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 도덕성>을 통해.
세월호, 메르스, 방산비리, 뇌물수수, 최근엔 옥시 살균제 사태까지...
연이어 발생하는 각종 비리, 안전사고들. 과연 이게 전부일까요? 어쩌면 이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노답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요인을 저는 <EBS 다큐프라임 아이의 사생활 2부 - 도덕성>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방영되어 많은 이들의 극찬과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다큐멘터리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덕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가장 명백한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 너무나도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실험 전날, 참가자들에게 일당으로 10만 원을 준다고 말을 하고는 실험이 끝난 이후에 5만 원이 더 든 15만 원 봉투를 주는 실험입니다. 과연 참가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예상하셨듯이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15만 원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과연 우리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5만 원을 돌려줬을까요?
여기 또 한 가지 실험을 실시합니다. 도덕지수 검사 측정을 통해 도덕지수가 높았던 6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빨간 티 그룹과 도덕지수가 평균이었던 6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파란 티 그룹 간의 도덕성 관찰 실험입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요?
'콜버그의 도덕성'에 따르면 저학년 아이들의 도덕성 수준은 대개 3단계인 '칭찬과 평판'을 중시하는 성향을 띤다고 합니다. 즉, 칭찬받는 행동을 좋은 행동으로 판단하고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죠.
과연 이러한 특성들이 이 12명의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요?
도덕성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고자 제작진과 서울대 연구팀은 초등학생 300여 명을 대상으로 '도덕성'뿐만 아니라 집중력, 공격성 등의 다른 요인들도 함께 검사를 실시합니다.
실험 결과, 도덕성은 아이의 모든 행동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집중력, 또래문제, 과잉행동, 공격성, 심지어 왕따 가해 경험, 왕따 피해 경험 등과도 모두 유의미한 관계를 나타낸 것이죠. 도덕성이 높은 친구들이 집중력도 좋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며, 왕따 가해 참여도 낮고, 피해 경험도 낮다는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도덕성이 아이의 거의 모든 행동을 규정하고 조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성은 각종 변수의 연속이자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도덕성을 지켜가기가 대단히 어려워지는 것이죠.
아래의 실험을 한 번 볼까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선생님의 소중한 사진을 '선생님'이 찢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놀람을 느끼며 고민을 하는 모습이지만, 결국 사진을 찢습니다.
아이에게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하진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최대의 변수는 바로 나를 보호하고 있거나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의 요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권위를 가진 사람의 요구가 있을 때 자신의 신념이나 양심은 쉽게 꺾이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불행히도 이건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심리학 실험 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인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와 복종에 대한 실험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문제를 푸는 사람이 오답을 선택할 때마다 단계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해야 하는 실험에서 기껏해야 0.1%의 사람만이 최고 전압인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론 무려 65%의 사람들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전압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다.
권위, 제복과 집단, 4달러를 받았다는 심리적 의무감 등 인간은 너무도 쉽게 이것들에 자신의 도덕성을 맡겨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정서적, 인지적으로는 당연히 어떤 상황이든 도덕성과 상식을 지킬 것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이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는 그 얘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때의 상황이나 분위기, 환경, 권위, 관계 등이 개인의 도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에 개인의 신념이나 인격만으로 이 변수들을 이겨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성은 유아기 때는 나의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세상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거나 타인의 시선이 자신의 시선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등 누구나 같은 순서로 발달하지 않으며 나이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그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6~7살 정도의 아이들은 상대방의 호의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게 되는데 이 시기 아이들은 '사회적 거짓말'.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도덕과 법이 머릿속에 같은 개념으로 들어앉기 시작하는 콜버그의 도덕성 4단계인 법 질서로 진입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양상으로 발달하는 도덕성은 과연 우리에게 무슨 차이를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도덕지수가 높았던 아이들, 도덕지수가 평균이었던 아이들. 그 내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래서 제작진 및 연구진은 도덕성과 '미래인생관'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미래인생관과 관련된 여러 요소들. 즉, 삶의 만족도, 지능의 변화에 대한 태도, 낙관성, 좌절 극복, 희망 등에 대해 도덕지수 평균그룹과 도덕지수 상위그룹을 비교 조사한 결과, 모든 요소에서 도덕지수 상위그룹이 좋은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특히, 도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들의 특성 중 하나가 좌절이나 실패를 극복하는 능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좌절시에도 극복하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겠죠.
이렇듯 도덕성이 낮은 아이들은 '나는 못할 거야 '지능은 노력해도 좋게 만들 수 없어', '매일 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지 않을 거야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더 나아지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등 각종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아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요?
바로 '매체'의 영향력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뭐가 옳고 그른 일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고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현상과 결과를 '모방'을 통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차츰 편견과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죠.
지금껏 도덕성과 관련된 여러 실험들을 통해 우리들은 '불편한 진실'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경쟁, 익명성, 시간의 촉박함이 아이를 더 강하게 지배하며, 도덕지수가 높았던 아이들조차 경쟁 속에 있을 때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았고, 어른들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건 우리들이자 바로 이 사회입니다.
분명 생각으로는, 말로는 더 받은 돈을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그렇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다수의 우리들. 남한테 보여줄 때, 그리고 남이 안 볼 때와의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들. '언행불일치'의 사회. 과연 우리에게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없는 걸까요?
지금까지 도덕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아이들, 도덕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다수의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다수가 있다면, 도덕성을 용기 있게 행동으로 실천한 '소수'의 사람들도 있겠죠? 우리는 여기에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중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에서도, 사진 찢기 실험에서도, 15만 원 실험에서도 '소수의 누군가'는 있었습니다.
치밀하고 행복한 도덕성. 스스로 자신의 정직을 확인하는 순간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으며, 그 행복을 지키는 누군가가 다행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성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원천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끄러움
부끄러움. 그것은 도덕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만이 참으로 도덕성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곳. 절망은 바로 이곳에 있으니까요.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펄러덩 훨훨 휘날리고 싶다. - 박완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중
부디 우리 사회가 조장한 '경쟁심'이라는 괴물로 인해 부끄러움마저 느끼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길.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환경이 부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민감한 사회가 되길, 이 부끄러움을 언행일치화하여 부디 올바른 도덕성을 발휘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