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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Jul 21. 2022

1000일만에 하늘을 날다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 그해 여름손님이 되다_1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 그해 여름손님이 되다이탈리아 북부 어딘가, 그해 여름손님이 되다


비행기에 몸을 싵고 두둥실 떠오르니 그제서야 ' 진짜 가는구나' 싶었었다.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에서 경유, 밀라노를 향하는 비행기였다.


2019년 9월 14일, 도쿄 출발 한국행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한반도를 벗어나는, 비로소 '하늘을 난다'는 기분의 여행은 약 1000일, 정확히는 1007일만의 여행이었다. 2년하고도 10개월 6일이 되는 날이었다.


코시국에 해외를 못나가서 안달나기보다는 도쿄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을 못만나는게 조금 서운했을 뿐, 의외로 잘 지냈다. 아프리카, 아이슬란드, 뉴칼레도니아.. 보통 초짜 여행가지 않을 곳으로 부지런히 여행 다닌 덕인지 앞으로 하늘길이 막힌다고 해도 솔직히 큰 미련이 없었다. 대신 나는 '나'를 여행하는 걸 즐겼다. 취미 부자답게 요리, 서핑, 차박 등 새로운 취미들을 즐기며 여행에 쓰지 않는 돈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것에 투자하며 내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에 빠져 보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초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증상은 심하지 않아서 앓아 누울정돈 아니었다. 꼼짝도 못하고 자취방에서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지루할 줄 알았지만 격리기간에 유튜브 영상 보는 것에 푹빠져서 알고리즘의 노예로 지냈다. 드라마를 잔뜩보다가 자연스럽게 영화로 넘어가고 영화를 잔뜩보다가 갑자기 역사 콘텐츠를 보게되고..그렇게 보다가 이름은 알았지만 보지는 못했던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편집본을 볼 수 있었다. '사랑'이란 단어 없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 궁금한데? 당장 넷플릭스를 열고 본편을 봤다.


이탈리아 여름이 궁금해지는 콜바넴. 뒤에 보이는 곳이 바다가 아닌 가르다 호수, 촬영지는 시르미오네.


그렇게 그 영화에 꽤 매료되고 말았다.(어쩔 수 없는 덕후 인생)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도 좋았지만, 이제껏 평생 이탈리아는 지중해 바다의, 해산물의, 피자, 파스타, 뜨거운 햇볕의- 그런 느낌이었다면 콜바넴에서 느껴지는 이탈리아는 여름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느끼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배경 하나하나마다 '저길 가보고싶다'라는 생각을 많이했는데 내겐 푸르른 가르다 호수가 그랬다.  '세상에 저렇게 쨍하게 푸른 호수가 있나' 실제로 보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궁금하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나이가 들어도 철은 안들었는지, 기왕지사 바이러스 항체가 몸에 남아있을 때 해외여행을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이탈리아를 가보자!' 이번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자꾸 바뀌는 코시국 상황에 소극적으로 알아보다가 5월 1일, 혼자 와인 마시다가 항공권을 예매했었다. 그사이 운전면허증을 딴 나는 렌터카 여행을 꿈 꿨으나 팬더믹, 러시아 등등의 이유로 그전보다 더 비싸진  렌터카 가격에 2일만 할까, 풀로 하는게 더싸나 그렇다면 대중교통 루트는 어떻게 되나만 찾다가 뭔가 제대로 알아본 게 없이 여행일은 다가왔다.


나 진짜 떠나는겨...?


그렇게 있다가 비행기를 탔으니 막막했다. 공항에 와서도 해외를 간다는 게 실감이 안났고 이륙을 하고나서야 '아 내가 정말 여행을 가는구나..!'하고 실감났을 정도니까. 그래도 환승 공항이 아이슬란드 갈 때 가봤던 헬싱키 공항이고, 타봤던 핀에어니 경험해봤으니까 익숙한 구석이 조금은 있는 출발이다-하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코시국이라 비행기에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많이 사라진 직항과 항공편들 덕에 유럽 각국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몰려서 만석이었다. 오랫만의 여행이라 비행시간도 꽤 길게 느껴졌는데, 기내  엔터테인먼트를 뒤적뒤적하다가 항공 루트를 보니 러시아 상공을 돌아서 운항 중이었다. 그러고보니 헬싱키까지는 11시간인가 11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았다. 좁은 비행기에서 마스크 쓰고 13시간을 갇혀 있는건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는 오랫만의 내 여행에 정말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노므스키)


반가운 기내식과 하늘을 날고 있는 게 실감나는 항공샷, 그리고 티모시 따라 산 소니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은 기내에서 유용했다.


하지만 또 이렇게 불편함을 체감하게 되니 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주시해야하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러지 않았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실체가 팬더믹이란 단거까지 이 시대에 등장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또, 이번 여행에 대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 여행후기가 팬더믹 이전에 쓰여진 것들이 많아서 현재는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럽 내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후기는 나처럼 이탈리아가 처음인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크게 도움 되진 않았다. 그나마 있는 후기도 2021년이거나 늦게 쓰여진 여행기라 올초부터 나라별로 대륙별로 달라지는 코로나 상황과 달라 애매한 부분도 많았다. 처음 알아볼 땐 그린패스가 있어야했고 한국에행 비행기를 타기 전 PCR검사를 해야했으나, 항공편을 끊고나니 영문백신접종증이 필요했고 신속항원검사도 가능한 상태였다. (아마도)5월 말부터는  아무 서류도 준비하지 않아도 이탈리아 입국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와중에 땅은 커서 돌아가는 것도 더 걸려..


줄어든 항공편 덕에 내가 탔던 비행기는 유럽 각국으로 돌아가는 유럽인들이 더 많은 상황이라 그런지 '세상'이란 바운더리가 조금 더 넓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3시간을 비좁은 이코노미 자리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다보니 헬싱키에 도착했다. 헬싱키 공항에서 본 푸르른 하늘, 그러고보니 아이슬란드도 6월 말 7월초에 갔었고 환승하며 반나절 있었던 헬싱키에서 초가을 날씨를 느꼈던 게 기억났다. 그렇구나, 이건 가을 하늘이겠구나..하며 13시간만에 봄에서 가을로 넘어 온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비로소 너무 오랫만에도 해외로 여행 온 것이 실감났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 오랫만이야 헬싱키!


헬싱키 환승으로 다른 유럽국가로 갈 경우, EU국가 입국심사를 헬싱키에서 진행한다. 모든 공항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도, 이탈리아의 밀라노도 헬싱키에서 입국심사를 진행했다. 여기서는 동양인도 종종 보였는데 나처럼 혼자 있는 동양인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입국심사하는데 동행인이 있는지 물어보더라. 능청스럽게 "No, Just One, Only me, Alone." 하며 말하니 무표정이었던 입국심사 직원이 빙긋이 웃었다. "Have a nice trip." 가벼운 미소를 선물받고 밀라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수상해 보였지만, 자기네 공항 도장 보고 쉽게 ㅇㅋ해준 걸 수도 있다. 나 배철수의 음악캠프 후드티 입고 있었단 말야..




2022년 6월 16일 밀라노를 향해 26일 로마에서 돌아온 이탈리아 여행기입니다.

현재 1편을 보셨습니다.(자 이제 시작이야)(ㅍㅋㅊ)

북부/ 밀라노, 크레마, 베르가모(스쳤음), 시르미오네(대중교통)

돌로미티/ 오르티세이, 볼차노(대중교통)

토스카나/ 피렌체, 산지미냐뇨, 시에나, 몬테풀차노, 안세도니아(렌트)

로마/ 산타세베라, 반나절 속성관광(영업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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