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쏟아지는 페미니즘 이론서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공부하고는 있는데 막상 실생활에서 성차별 발언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후회한 경험 또는 키보드 배틀하다가 결국 나만 상처 받고 화병 난 경험,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문법만 배우면 실생활에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는 그런 아마추어 불편러를 위한 '페미니즘 기초 회화 입문서'이다. 『입.트.페』는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무시하는 말을 유형별로 살피고, 그에 대응하는 화법과 예문을 소개한다.
『입.트.페』는 본격적으로 대응법을 알려주기 전에 더 중요한 마음가짐을 짚으며 시작한다. 바로 모든 말에 대응할 필요는 없다는 점. 친절하게든 무정하게든 대응하다 보면 상처받고 소진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으면 페미니스트 자신이 굉장히 소중한 존재로 느껴진다. 대응하는 말도 설득하는 말하기보다 나를 지키는 말하기, 즉 상대가 부끄러움을 알도록 하는 말하기에 가깝다. 무술보다 호신술에 가깝달까.
이제 긴 말 필요 없이 책의 연습코너에 실린 상황(성차별 발언)을 보자. (※고구마주의※)
"왜 그렇게 일반화를 해? 나보고 잠재적 범죄자라는 거야?"
"여자는 군대 안 가잖아?"
"여성전용주차장은 어떻게 생각해?"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야."
"말투를 그렇게만 안 했으면 페미니즘 지지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더 큰 문제에 집중할 때야."
"그건 남녀를 떠나서...."
여러 번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입.트.페』는 이런 상식 밖의 말에 반문하기, 확답받기, 인정하게 하기, 지적하기, 선공하기, 가로채기, 결정하게 하기 등의 화법으로 대응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테면 아래 같은 사이다 문장들.
- 인정하게 하기: 군대 못 가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네가 차별주의자인 건 인정하는 거지?
- 결정하게 하기: 진심으로 억울하면 헌법소원 내고 오든지, 아니면 조용히 하든지 하나 골라.
- 지적하기: 너는 능력이 좋은 거랑 대우를 받는 걸 구별을 못 하는구나.
- 확답받기: 지금 이 상황과 네가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 반문하기: 요즘 네가 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거니?
책은 위와 같은 문장들을 외국어 회화 공부하듯 소리내어 연습하길 추천한다. 그래야 실제 상황에서 막힘없이 술술 대응할 수 있다고. 실제로 따라해봤더니 속이 시원해지는 순기능이! 어렵지 않으면서도 공감되는 상황과 주옥 같은 문장에 빌려 읽은 사람도 구매해서 시시때때로 꺼내 읽게 만드는 실용서(내 얘기임ㅇㅇ). 우리에게 필요했던 페미니즘 실용서. 그 때문에 소셜펀딩사이트 텀블벅 후원 중 예약판매로만 중쇄를 찍고 이후에 트위터에서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센스 넘치는 그래픽까지, 다들 매력 넘치는 『입.트.페』 읽고 지옥이든 어디든 가자!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리커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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