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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Feb 14. 2021

자살 도우미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6

2021년 2월 14일 오후 아홉 시 반

영수가 자살하기 52시간 전, 그는 친구 휘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휘민아 잘 지냈어?”

“누구세요?”

“나 영수야.”

“아 그래, 영수야. 미안. 내가 핸드폰을 최근에 바꿔서 전화가 다 없어졌네.”

“나 사람 죽였다.”

“뭐?”

“사람 죽였다고.”

“야 무슨 소리야.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상한 소리 하고 그래.”

“아현동 굴레방로 9길로 와.”

“야, 헛소리할래?”

“빨리 와. 난 두 번 말 안 해.”

“그딴 기분 나쁜 말 할 거면 끊어.”     


휘민이 전화를 끊자, 곧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렸다. 카카오톡으로 온 메시지 내용은 이랬다.    

 

“일산 백석중학교 3학년 2반 김보름, 그리고 경인제과 미디어팀장 이윤희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어서 와”     

휘민은 당연히도 말을 잇지 못했다. 김보름과 이윤희는 휘민의 딸과 아내의 이름이었다. 휘민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려는 찰나, 전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휘민은 현재 자신이 꿈을 꾸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고등학교 친구가 전화해서 왜 협박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휘민은 바로 아내와 딸에게 전화했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휘민은 차 키를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선별 진료소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휘민은 대구로 내려간 탓에 서울에서 지내는 자신의 아내와 딸과 떨어져서 지내는 중이었다. 서울에 있는 아내와 딸이 위험할 거라는 생각에 바로 자가용 내비게이션에 아현동 굴레방로 9길을 입력했다. 다행히 저녁이라서 예상 소요 시간은 다섯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불안감에 액셀을 최대로 밟은 휘민은 네 시간 만에 영수가 말한 장소에 올 수 있었다.     

영수는 살해 협박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휘민을 맞았다. 휘민은 견딜 수 없었지만, 참아야만 했다.     


“빨리 왔네.”

“무슨 일이야.”

“일단 앉아.”

“무슨 일이냐고!”     


휘민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영수의 목소리는 땅거미처럼 차가웠다.

  

“아가리 닫고 앉아. 좋은 말 하기 전에.”     


휘민이 자리에 앉아, 영수는 말을 꺼냈다.     


“나 죽을 거야. 근데,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어.”

“무슨 말이야.”

“죽을 거라고. 일단 말대꾸하지 말고 끝까지 듣고 말해.”     


영수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익명의 자살 커뮤니티를 운영해. 요즘 뭐 그런 게 있냐고 하지만. 한창 인터넷에 자살 카페가 화제일 때보다 요즘 더 많아. 방법은 간단해. 내가 정기적으로 여는 클럽하우스 대화방에 들어와서 손을 들어 의사를 표현하면, 이후에 텔레그램으로 자세한 계획을 공유하는 거지. 물론 돈은 선입금. 클럽하우스하고 텔레그램으로 하면 기록 지우기가 편해. 물론 자살하고 나서 이후의 보험처리나 이런 귀찮은 일까지 전부 맡아서 도와줘.”     

휘민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전달하는지 궁금하겠지. 간단해. 내 직업이야. 내가 했던 일 중에 가장 적성에 맞더라고.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을 절벽 반대편으로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기는 대신, 그냥 손가락으로 툭 쳐주는 거지. 도와주면 되지 않냐고? 도와줘도 일 년 뒤에는 똑같아. 세상은 자살 결심을 할 만큼 약한 사람을 포용해주지 않아. 결국, 그 사람들은 일 년 뒤에 더 큰 절망감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살하지. 그니까 사람들이 신천지에 미치는 거야. 그 사람들한테는 절벽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거든. 그나저나 간호사 업무 신천지 때문에 엄청나게 늘었다고 들었는데, 고생 많았다.”

“아…. 그래.”

“근데, 어느 날, 클럽하우스를 통해서 들어온 한 사람이 텔레그램에서 계획을 공유하는데 아무 반응도 없는 거야. 그래서 일단 하는 걸로 알겠다고 했더니 그랬더니 딱 한 글자 메시지가 올라오더라. ‘네’. 간단하지?” 

