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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Sep 12. 2018

자전거로 달리는 제주바당

제임스 후퍼와 함께하는 2018 제주 국제 사이클링 페스티벌

오늘의 주파수: 페달을 밟는 즐거움으로 누군가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탈 줄 몰라도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이 낯설지 않을 만큼, 국내외의 여행에서 자전거 여행은 꽤 유명하다. 막연하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일이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면, 당신은 타인과 꿈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페달을 밟을 것인가? 그런 꿈을 품고 있던 내게 이번 제주행은 의미가 있었다.


원 마일 클로저, 그리고 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에 나와 한국에서도 유명한-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외국에선 이미 유명한-제임스 후퍼. 그가 이끄는 사이클링(Cycling) 캠페인인 '원 마일 클로저'를 올해 제주도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2015년 대한민국 1000km 종단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만 이번이 세 번째이다.


원 마일 클로저(One mile closer, OMC)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진행이 되는 기부금 모금 캠페인이다. 제임스 후퍼와 함께 최연소 에베레스트 등반을 했던 그의 친구 롭 건틀릿의 도전정신을 이어가고자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자전거로 제3세계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기부금 모금 캠페인을 하는 원 마일 클로저. 캠페인의 이름이 '원 마일 클로저'가 된 이유는 롭과 함께하는 모험에서 '한 걸음 한걸음 씩 천천히 목표를 향해 다가가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롭 건틀릿(右) 은 2009년 1월 프랑스 몽블랑 등반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OMC 홈페이지 메인에는 롭이 했던 말이 메인 페이지에 적혀있다.

비정상회담에서 제임스 후퍼를 알게 되며 OMC 캠페인을 알게 되었는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사회생활을 하며 쌓아지는 경험과 재능들이 개인의 이익에 쓰이는 것이 싫어 공공을 위해 쓰이길 바라며 공공기관에서 주로 일하게 되었다. 재능기부 형식이라도 좋으니 언젠가 나의 재능이 보다 나은 세상에 쓰이길 바랬었다. 그런데 재능과 상관없이 그냥 내가 즐거워하는 걸 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니?!


하지만, 큰 장벽이 있었으니 원마일 클로저의 그간 자취들만 봐도.. 기본이 1000km를 달리고 어쩔 땐 1600km를 달리며.. 7~8일 이상의 일정으로 매일 자전거를 타 얀다는 것...! 업힐(언덕 오르기)도 잘해야 하는데 것! 또한 매일매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주말마다 힘든 훈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훈련조차 참가하기 힘들 정도로, 나의 체력이 거기까지 키워지진 않은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캠페인을 참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동량을 늘리고 체력을 키우는 위주로 타기 시작했다면 작년과 올해 캠페인이라도 참여할 수 있었겠지만, 무리하게 목표를 세워서 나의 자전거 타는 즐거움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서서히 운동량도 체력도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중이니, 언젠가 꼭 참여 해보리라 다짐은 늘 하고 있다.


제임스 후퍼와 함께하는 제주 국제 사이클링 페스티벌

그렇게 원 마일 클로저를 알고 SNS를 통해 캠페인 활동들을 보며 내가 꼭 체력을 키워서 외국도 참여해보고 한국에서 하는 것도 참여해볼 테다..!라고 맘먹은 지 3년째, 비록 나의 모험 선생님인 제임스 후퍼와 자전거를 함께 타진 못하지만 기부 캠페인의 일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2018 제주 국제 사이클링 페스티벌>이었다.


제주 국제 사이클링 페스티벌은 올해로 3회째를 맞이 한다는데, 이번에는 OMC도 참여하며 참가 금액의 일부를 우간다 나랑고 학교와 제주 도내 재활시설에 기부한다는 것! 바로 이거다-싶어서 참가 접수 마감일을 확인하고 개인적 일정이 결정되는 대로 참가하리라 맘먹었다. 지금의 나에겐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과 OMC를 함께 하고픈 마음이 절충된 행사였기 때문이다.


사이클링 페스티벌은 경쟁 부분과 투어를 하는 비경쟁 부분으로 나눠졌는데 나는 비경쟁 부분으로 참가했다. 비경쟁은 자전거 규격도 없길래 운동용 자전거 대신 2008년에 뉴칼레도니아 자전거 여행을 위해 샀던 스트라이다를 가져가기로 맘먹었다. 스트라이다를 수화물로 붙여본 경험이 있어서 제주도로 내 자전거를 가져가는 것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용가방에 뽁뽁이로 잘 싸고 옷도 집어 넣어 수화물로 보냈다. 만원 더 받는다. 접수할 때 물어보니 미니벨로도 상관없다하길래 가져갔는데 나만 미니벨로였다.
한국어시험이나 토익 볼 때 수험표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이클링 페스티벌의 시작점은 (내가 좋아하는) 성산의 '플레이스 캠프'였다. 내가 도착한 날도 자전거를 끌고 온 라이더 분들이 하나둘씩 보였다. 플레이스의 광장은 이미 행사 무대와 천막 등이 다 설치된 상태였다. 자신의 번호를 확인하는 안내판도 미리 설치되어있길래 일찌감치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번호를 확인하고 나니 올해 제대로 자전거를 타보지 못한 것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시속 15km 이하면 후미 버스에 태워서 간다고 했는데 내가 타는 속도를 재어 본 적도 없었다.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을 밤새 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광장 쪽을 보니 OMC는 아침 7시 반부터 세팅 완료였고 참가하는 라이더들도 하나둘씩 모인 상태였다. 날씨도 구름이 많은 날이라 덥지 않게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쟁 부분이 먼저 출발하고 비경쟁은 그다음에 출발했다. 도전 정신과 성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경쟁 부분과 모험 정신과 과정의 즐길 수 있는 비경쟁 부분이 함께 자전거로 만나 즐거움을 공유하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밤에 걱정한 건 잊고 시작 전부터 신났던 것 같다.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모험 선생님인 제임스 후퍼와 함께 한다는 것으로 내겐 이번 페스티벌의 의미는 깊었다.

