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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어틴 Jul 26. 2022

밀라노 최고의 멋쟁이를 만나다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 그해 여름 손님이 되다_2


13시간의 비행을 하며 꽤 지쳤던 나는 '핀에어가 아니라 카타르 항공을 타고 갔어야 했나. 12시간 날고 5시간 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조금 후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헬싱키에서 밀라노를 향하는 세 시간 반 동안 절대 후회하지 않을 광경이 내 눈에 펼쳐졌다.


헬싱키에서 밀라노로 향하는 비행기는 낮게 날았다. 3-3 좌석으로 국내라면 제주도를 갈 때 타는 그만한 비행기였는데 유럽 어딘가의 마을을, 들판을 날다가 바다와 섬이 보이기도 했다. 비슷한 광경에 지루해져 아이패드를 꺼내서 그림을 끄적이던 중 얼핏 보니 비행기는 알프스 산맥 위를 날고 있었다.


만석인 비행기에 창가자리면 내리는게 느리겠다는 생각만하다가 이 광경에 입이 쩌억..날씨도 좋아서 선명하게 너무 잘 본 알프스

언젠가부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불확실한 믿음으로 골랐던 무언가가, 그 끝에서는 나에게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는 일들이 많다는 걸 말이다.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를 덜 하기 위해서 좋은 방향이 되도록 노력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서 결과적으론 선택의 대부분이 내게 좋은 방향으로 흐른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 것 같진 않아서 내 선택에 대해 물증은 없어도 심증으론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하는 선택은 날 이롭게 한다고. 


그래서 알프스 산맥 위를 나는 이 순간에 한 달 반 전의 내 선택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프스를 아래에서 위로 우러러보는 경험은 하기 쉽지만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경험은 흔치 않았기에, 눈에 담으면서도 셔터를 누르는 것에도 정신이 없었다. 3시간 반 정도 비행이라 오랜만에 창가에 앉아볼까 하며 선택했던 자리처럼 팬더믹 상황에 많고 많은 나라 중 이탈리아를 선택한 것도 분명 내게 좋은 것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이 다시금 강해졌다. 


알프스 산맥을 지나 산기슭을 타고 마을들이 하나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알프스 남쪽의 저 마을들은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들이겠지. 그렇게 마을들이 모여 큰길을 이루고, 도시가 보이면서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내 첫 이탈리아 여행이기도 했다. 성격이 급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해 못 한다, 커피바가 많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들만 보면 작업 멘트를 날린다(?) 등 다양한 말들이 있는 이 나라는 내게 어떤 기억을 남겨줄까.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급행열차. 화면 속 글씨가 너무 안보였다. 영어 안내는 없다.아 참고로 나는 그렇게 남자가 돼서 돌아옴^^...


이탈리아 여행 첫날의 기분을 정리하자면 솔직히 여행을 시작한다는 즐거움보다는 힘들다는 감정이 컸다. 첫 번째 론 생각지도 않은 더위가 문제였다. 아마 이탈리아 여행기 쓰며 가장 많이 나올 키워드가 '더위'일 것이다. 더웠고, 더웠으며, 뜨거웠다. 이탈리아 북부의 6월은 대충 우리나라 5월 말 날씨로 생각을 했는데, 지금도 연일 핫이슈가 되는 유럽의 폭염의 시작이 내가 도착했을 때였즘이었던 것 같다. 이상기온으로 갑자기 더워진 것이다. 출발 전에 당시 한국보다 더운 33도, 34도를 기록하길래 거의 한여름 옷만 챙겨갔다. 그늘 아닌 곳으로 가면 햇빛이 너무 뜨거웠다. 절로 시원한 물,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런 것들이 생각났지만 생각보다 아이스 음료를 찾긴 힘들었다.


재밌게도 이탈리아에서 많이 마시게 된 건 슬러쉬. 얼음을 갈아서 레몬 시럽 같은걸 뿌려서 준다. 이 얼음에 에스프레소 넣음 맛있겠지만 이탈리안 취향 존중합니다
날이 갈수록 뜨거운 더위에 적응해갔지만, 밀라노에서만큼은 당황스러워서 뭘더 검색해보거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조차도 못했던 것 같다. 여름에 휴가도 안 가는 나인데..


그렇게 더우니 두 번째, 짐이 짐이 되어버렸다.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배낭여행용 백팩을 하나 마련해놨다. 이번 여행을 가면서 서핑용 백팩을 보조가방으로 매고 갔는데(입구가 전면 개방되어서 짐 넣고 빼기 편하다) 이동시 캐리어 무게를 줄이고 백팩을 무겁게 해서 넣고 다니는 게 기동력이 좋았다. 여행지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이번 여행처럼 소도시 위주로 대중교통으로 옮겨 다닌다면 아무래도 기동성이 좋아야 하겠다.


어느 여행후기에서 이탈리아는 역마다 짐 보관소인 'Ki point'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봐서 밀라노에서 짐을 맡기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짐 보관소는 밀라노 중앙역(Milano Centrale)에만 있었다. 밀라노의 한 교회에 있다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원본을 보고 싶었던 나는 밀라노 중앙역 전인 포르타 가리발디 (Milano Porta Garibaldi) 역에서 내렸다가 무거운 캐리어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다시 밀라노 중앙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해서 최후의 만찬은 티켓만 끊어놓고 성당 근처도 못 갔다.


