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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데이나 Dec 14. 2024

두바이에서 구절판을 요리한다는 것은

두바이에서 한식을 대접하는 이유

두바이 11월의 수요일

아침 9시.


계란 지단을 얇게 부친 후, 한 김 식혀 길게 썰었다. 소금에 살짝 절여둔 애호박과 오이는 채를 썰고 기름에 빠르게 볶았다. 채 썰어 불고기 양념에 재워둔 오이스터 블레이드라는 소고기 부위를 볶아 그릇에 담았다.


자, 이제 하나만 남았다.

바로, 밀전병.

실패하면 아랍빵인 피타브레드를 동그랗게 자르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어제 마트에서 제일 얇은 피타브레드를 사뒀다. 쉼호흡을 한번 하고, 물에 섞은 밀가루를 얇게 한 숟가락 떠서 동그랗게 퍼트렸다. 두께는 얇게 잘 펴진 것 같은데, 모양이 어째, 동그랗게 딱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시 할 시간은 없어, 일단 담아냈다. 그리고 파키스탄산 잣을  밀전병 위에 올렸다


그렇게 나의 첫 구절판, 아니 몇 개 재료를 망쳐서 올리지 못한, 두바이표 육절판이 탄생했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을 내려주고, 집에 와서 소파에 누워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인데, 이렇게 아침부터 부지런을 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두바이에서 사귄 나의 두바이 친구 칼라 Carla를 우리집에 초대한 날이다. 얼마 전 초대받은 그녀의 생일파티에 가지 못해 미안한 맘에, 호기롭게 "내가 생일상 해줄까?"라고 말을 꺼내버렸다. 밖에서야 같이 한식당도  보고, 일본라멘도 먹어보고, 함께 밥 먹는 사이였지만, 이렇게 집초대는 처음이었다.

초대를 하고서 몇 번이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그냥 밖에서 먹을걸, 어쨌든 외국인인데 무슨 메뉴를 해야 하나, 입맛에 또 안 맞으면 어쩌나, 젓가락을 잘 못쓸 텐데, 포크를 놔야 하나, 아니면 보조장치가 있는 딸아이의 티니핑 젓가락을 둬야 하나,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나에게 유일무이한 소중한 두바이 친구이니, 한 번은 따뜻한 한국식 집밥을 대접하고 싶었다.


두바이에 좋은 사람은 많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 아부다비나 다른 중동 도시들 어디에서보다 두바이는 외국인에게든, 어린이들에게든 아주 많이많이 친절하다. 하지만 좋은 친구는 만들기 쉽지가 않았다.


만나면 반가운 인사와 포옹은 무슨 몇 년을 함께 지낸 절친같이 하다가도, 이게 언어의 장벽인지 문화의 차이인지 뭔가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나 역시 말 한마디에도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실례인가? 대화를 하면서도 한 번씩 주춤하게 되었다.

그래서 칼라가 더 소중했다. 일단 그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많은 한국 콘텐츠를 검색한다. 덕분의 그녀의 알고리즘은 한국의 실시간 뉴스들을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보내주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나보다도 빠르게 한국소식들을 알고 있다. 수많은 한국 과자들과 음식들은 이미 섭렵했고, 며칠 전 대화에서는 진짜 대학시험에 비행기 뜨는 것도 지연시키냐며, 호기심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묻기 바빴다.

처음엔 내가 구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에 대해 물어오는 그녀의 질문들이 살짝 귀찮기도 했지만, 그 질문과 답을 하는 사이에 그녀와 나 사이에는, 내가 살아온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공감대가 꽤 깊이 생겨났다. 스카이 들어가는 게 진짜 힘들겠다고 나와서 취직은 잘되냐고 묻는 걸 보고, 이름을 이제 김칼라씨로 바꿔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서 칼라에게만큼은 질문이든, 대화를 할 때, 이런 게 문화적 결례일까, 해도 될까 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두바이에서야 그 소중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한국식 집밥, 두바이 한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진짜 집밥을 해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젓가락질을 쉽게 해낸 그녀는, 갓 지은 흰쌀밥에 갈비찜, 콩나물국, 어묵볶음, 시어머니표 콩자반, 중국마트표 김치 그리고 구절판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주었다. 남길까봐 조금씩만 덜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이렇게 잘 먹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혹시나 뱉을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후련한 맘에, 식사가 끝나고, 그녀에게 가장 맛있던 메뉴를 물었다. 내심 손이 많이 갔던 구절판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Radish 무'였다. 엥?  무인가 했는데 갈비찜에 고명으로 들어간 무였다. 그래, 원래 갈비찜에 남은 감자랑 무랑 국물이랑 비벼먹는 게 한국사람에게는 찐이지.라고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과는 어찌 되었든, 이렇게 두바이에서 구절판을, 그것도 독일친구에게 대접한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별일없는 사막도시에서 보낸 특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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