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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Oct 16. 2018

다 컸어도 놀이터는 필요해

NOT just a HOTEL: 플레이스 캠프 제주

오늘의 주파수: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두 개의 놀이터가 있었다. 지금의 놀이터에선 상상할 수 없겠지만 바닥에 모래가 깔리고 대부분 놀이 기구가 철제로 되어있던 그런 놀이터였다. 비가 엄청 온 다음날이면 물에 흥건히 젖은 놀이터는 진흙탕이었다. 우리 오빠는 그곳에서 놀다 왔다가 옷을 제대로 더럽혀서 엄마한테 속옷까지 벗겨진 채 집 앞에서 손들고 서있었다. 나는 그네 타는 걸 좋아했지만, 다른 애들처럼 서서 거의 270도 정도 돌듯 높이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중고등학교 땐 엄마랑 싸우고 가출이랍시고 놀이터 그네에 오래 앉아있었고(결국 춥고 배고파서 들어갈 것을) 대학교 땐 편하게 통화하겠다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수다 떨던 곳. 어린 시절 놀이터에 대한 추억 정돈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만나 규칙을 배우며 사회성을 키우기 시작하는 곳이 유치원이라면, 놀이터는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알고 취향을 키우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놀이터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취향에 따라 동호회를 찾거나 SNS에서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근심 걱정 없이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기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다 컸다"라고 해도, 우리에겐 아무 생각 없이 ‘놀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어디서 놀지? 어린 시절 놀이터처럼 그네도 타보고 모르는 애랑 시소도 타고 혼자서 미끄럼틀에 심취해볼,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는 곳을 생각하면 딱히 없다. 놀이동산에 가서 매번 스릴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적당히 얇고 넓은 내 여러 취향이 모여있는 공간 안에서, 이걸로 놀아보고 저걸로 놀아보고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딱히 없다.


여기, 그런 놀이터가 하나 있다. Play+Place=Playce!

영화를 즐기거나 활동적인 취미가 있거나 혹은 맛집 매니아거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주에 갔을 때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방문해봤을 곳, 플레이스 캠프 제주. 나는 이곳을 한 단어로 ‘놀이터’라 말하고 싶고,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캠프'란 명칭은 복합 문화공간이다. 제주에 있는 플레이스 캠프 제주는 숙박도 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인 셈이다. 공연도 열리고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GV도 열린다. 건물 전체 곳곳에서 미술 전시회도 열리고 여러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제주라는 지역 특성을 살린 콘텐츠다. 제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거니는 마을 산책, 야간 용눈이 오름 야간 하이킹, 제주 바다에서 즐기는 수상 액티비티, 겨울에만 열리는 한라산 눈꽃 트래킹 같은 것들이다. 여러 사람이 즐겨야 하는 액티비티도 있는데 내 취향에 맞게 프로그램을 고르니 말을 꺼내기가 어색하지 않다. 라운지에서 열리는 미션 보드게임, 칵테일 클래스 같이 말이다. 플레이스에 있는 먹거리들(스탭 밀, 샤오츠, 폼포코 식당, 스피닝 울프, 도렐 ,핏제리아 모꼬지 등)은 이미 제주 내에서 맛집으로 꼽히는 곳이니 맛집 투어를 즐기는 사람에게도 좋다.

토요일 밤의 플레이스의 모습. 플리마켓 '골목시장'과 함께 가끔 야외 공연도 열려 마을축제에 온 것 같은 기분이든다.

그뿐인가. '소확행-소비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외치는 지름신 교도라면 편집샵 <조슈아 패보릿>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토요일마다 열리는 플리마켓 <골목시>장이 재밌을 것이다. 혹여, 제주에 많이 가봐서 이제 더 이상 제주에서 할 것이 없다(?)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말을 이용해 플레이스라는 놀이터에서 재미나게 놀다 가기 딱 좋다. 짧은 기간의 휴가 때 특별한 장소에서 색다른 '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플레이스에 찾아가 보라 권유하고 싶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시소 타다가 그네 타다가 모르는 아이들과 모래놀이를 했듯, 플레이스 안에만 있어도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가 많으니까.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건물 세곳의 옥상은 포토존이란 이름으로 개방되어있다. 성산일출봉과 바다를 보며 아침을 먹기도 좋고, 일출봉의 일출도 언제든 즐길 수 있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는 공간