'무리하지 말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고 가자'를 계속 되뇌며 갔는데, 나는 생각보다 잘 탔다. 물론, 한강 바람 못지않은 제주 바닷바람의 역풍에 고생하고 역풍+업힐에선 결국 끌바(내려서 자전거(bike)를 끌고 가는 것)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중간 휴식 지점인 세화 제주 해녀박물관 주차장에 들어와서 보니 중간 정도로 들어온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매일같이 타고 하루에 두 번 타는 날도 있을 정도로 타며 만들어놓은 체력이 이젠 몸에 붙어 기초체력이 된 것 같았다. 출발지점인 플레이스로 돌아갈 때는 순풍을 타서 재밌게 왔다.

고프로를 장착하고 찍은 제주 해안도로의 풍경
스트라이다는 미니벨로 중에서도 작은 바퀴로 잘나가는 자전거 중 하나이다. 출시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이란 별칭도 있었다.

플레이스에 도착하니 완주 메달도 줬다. 기대하지 않았던 거라 메달 받고 무척 신났다. 나 스스로에겐 혼자서만 타던 자전거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타고, 무리하지 않고 완주를 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기에 참가 상처럼 주는 이 메달이 금메달 못지않은 기분이 들었다. 제임스 후퍼가 늘 말하는 "한 걸음씩 모험을 시작해보세요"라는 말처럼,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쌓여온 나만의 'One mile closer'가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쭈볏거리며 가서 메달 목에 걸고 모험 선생님과 함께 기념사진 찍었다.


자전거는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나는 어릴 때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전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것보다 빠르게, 바람을 느껴보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7만 원짜리 미니벨로를 사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두발 떼어가며 중심 잡는 거 연습해보고 그렇게 3일 만에 겨우 두발로 자전거를 굴릴 수 있었다.


주로 운동삼아 한강에서 많이 타는 편이다. 나는 그냥 레깅스에 바람막이, 그리고 헬멧 정도만 쓰고 자전거도 한강의 다른 라이더들에 비하면 좋은 자전거를 타진 않는다. 빠른 속도를 즐기기 위해선 장비도 잘 갖추고 타면 좋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10년 넘게 자전거를 타며 배운 것은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이걸 왜 즐거워하는지, 나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을 자전거를 타며 배울 수 있었다. '나도 저들처럼 빠르게 가야지'가 아니라 '내게 맞게 자전거를 타야지'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속도를 빨리 내는 것보다 안전을, 업힐을 무리하게 타서 힘들기보다는 내려서 잠시 쉬며 주변을 보며 과정을 즐기며 모험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탄다.

첫 자전거인 미니벨로를 시작으로 4개의 자전거를 타봤다. 내 페이스에 맞춰 자전거도 점차 더 속도를 내고 운동에 도움되는 자전거로 맞춰 사게 되었다.

내 운동량에 맞는 거리까지만 타고, 역풍이 심하면 적당히 타고 돌아오고. 그렇게 내 즐거움을 중심으로 타다 보니 서서히 체력도 운동량도 늘릴 수 있었다. 이렇게 타다 보면 남들보단 늦겠지만, '걷는 것보다 빠르게,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기하려 한다. 이번 사이클링 페스티벌 역시 무사 완주라는 내 페이스를 유지해서 스스로도 큰 만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회가 끝나고 그날 저녁 아무리 스트레칭을 몇 번 해도 다리가 사라진 것 마냥 아팠다. 밤늦게 돼서는 걷기도 힘들었었다. 타이레놀을 먹고 밤새 식은땀을 흘리고 잤지만, 다음날 저녁에 나는 다시 자전거를 끌고 내가 달렸던 해안도로로 나갔다. 전날엔 앞만 보고 달렸지만, 이번엔 멋진 풍경이 나오면 멈춰서 사진도 찍고 천천히 타며 바당(제주말로 '바다')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오조리 포구에 들려 멋진 노을도 감상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돌면 언제든 그 자리에 멈춰 보고 싶은 풍경을 맘껏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2008년의 뉴칼레도니아 여행이 생각났다. 해안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어서 스트라이다도 사고 6개월 간 준비했는데 비포장 도로를 타다가 탄 지 30분 만에 자전거가 펑크 나서 타질 못했다. 꿈꿔온 여행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자전거 여행을 하는 날을 기다리며 그동안 꾸준하게 자전거를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이 걸려 그 꿈이 제주에서 이뤄졌다. 그러니 언젠가는 내 즐거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자전거 타기-원 마일 클로저의 꿈도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운동의 취미를 갖고 있는 당신이라면, 자신의 단련시키는 것에서만 끝나지 말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꿈을 나누는 것에 목적을 두면 어떨까? 여행을 하며 사람들을 만난다던지 기부 문화에 참여해본다던지 말이다. 나와 같은 즐거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나의 즐거움이 기부로 이어지고 누군가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 내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의 운동이 자신의 만족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운동 주파수가 누군가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에 맞춰지기를.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이 더 건강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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