    

영수는 처음으로 말하기를 망설였지만 이내 말했다.     


“내 딸이었어.”

“뭐?”

“내 딸이었다고. 너무 짧게 말해서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거야. 내 자식이라 그런지 완벽하게도 했더라. 수단은 말 안 할게.”

“응….”

“어쨌든, 근데, 나답게 아무런 생각 없이 처리해야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그러면 근데 자살 도우미의 자격이 없지. 그래서 죽으려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가 자살하는 거 하고 똑같다고 생각해. 식상하지?”    

 

휘민은 겁이 났지만, 이내 영수에게 질문했다.
 

“영수야…. 그럼 대체….”

“왜 불렀냐고? 아 기다려. 말할 거야. 너한테 할 말이 두 가지 있어.”

“첫 번째. 네 시체를 몰래 동해바다에 태워서 뿌려줘. 지금 다섯 시간 정도 지났으니, 47시간 뒤에 바로 여기서 자살할 거야. 여기는 재개발 지역이라 CCTV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무 식상한가? 근데 내 딸도 동해바다에 있거든. 왜 죽고 싶었는지 물어보고 싶네. 왜, 이건 좀 정상적이어서 이상해?”

“아니 그게….”

“이것도 직업이야. 간호사 업무를 해서 돈을 받는 거 하고, 안락사를 도와줘서 돈을 받는 거 하고, 자살을 도와줘서 돈을 받는 거 하고 뭐가 다르다고 생각해?”

“자살은…. 하면 안 되잖아.”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본 적 있어? 말로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하고 실제 결심을 한 사람하고 달라. 결심을 한 사람들은 몸 안에 무언가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야.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비슷한 묘사가 나오는데. 본 적 있어?”

“아니.”

“사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그 사람들한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계획대로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 울면서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야. 그 사람들까지 난 억지로 죽이지는 않아. 그건 살인이지. 물론 단단히 입막음을 하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연락도 안 하던 너희 딸과 아내 번호를 어떻게 알까?”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생각해봐. 간단할 텐데.”

“혹시….”

“맞아. 내가 운영하는 자살 클럽에 들어왔어.”

“뭐라고?”

“그리고 내 견해로는 자살 확률이…. 거의….”     


휘민은 영수의 멱살을 잡았다.     


“뭔 헛소리야?”

“백 프로라 봐야지. 자세한 정보를 말해야 이거 놓을 거야? 현재 백석동 비잔티움 오피스텔 2단지 321호에 전세로 살고 있고, 혈액형은 A형….”

“협박하는 거야?”

“뭔 소리야. 고등학교 때 옛정을 생각해서 도와주는 건데. 자살하는 김에 나도 원칙 좀 깨 보려고. 재밌잖아. 참고로 날짜는 오늘이야. 아직 시간 꽤 남았네. 그나저나, 이거 잡을 시간 있어?”     


휘민은 영수의 멱살을 잡은 두 팔을 뿌리치고, 방을 나가려는 찰나, 영수가 다시 휘민에게 말을 걸었다.     


“야.”

“왜?”

“너, 코로나 걸렸지?”

“뭔 개소리야.”

“너 신천지잖아. 간호사인데 신천지라. 이중적이야.”     


휘민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진짜? 신천지인데?”

“간호사는 업무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검사해. 근데, 너 그걸 어떻게 안거야?”

“제수씨 하고 따님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내가 한숨이 다 나온다. 야, 근데 너 운은 지지리도 좋다. 신천지 믿는 하찮은 놈이.”

“뭐야?”


휘민은 모욕감에 영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영수는 휘민에게 맞고 나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후, 지독한 놈. 딸 얘기할 때는 화난 척하다가, 신천지 얘기하니까 진짜 화내는 거 봐. 병신 같은 새끼.”  

   

휘민은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영수를 뒤로한 채 자신의 차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자신의 딸과 아내가 사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아내와 딸의 핸드폰은 여전히 꺼져있었다. 휘민은 딸과 아내가 제발 자살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영수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인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는 아내와 영수의 합작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애써 억누른 채 휘민은 전속력으로 아내와 딸을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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