제주에 다니면서 오름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제주 8일을 있게 되면서 오름 한번 가봐야지-하다가 내 눈에 띈 건 야간 오름 트래킹. 이 액티비티의 이름은 '용눈이 빛나용'이다. 야간에 오름에 오르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뭔가 쉽지 않은 일이다. 랜턴을 끼고 플레이서의 안내에 따라 안전한 길로 가며(밤의 오름은 정말 불빛 하나 없다) 밤의 제주를 내려다보는 것에 꽤 흥미가 갔다. 내가 낯가리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어울리는 성격도 아닌지라 처음 보는 사람들과 잘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은 됐다. 하지만 재밌게도 플레이스에 있는 펍인 스피닝 울프의 직원분들과 함께 오름을 오르게 됐다.(쉬는 날이라 신청하셨다고.) 액티비티 PD분들과 서로 친하다 보니 거친 농담(?)들에 오르막인 것도 잊고 많이 웃으면서 오름을 올랐다. 그런 숨차고 웃긴 시간을 지나 올라선 용눈이 오름 위에서 본 제주의 야경, 그 위로 쏟아지는 별을 본 것도 플레이스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이라 생각한다.

깊은 얘기를 나누며 오른 건 아니지만, 가벼운 농담과 이야기들을 나눈 것 또한 내게 특별한 추억이 됐다. 스피닝 직원분이 자꾸 렌턴을 눈 한쪽에 끼고 토르라고 해서 많이 웃었다.


JTBC <효리네 민박>에서 패들보드를 본 후 한번쯤은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잠베지강 래프팅 후에 내가 꽤 물놀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패들보드이나 스노클링을 배워보고 싶었다. 지난 5월, 플레이스의 프로그램을 통해 패들보드를 배울 수 있었다. 평일에 간 덕분에 운 좋게 1:1로 소수정예 집중 공략으로 꼼꼼하게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정식 명칭이 SUP(Stand Up Paddle)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중심 잡기부터 패들을 쉽게 젓고 멀리 나가는 방법까지 4시간 동안 정말 다 배우고 왔다. 5월이라 바닷바람이 좀 쌀쌍했는데, 많이 움직여서 물에 빠지는 게 시원했을 만큼 더웠다. 무엇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동쪽 바다와 달리 서쪽 바다는 한적한 바다 위에서 여유롭게 배울 수 있었다. 따로 SUP 클래스를 찾지 않아도 내가 머무는 공간에서 마련한 액티비티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건 꽤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SUP 강사님이 찍어준 고프로 영상. 물위에 떠서 먼 바다를 보고있노라면 모에나처럼 모험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많은 액티비티 프로그램 중 참여한 것은 몇 개 안되지만, 몸을 쓰는 활동을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해도 내가 어색하지 않아 하고 쉽게 잘 웃으며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일상에서 나는 늘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받고 스트레스받기만 했었는데 플레이스의 액티비티 콘텐츠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나'였다. 돈을 지불하고 참여한 거지만, 이 경험들은 활동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냥 잠만 자는 곳이 아닌, 브랜딩 디자인을 접할 수 있는 공간

브랜딩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캠프에 있는 숙박 객실에 묵어보는 것도 꽤 좋은 경험이 된다. 플레이스에서 전하려는 이야기가 객실 인테리어와 소품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객실 문을 열고 먼저 맞이할 수 있는 것은 하얀 침대 위에 놓인 플레이스 매거진<ㅋ>이다. 로비에도 비치되어있지만, 객실마다 하나씩 놓여 있다. 공항에서 버스로도 2시간 여를 달리고 거기에 비행기까지 타고 왔다면, 무거운 가방을 내리고 포근한 침대에 쓰러져 한동안 멍 때리다가 손에 집히는 이 읽을거리를 보게 된다. 계획을 세우고 제주에 왔더라도 <ㅋ>를 보다 보면 계획을 바꾸게 할 만큼, 다수의 취향을 저격하는 정보들이 가득하다.

