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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Feb 08. 2021

교도관 영수의 비밀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5

“휴...”


영수는 메일의 전송 버튼을 클릭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세 가지의 긴 PDF 파일을 첨부한 장문의 메일이었다. 메일 보내기는 영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수가 영화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만든 영상 스튜디오 ‘스튜디오 링크’에 남아 있는 인원은 이제 2명뿐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5년이 지났지만, 변종 코로나가 다시금 전 지구를 집어삼키면서 백신도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식당과 카페는 모두 포장 주문만 가능했고, 게스트하우스는 점점 사양 사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건 영화 산업이었다. 정부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연극 및 영화 극장의 운영 허가를 무기한 연기했다. 관련 사업자들은 집단으로 반발했지만,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대형 연극 극단만이 온라인으로 상영을 이어갔고, CGV 주식은 상장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영수의 스튜디오에서 매일 함께 먹고 자면서 영화를 만들었던 동료들은 하나둘 스튜디오를 떠났다. 그들에게 한때 불타오르는 열정이었던 영화는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영화제에 영화를 제작해서 출품해보자는 영수의 제안을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친구 두 명만 남았을 뿐이었다.


영수는 윤여정 배우한테 자신의 시나리오와 자세한 프로덕션 계획, 그리고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담은 3개의 첨부파일을 포함한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윤여정을 섭외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동료를 스튜디오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샤를리즈 테론이 자신의 롤모델로 꼽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윤여정이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모든 드라마 섭외 제외를 거절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기에, 윤여정만한 인물이 없었다. 영수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부터 시작한 자신의 영화사랑을 녹인 편지에 시나리오, 촬영 계획표를 첨부해서 윤여정의 소속사와 매니저 메일에 뿌렸다.


역시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하루 만에 메일을 읽어서 답장이 오는 줄 알고 한 달 가까이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영수는 영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 직접 소속사에도 찾아가고, 윤여정의 일정 또한 따라다니면서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전 세계적인 스타로 등극한 그녀에게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 소속사에서도 형식적인 대답뿐이었다. 영수는 육 개월간 매일 소속사에 박카스를 들고 찾아가고 온종일 소속사 건물 아래 카페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윤여정을 만나는 건커녕, 그녀의 소속사에서 자신의 시나리오가 무시와 냉대의 대상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접 듣게 되었다. 영수가 우연히 엿들었던 대화는 이랬다.


“뭔 놈의 저 제작사는 매일 찾아오는 거야?”


“배우님한테는 말했냐?”


“저딴 답 없는 제작사에서 미는 시나리오 말했다가 내 입지만 줄어, 아 경찰 불러야 하나?”



“결국 내 시나리오와 열정은 스팸메일에 불과했구나.”


영수는 영화를 포기했다. 그 대화를 엿듣는 순간, 온몸에서 열정이 증발했다. 그간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스튜디오를 살리기 위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시나리오를 쓰고, 소속사를 찾아가고, 후원업체에 전화를 돌렸을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받지 않는 전화들과 전화를 끊을 때 희미하게 들리는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비웃음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람들의 비웃음이 영수에게 한순간에 밀려 들어왔다. 서로 다른 수많은 영혼이 영수의 몸 안으로 침투해서 모욕과 조소로 영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었다. 영수는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날, 공부를 위해 다운로드 받아서 몇 번이고 돌려서 본 영화 500편과 시장분석, 관련 기사, 시나리오 분석, 그리고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 여러 편이 들어있는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내리쳐서 부쉈다. ‘스튜디오 링크’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영수는 다시는 영화를 보지도, 만들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구독하고 있던 웨이브와 넷플릭스는 그날 바로 해지했다. 그날부터 영수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유튜브도 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한 그는 1년 반 만에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영수가 택한 시험은 바로 교정직 공무원이었다. 교도관으로 살면서 영화라는 세상과 최대한 이격된 채로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교정직 공무원이 된 지 6개월 후, 당직을 선 다음 날, 퇴근하려는 찰나, 교도소 소장이 큰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영수의 귀를 사로잡았다.


“야, 이번에 윤여정 영화 찍는다며? 요즘도 영화를 찍나?”


“자기가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고, 주연 배우도 한 대요.”


“뭐야, 혼자 다 해 먹네! 근데 그런 경우가 있나?”


“전에 하정우가 그랬던 거 같긴 한데... 모르겠네요.”


“야, 이제는 윤여정 정도 되는 배우가 온갖 쇼를 해야 영화 찍을 수 있나 보다.”


“그러게요. 근데, 자기가 다 쓴 건 아니라네요.”


“인터뷰를 봤는데, 자기 회사에 버려져 있는 이면지에 쓰여있는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어서, 그 이야기를 1년 가까이 직접 각색했데요. 원작자를 찾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 했는데, 회사에서 못 찾았나 봐요. 인터뷰에서 직접 윤여정이 원작자를 찾고 싶다고, 모든 시도를 다 하고 있다고 하던데….”


대화를 듣던 영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교도소 문을 나섰다. 2년 만에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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