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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Sep 25. 2018

블록 안에 담긴 수많은 나의 이야기

레고로 '재밌게' 놀아본 후기 

오늘의 주파수: 가끔은 몰입할 수 있는 '놀이'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 레고가 많은 동네 친구가 있었다. 레고 블록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땅바닥에 잔뜩 펼쳐놓고 놀 수 있을 만큼 레고가 많았다. 어린 내가 들기에도 무거울 만큼 큰 주머니였다.  그 친구가 많이 짓궂어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 친구네 집에 가면 레고를 맘껏 갖고 놀 수 있었기 때문에 자주 놀러 갔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레고를 너무 갖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커가면서 지금까지도 하는 생각 중 하나가 '내가 나중에 돈 벌면 레고 사야지!'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돈을 벌어본 후론 "내가 어릴 땐, '커서 돈 벌면 레고 많이 살 거야!' 했는데 커서 봐도 레고는 비싸더라~"가 되었지만 말이다.

 

최근에 되어서야 레고를 자주 접하게 될 일이 생겼다. 집 근처에 레고 스토어가 생기면서 오며 가며 구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끔 생각나면 인터넷으로만 검색하던 레고가 집 앞 마실 코스에 가끔 껴들게 되면서 레고를 이전보다 더 자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운명의 날(?)이 결국 찾아오고 말았는데, 바로 이번 연휴였다. 연휴 며칠 전 생일이었다. 생일은 매번 부모님과 함께 보냈는데, 이번 연휴엔 부모님이 함께 여행을 가셔서 조금은 쓸쓸하게 보내게 됐다. 뭔가 마음을 꽉 채우고 싶었던 찰나, 레고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것이 운명의 데스티니?!


레고, 재밌게 놀다

레고(LEGO). 가만히 생각하면 이름도 잘 지었다. 발음하기도 쉽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레고를 발음했을 때 어렵거나 못 알아들을 소리도 아니다. 이름의 뜻은 덴마크어로 LEG GODT, 영어로는 Play well. '재밌게 놀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이라 한다. LEG GODT를 줄여서 만든 게 'LEGO'가 되었다고 한다.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선생님이 추석 계획을 묻길래 "나는 부모님이 여행 가서 혼자야. 게임하고 레고 갖고 놀 거야"라고 하니까 "레고? 풉! 애기들이 갖고 노는 거?ㅋ"해서 "놉!!!!" 외쳤는데, 나의 말이 맞다. 우선, 레고는 아이들만을 위한 장난감이 아니다! 1963년에 만들어진 레고 10대 원칙 중 "나이를 초월할 것" 그리고 "세대를 초월할 것"이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흠흠) 또한, 레고는 이제 장난감으로 그치지 않고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는 창의적 활동을 돕는 교육 브랜드로, 공과 계열에서는 시제품을 만드는 도구로도 활용되니, 그저 '장난감'으로 치부되기엔 이미 세대를 초월한 브랜드가 되었다.


오래된 낚시가게, Anton's Bait Shop
Lego 공식계정에 올라온 <Anton's Bait Shop> 모션 영상

내가 고른 제품은 2017년에 나온 레고 아이디어스(Ideas) 라인의 <오래된 낚시가게>라는 제품이었다. 빈티지스럽고 지붕이나 벽 마감처리가 매끄러워서 전시용으로도 좋아 보였다. 꽤 복잡해 보이는 게 맘에 들었고(이제 어른이니까 복잡한 거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후기를 검색해보니 LED 키트를 사서 연결하면 멋진 무드등도 된다는 말에 두말없이 사게 되었다. (LED 키트는 레고 정품은 아니다.)


레고 아이디어스(Ideas) 라인은 고객 창작 제품이라 말할 수 있다. 레고는 크리에이터, 시티 등 여러 라인을 갖고 있는데 아이디어스 라인은 2015년에 생겼다. lego ideas 홈페이지에 레고 팬들이 직접 시안을 올린 후, 많은 표를 받은 제품을 출시시키는 식으로 제품이 나온다. 시안은 홈페이지에서 구경이 가능하고 투표도 가능하다. 3D 모델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올리는 사람도 있고 3D 프린터를 활용해서 만드는 시안도 있었다. 이 아이디어스로 미드 <빅뱅이론>의 블록도 나왔던데 미드 <프렌즈>의 제품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다시 3D 툴을 만져봐야 하는 건가..)

▶레고 IDEAS 홈페이지: https://ideas.lego.com/ 

이미 레전드가 되었지만, 레고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다.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시대에 맞춰 '레고를 내손으로 만들수 있다'라는 고객 참여형 라인을 선보이는 LEGO IDEAS. 


블록을 끼우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다
세퍼레이터의 발명은 혁신인 것 같다. 이렇게 쉽게 레고를 뺄 수가 있다니...어린시절 고통을 생각하면 벌써 손끝이 아프다.