소품 하나하나, 플레이스만의 감성이 묻어져있다. 나는 이 디테일에서 젊음과 열정이 키워지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떠오른다.

객실마다 데님 재질의 주머니가 샤워실&화장실 유리벽에 붙어있다.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채로 떼어가고 싶다고 말했을 만큼 객실에서 가장 맘에 들어하는 부분이다. 그곳에 플레이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의 로고와 디자인으로 꾸며진 플레이스 가이드북, 엽서 등이 있다. 보통 호텔 가이드북은 갈색이나 검은색 가죽으로 무언가 칙칙(?)한 느낌이라 살펴보지도 않는데, 플레이스의 가이드북은 열고 싶도록 밝은 느낌이다. 객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게스트북의 메시지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여행은 어땠는지 등 객실 후기나 여행 후기가 짧게 적혀있다. 객실과 복도 벽 아래에 붙어있는 소화기 하나도 브랜딩 패키징이 되어 있어, 이 공간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철제 가구가 많고 시멘트 벽, 세면대는 객실 내에 있다 보니 감옥 같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나는 선실의 느낌을 받았다. 1900년대 초반에 배를 타고 세계여행을 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방에 있으면 배를 타고 멀리 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내 몸에 흐르는 마도로스의 피..) 플레이스 캠프는 호텔도 있는 캠프인 만큼 객실도 경험의 공간이 된다.

더운 날씨에 오리털 이불만 준비된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면 경험..


성수동에서 느껴보는 플레이스
성수역 4번출구로 나와 출구 뒷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 플레이스의 브랜드 도렐, 스피닝울프, 스탭밀이 함께 있다.

하지만, 제주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건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는 게 여행의 법칙 아니던가. 글을 읽으면서 '나도 놀이터 같은 저곳에서 놀아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하며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알았는지 최근 플레이스는 육지로 진출했다(?) 공연과 전시를 하는 우란 문화재단이 동빙고에서 성수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 플레이스의 감성을 녹여낸 것.


독특한 구도의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보기 드문 인테리어와 공간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서울 성수동. 나만의 특별함을 찾고 싶어 찾아오는 성수에 플레이스의 브랜드인 펍 <스피닝 울프>, 카페 <도렐 베이커스>, 식당 <스탭 밀>이 자리를 잡았다. 개인적으론 플레이스 캠프 제주에서, 그리고 제주 내에서도 플레이서의 감성이 묻어나는 개성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스라는 공간이 궁금하다면, 일단 성수동으로 제주 맛집 투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스피닝 울프에서는 DJ클래스, 제주에서도 인기 좋은 '술 읽어주는 늑대(칵테일 만들기)' 등 재밌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있으니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제주에 가면 나의 아침을 책임지던 스탭밀. 현재는 이른 영업을 안해서 서운하지만, 혹여 제주가서 못먹고 와도 서울에서 먹을 수 있다니!
카페였던 도렐과 베이커리인 브레들리가 만나 도렐 베이커스가 됐다. 제주를 담은 빵 두 종류를 준비하고 있다니 꼭 먹어보길. (이미지: 플레이스 페이스북)
스피닝 울프 성수의 라운지와 루프탑은 도심의 여유로움을 즐기기 좋을 것 같다. 혼술족도 심심하지 않다. Bar자리가 18개가 준비되어있다.




사실, 위에서 말한 가게, 액티비티 등은 하나하나 소개해도 모자를 정도로 할 얘기도 많은 콘텐츠이다. 그것들은 한 곳에서 어울려질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걸 보면 플레이서들이 개인의 취향과 기호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성수동에서의 행보를 보며 플레이스는 어느 지역으로 가도 지역 특성과 잘 어울려지는 공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들리는 말 중 하나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다. 직급 같은 걸로 책임과 의무, 위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걸 취향의 세계로 가져와 번역하면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만든다'는 change의 의미다. 오프라인의 동호회 모임도 그렇고, 인터넷에서 chat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트위터, 페이스북, 커뮤니티 등 어느 공간에 있냐에 따라 내가 자주 접하는 소식과 내 사고도 영향받지 않던가. 그래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간'은 중요하다. 이제는 잘 놀아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오늘은 플레이스에 주파수를 맞춰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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