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속 팔레스타인식 집밥, 마마이쉬 MAMA’ESH
[ 후무스 Hummus 와 아라빅 브레드 Arabic Bread ]
아랍어로 병아리콩이라는 뜻의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올리브오일, 참깨, 레몬즙 등을 함께 갈아 만든 중동 전통 소스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화덕에 구워낸 아라빅 브레드와 함께 먹는다.
두바이에서 모든 것이 입에 안 맞았다. 한국에서도 딱히 한식을 꼭 챙겨 먹지도 않았고, 입맛이 특별히 까다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오니 까탈도 이런 까탈이 없다. 온 지 한 달 만에 2kg이 빠졌다. 두바이에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는 많았지만, 너무 달거나, 너무 짜거나 혹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만든 음식도 영 내 맛이 아니다. 내 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두바이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곳이다. 바닷물을 담수화하여 사막임에도 물 부족 없이 살 수 있지만, 천하의 두바이도 고창 수박, 해남 고구마 같이 맛 좋은 제철 특산물까지는 만들어 내지는 못하나 보다. 대신 시리아 감자, 인도 무, 스페인 양파, 이란 수박, 포르투갈 대파까지, 전 세계에서 온 식재료들이 즐비하다. 스페인 양파와 시리아산 감자로 끓인 된장찌개라니. 뭔가 토마토스프 맛이 날 것 같다.
나는 결혼 10년 차, 전업주부 3년 차다. 잘은 못해도, 인터넷 레시피를 보며 맛은 꽤 비슷하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나라의 식재료들로 음식을 하니 이거 원, 자취 한번 안 해본 새내기 주부 저리 가라 하는 솜씨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내 입에 잘 맞지 않았다.
두바이란 도시도 그랬다.
살고 싶은 도시 1위, 화려한 분수 쇼, 세계 최대 높이 빌딩 부르즈 칼리파(Burj Kalifa), 세계 최대 인공섬 팜주메이라(Palm Jumeirah). 하루 여행으로 즐기기엔 참 멋진 것들이지만 이것들이 내 일상이 되기엔 너무 화려하거나, 너무 비싸거나 혹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빛 좋은 개살구'. 내가 이 말을 언제 써보나 했는데 처음 만난 두바이가 딱 그랬다. 두바이의 음식들처럼 낯설고, 내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두바이에 희망을 갖게하는 두바이 음식을 만났다.
마마이쉬 MAMA'ESH의 의미는 마마라는 말이 들어가니 엄마 손맛 같은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유대어로 [진짜의, 진심의]란 뜻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팔레스타인 가정식 레스토랑이다. 주말 아침이면 9시에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꽤 인기가 좋다. 우리도 주말 아침 서둘러 이곳을 찾았다.
잠깐의 기다림 뒤, 해가 잘 드는 야외 자리에 앉아, 마마이쉬 브랙퍼스트 플레이트 MAMA'ESH Breakdast Platter 그리고 터키식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브렉퍼스트 플레이트는 아라빅 브레드, 팔레스타인 후무스, 오이, 당근, 토마토, 올리브, 치즈, 계란이 커다란 트레이에 담겨 나온다. 이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한 상을 특별하게 하는 건, 화덕에서 갓 구워 나온 아라빅 브레드와 크림치즈같이 부드럽고, 콩국수처럼 담백한 후무스다.
따끈따끈 갓 구운 아라빅 브레드를 쭉 찢어서, 후무스를 푹 찍어 먹으면 이게 뭐라고, 그 한입이 굉장히 담백하고, 부드럽다. 콩이라면 질색인 나조차도 후무스를 싹싹 긁어 아라빅브레드에 발라 먹는다. 여기에 함께 나온 토마토와 오이, 그리고 진한 터키식 에스프레소 한잔.
아, 좋다!
그 어떤 한입보다 든든하고 꽉 찬 맛이 느껴진다.
이곳의 모든 재료를 아랍에미리트산으로 써서 그럴까? 늘 주문과 동시에 화덕에서 빵을 구워서일까?마마이쉬의 음식을 먹으면 어느 중동 지역 가정집에 초대받아 텃밭에서 갓 따온 재료와 화덕에서 꺼낸 갓 구운 빵으로 따뜻한 집밥을 대접받는 느낌이다. 맛과 메뉴는 익숙하지 않지만, 음식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온기는 한국의 집밥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두바이의 많은 음식들과 다른 이 집의 특별함일 것이다.
그래서 마마이쉬를 엄마로서도, 나 자신으로서도 참 좋아한다.
이곳은 소박하다. 하지만 투박하지 않다. 섬세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금커피 같은 두바이의 화려한 모습을 떠올렸다면, 이곳이 기대 이하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두바이에 다시 돌아와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마마이쉬를 꼽을 것이다. 그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특별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어쩌면 나는 화려한 두바이의 겉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나와 맞지 않는다고, 힘이 든다고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굳이 나를 이곳에 맞추려고 하지 말자. 흉내 내기는 언젠가 탈이 난다. 마마이쉬처럼 나다움, 내 것이 뭔지 알고 묵묵히 지켜가는 것. 그것이 해외든 어디든 잘 살아가는 법일 것이다.
따뜻한 집밥은 그것이 어느 나라의 것일지언정 분명히 힘이 있나 보다. 마마이쉬의 후무스와 아라빅 브레드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달콤한 힘을 얻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