일정상 역 부근에 짐을 맡기고 싶다면 구글맵에서 lugguage storage를 검색해보자. 역 근처에 ki point라는 짐 보관소가 많고, 간혹 무인 보관소 있는 곳도 있음.


셋째, 인터넷이 안돼서 여러모로 검색이 어려웠다. 위의 짐의 경우도 말펜사 공항에서 시내를 향하는 기차에서 검색을 좀 했더라면 짐을 들고 고생은 덜했을 수도 있었을 거 같다. 토스카나에서 렌터카를 사용할 예정이었고, 도심과 달리 소도시들에서는 쓰리심 같은 유럽 전역에서 쓰는 유심이 안될 수 있으니 현지 유심칩 사용이 좋다고 했다.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는 유심칩 파는 곳이 없었고(공공 와이파이 잡혀서 겨우 검색) 밀라노 시내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밀라노 중앙역에 있는 TIM 매장에서 유심칩 구매를 할 수 있었다. 


보통 유럽을 갈 때는 한국에서 유심칩을 사 가다가 아이슬란드에서 첨으로 현지 유심칩을 썼는데 아이슬란드는 공항 편의점 같은 데서도 데이터 전용 유심칩을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통신사 단기 가입 식으로 구매가 가능한 듯했다. 적어도 내가 구매한 TIM은 그랬는데, 덕분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느린 일처리를 첫날부터 겪을 수 있었다. 


밀라노 공항에 오전 10시도 안돼서 도착했었는데 유심칩까지 사고 중앙 역을 나오니 벌써 오후 1시였다. '간단히' 3~4시간 정도 돌고 크레마로 가려던 내 계획에 많은 변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됐다. 밀라노에서 보려던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역이라고 말 안 해주면 모를 밀라노 중앙역. 지쳐서 나오다가 뒤돌아서서 놀랐다고 한다.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다간 이도 저도 아닌 여행이 되어버린다. 다시 이곳에 여행을 와야 하는 이유를 남겨두는 것도 여행의 미덕이다. 


우선, 이탈리아에 온 이상 이탈리아의 브랜드 매장 방문은 해보고 싶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는 보테가 베네타, 피렌체에서 산타 노마리아 벨라가 목표였다. Montenapoleone역에서 밀라노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며 보테가 베네타 매장에 들려 자동차 차키에 쓸 키링을 구매했다. 많고 많은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중 보테가 베네타를 고른 이유는 그 브랜드만의 가죽기법-인트레치아토라는 가죽 줄을 꼬아서 만드는 기법이 있는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특별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을 지니고 다니면서 나만의 특별함을 좀 더 유지해보자는 다짐에서 작은 오브제를 하나 구매해봤다. 


두세군데 보테가베네타 매장을 들러서 원하는 색을 골랐는데 같은 브랜드라도 매장마다 직원들의 분위기가 달랐다. 내가 구매한 플래그쉽 매장은 프랜들리 한 느낌이었다.


구찌, 샤넬 등 럭셔리 매장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 밀라노 대성당(Piazza Duomo)으로 향했다. 교황이 살고 있는 땅에서 그 도시에 하나 뭐 보고오라 하면 당연히 성당 아니겠는가. 밀라노 대성당이 눈앞에 보였을 땐 두 가지 이유에서 놀랬는데, 하나는 밀라노 두오모의 예술성에 놀라고, 하나는 건물 그늘을 벗어나서 제대로 맞이하는 이탈리아의 뜨거운 햇빛에 놀라서였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성당의 하얀 조각들은 뜨거운 햇살에 더 웅장하게 보였는데, 그 전체를 보고 싶어서 뜨거운 햇빛 아래의 광장을 가로질러 먼 곳에서 밀라노 대성당을 보고 싶게 할 정도였다. 피렌체 성당은 둥글둥글하다면 밀라노 대성당은 길쭉하다는 느낌이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마주쳤던 옷 잘 입고 무화과 향 향수를 뿌린 멋쟁이들이 생각났다. 



'패션의 도시'라는 말에서 되게 세련된 도시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주관적인 이유들(짐 보관소와 유심칩)에서는 올드하게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패션쇼에서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세련미 넘치는 밀라노 대성당이 있는 도시, 밀라노. 출발 전까지도 크레마에 가기 전 들를까 말까 고민을 했던 곳이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갔으면 더 재밌게 즐겼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크레마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밀라노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밀라노 람브레테역(Milano Lambrete)으로 갔다. 



2022년 6월 16일 밀라노로 향해 26일 로마에서 돌아온 이탈리아 여행기입니다.

현재 2편을 보셨습니다.

북부/ 밀라노, 크레마, 베르가모(스쳤음), 시르미오네(대중교통)

돌로미티/ 오르티세이, 볼차노(대중교통)

토스카나/ 피렌체, 산지미냐뇨, 시에나, 몬테풀차노, 안세도니아(렌트)

로마/ 산타 세베라, 반나절 속성관광(영업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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