박스를 뜯고 눈에 먼저 띈 건 바로 세퍼레이터였다. 한국 말론 브릭 분해기라고 한다. '손 끝을 안 아프게 레고도 뗄 수 있는 건가...' 싶어 져서 정말 세상이 좋아졌구나&내가 늙었구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레고 보면 손 아픈 기억 없겠지...? (아이가 둘인 지인 말론 세퍼레이터 보면 발바닥이 아프된다. 애들 때문에 하두 밟는다고.) 이런 도구를 보고 있노라니, 어릴 때엔 블록을 빼는 것만큼 꾹꾹 잘 누르는 것도 힘들었던 것 같다. 손이 약하니까 늘 허술하게 끼워서 금방 부서져서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이제는 커서 블록도 꾹꾹 잘 누르는데 자꾸 엄지손가락 끝으로 블록을 누르니 '여기로 눌러대면 소화 안될 때 레고 하면 소화 잘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엔 못해서 울던 애가 이젠 커서 블록으로 건강까지 챙기려 하고 있다니.

하나짜리, 두개짜리, 네개짜리를 횡으로 교차시키며 벽을 튼튼하게 만들게 구성되어있다. 
잘 보이지 않는 곳도 촘촘하게 되어있다. 가짜지만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는 레고의 디테일에 상상력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왜 자잘 자잘한 블록으로 자꾸 채우지? 한 번에 하면  편한데..'싶었다. 만들다 보니, 이게 꽤 견고하고 튼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led 끼울 때 부분 부분 다시 뽀개기 힘들 정도 꽤 튼튼했다. 건물이 충격에 강하려면 큰 판 하나보다 자잘 자잘한 판을 엮어 얀다고 어디서 봤던 거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만나 도형을 만들기도 한다. 또,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것들이 엮어져 꽤 쫀쫀하게 이뤄진 게 생물이기도 했지.. 또....(중략).. 만들면 만들수록 레고의 정교함과 딱 들어맞는 설계에 감탄했고, 감탄에 자극된 머리는 자꾸 나를 '나'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생각 없이 마냥 블록 끼우는 것이 신났던 어린이는 이제 블록을 끼우며 많은 생각을 하는 어른이가 되어 버렸다. 

1~3번 봉지의 제작 과정. 1번은 튼튼한 기반을, 2번은 가게 바닥을, 3번은 가게 실내 초기 작업이 주였다. 

4~6번 봉지의 제작 과정. 4번은 가게 2층과 탑을, 5번은 가게 내부 위주, 6번은 지붕 작업이 주였다.
마지막 7번 봉지까지 끼운 완성샷. 작업내내 베드 트레이 위에 두고 집 이곳 저곳에서 작업했는데 꽤 편했다. 마치 베드 트레이가 레고를 위해 만들어진 기분이었다. 

나의 성공이나 행복의 형성 또한 레고 블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행복 혹은 성공이 이 블록이라면 블록이 맞춰지고 결합되어 내게 걱정이나 고민 없이 기쁨을 준다면 그게 성공이고 행복이 아닐까? 300페이지가 넘는 설명서에 맞춰 초집중- 몰입을 하고 있을 뿐인데, 까마득한 꼬맹이 시절부터 시작해 중학교 때의 나도 만나기도 했다. 가끔은 철학자가 되기도 하며 그동안 내가 가졌던 경험과 관점들이 꽤 다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만들고 나서 든 생각은 위로에 바탕을 둔 자화자찬. "뭐, 나 생각보단 열심히 산 것 같네." 

뜯고 나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던 LED 키트.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는거지...?

가장 기대하던 마지막 작업은 LED 작업이었다. 설명서 없이 딱 키트만 와서 이걸 어디에 어떻게 끼우나 싶었는데, 한참을 보다 보니 대충 어디 어디인지 감이 왔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가정은 6, 70점을 맞고 기술은 늘 100점 못하면 1개 정도 틀렸던 기술 영재(?)였던 것 같다. 특히, 납땜을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해서 기술 선생님이 칭찬했더라지. 엄마가 아무리 여성스럽게, 얌 전하게를 내게 강조해도, 이미 중1 때부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 

책상에 안착한 완성품. 내부 디테일과 소품도 정교해서 밤에 불꺼놓고 그안을 한참 바라보는 게 요즘의 낙이다. 내가 꿈꾸던 오래된 작은 집의 느낌이 이랬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냥 '어릴 때 하고 싶었던 거나 맘껏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레고를 샀다. 그런데 블록을 끼워가며 내 생각도 하나하나 맞춰지고 쌓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릴 땐 꽤 얌전하게 책 보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하니, 자라나면서 활동적인 성격이 된 나는 진득이 앉아서 만드는 레고에 대한 생각을 점차 덜하게 됐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레고를 통해 흩어져 있던 내 생각들이 거침없이 모아질 수 있었다. 모아진 생각을 통해 어제의 나를 돌아봤고 내일의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레고를 통한 몰입을 즐겨보려 한다. 상대적으로 활동적인 내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을 거 같으니까. '언젠가'에 놓여져 있는 당신만의 '놀이'가 있다면 시작하라 권유하고 싶다. 당신의 주파수가 당신의 내면을 향한 몰입의 순간에 놓여질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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