은 버터 반죽을 돌돌 말아 초승달 모양으로 구운 페이스트리 빵
두바이 맛집을 잘 알고 있는 미모의 금발 머리 터키 엄마, 메타피에게 두바이에서 제일 맛있는 빵집을 물었다. 화려한 그녀의 외모만큼 어디 호텔이나 두바이 몰에 있는 베이커리를 얘기하려나 싶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세계 최고의 빵집은 터키에 있는 크루바상Kruvasan이에요. 가게 이름부터 크루아상이라니까요."
터키에 돌아가면 바로 그곳부터 간다는 그녀의 말에 터키의 크루바스라는 비스킷이 크루아상의 시초라는 기원설 중 하나가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구나 싶었다. 크루아상이 프랑스만의 빵이 아니었구나.
두바이도 다르지 않다. 두바이에서 바게트를 팔지 않는 빵집은 있어도, 크루아상을 팔지 않는 빵집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트, 카페, 아이들 키즈카페, 심지어 주유소 옆 작은 슈퍼마켓에도 늘 크루아상이 있다.
맛은 어째 좀 시원찮다.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나쁘게 말하면 눅눅하고 습하다. 꼭 두바이 여름날 밖에 꺼내둔 빵조각 같다. 크루아상 천국은 아니고, 크루아상 천지 정도 되겠다.
하지만 플래키 페이스트리의 크루아상은 달랐다.
Flaky pastry는 바삭한 페이스트리라는 뜻으로, 스페인 출신의 파티쉐리가 이끄는 두바이 최초의 고메 크루아상테리 Croissanterie, 즉 크루아상만 파는 크루아상 전문점이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케이크, 쿠키, 도넛 등 20개가 넘는 다양한 빵 메뉴들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두바이의 다른 베이커리나 카페에 비하면 메뉴가 조촐하다. 주인장의 배포가 느껴진다. 한국에서도 30년 중앙시장 꽈배기집, 에스프레소만 파는 리사르 커피와 같이 주 종목에 집중하는 맛집을 좋아했던 터라, 이곳이 더욱 궁금했다. 인사동 옥수수 호떡 가게에 줄 서 있는 것 마냥 아이보다 내가 더 신이 났다.
플래키 페이스트리가 있는 두바이 시티워크 City Walk지역은 두바이의 계획 거리로, 트루먼쇼 세트장처럼 뭔가 인공적인 도시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굉장히 정돈된 거리다. 그곳에서 전통 복장인 칸도라와 아바야를 입은 에미라티 부부들과 나란히 앉아, 중동의 전통 디저트도 아니고 크루아상과 커피라니. 국적이 사라진 어디 미래도시의 식사같기도 하고, 생경하지만 기대가 된다.
크루아상 집에 왔으니 크루아상을 먹어야지. 플레인 크루아상 2개와 두바이에서 흔한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기본이 탄탄하니, 두 가지 크루아상 모두 맛이 좋다. 갓 나와서인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그 맛, 겉은 바삭 속은 촉촉의 정석이다. 버터향은 풍겨지나 느끼하지 않고, 바삭하지만 까끌까끌하지 않고 입속에선 매우 부드럽다. 뭐가 다른 거지? 계속 생각하면서 먹었다. 아마 굉장히 얇은 페이스트리 반죽이 수십 개의 층으로 쌓여 맛을 풍성하게 만든 듯했다. 가능하다면 크루아상 종류별로 다 먹어보고 싶었다. 왜 크루아상만 파는지도 알 것 같았다.
프랑스의 고급스러움이나, 오래된 장인의 느낌은 아니더라도 두바이란 도시답게 생동감 있고 세련되었다. 그것이 맛으로까지 이어지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만이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가루까지 싹싹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두 녀석을 보니, 역시 달콤한 한입은 나보다 이 녀석들이 더 잘 알아본다.
만약 이곳이 다른 두바이 카페들처럼 이것저것 다른 빵도 많이 팔았다면 이렇게 사랑받는 곳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종과 국적도 다양해서인지, 선택지에 있어서는 다다익선이 미덕인 두바이에서 선택과 집중이라. 이 또한 자신감이고, 용기일 것이다.
두바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어떤 도시가 인공적이지 않겠냐마는 두바이는 정말 모래 위에 모든 것이 계획하에, 사람을 위해 세워진 '사람의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두바이에선 비단 카페 메뉴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 40도 여름에 스키도 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정도와 깊이의 차이겠지만 없는 건 없다. 오히려 많다. 이 '사람의 도시'에서 많은 두바이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지키며 대세 없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반대급부로, 선택지가 많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 선택지들은 오히려 부담된다.
그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한국에서 무언가 정해야 할 때 나의 가장 편한 대답은 "아무거나"였다. 욕심이 많아서도 그랬지만, 선택에서 오는 잘못된 결과에 책임이 두려워, 에라 모르겠다 하며 대세를 따르며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두바이가 나에겐 더 어려웠다.
이제라도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선택지의 홍수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하나를 고르는 자신감을 갖는 것. 엄마로서든, 나 자신으로서든 두바이에서의 시간 동안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나의 주 종목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는 일, 이 또한 나에게 달콤한 위안이지 않을까. 크루아상 하나에 별생각이 다 드는 두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