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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Mar 26. 2021

거리두기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0

“휴...”

     

혜미는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답답한 혜미의 마음을 모르는 듯, 밤하늘에는 구름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혜미는 집에서 가출한 지 일 년이 넘은 자퇴생이었다. 가출과 자퇴의 이유는 부모님이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할 때마다 혜미를 찾았고, 어머니는 그것을 방관했다. 혜미는 몇 차례 경찰에 신고하고, 청소년보호쉼터를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지만, 그들은 해맑게 웃으면서 부모님의 번호를 끈질기게 물었다. 경찰서와 센터에서 아버지와 함께 집에 온 날, 아버지는 “집안 망신 시키는 년”이라는 말과 함께 더 세게 주먹을 쥔 팔을 혜미에게 휘둘렀다. 혜미는 결국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당연히 학교는 나가지 않았다. 

    

혜미가 마련한 오십만 원은 삼 개월도 지나지 않아 동이 났다. 공원에서 노숙할까 고민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고 경찰과 마주칠 우려가 있었기에 매번 잘 곳을 찾아야 했다. 돈이 다 떨어질 무렵, 혜미는 서울역 근처 모든 PC방에 찾아가서 혹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 끈질기게 물었다. 성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사장 모두는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기은은 달랐다. 유일한 여자 사장인 그녀는 혜미가 찾아오자, 나이를 묻는 다른 사장과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몇 일 됐어?”

“네?”

“집 나온지 몇 일 됐냐구.”

“... 두 달 좀 넘었어요.”

     

젤리PC 사장 기은은 혜미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새벽과 오전 시간대에 길게 일을 하게 하고, 사장 휴게실에 언제든지 잘 수 있도록 열쇠를 주었다. 컴퓨터를 쓸 일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끔 조처를 해줬다. 주급으로 알바비를 받을 수도 있었다. 혜미는 덕분에 집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안정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혜미의 안정감은 애석하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서울의 PC방은 영업을 중단했고, 이는 혜미가 새로 지낼 곳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은은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말했지만, 이 문제로 현재 동거중인 남자친구와 고성을 지르면서 싸우는 것을 목격한 혜미는 기은에게 지낼 곳을 찾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은이 아주 자세하게 캐물었지만, 혜미는 ‘찜질방에서 청소하면서 휴게실하고 수면실 이용해도 된다고 허락을 맡았다’는 거짓말로 기은을 안심시켰다.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혜미는 갈 곳이 없었다. 모든 카페가 테이크아웃만 가능했고, 음식점에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시간뿐이었다. 심지어 찜질방도 아주 제한적으로 운영해서 자고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청소년쉼터는 이미 발 들일 곳도 없이 다 차 있거나, 확진자 발생으로 인하여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교회와 성당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혜미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신과 사회가 거리두기를 하는 것 같았다. 결국 혜미가 택한 곳은 지하철 노숙이었다. 충정로역 안은 추웠지만, 혜미를 더 떨게 한 건 근처에서 판자에 의존해서 잠이 든 다른 노숙자였다. 혹시나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들이치는 겨울바람에 덜덜 떨면서 혜미는 그 어느 때보다 긴 밤을 보냈다. 혜미는 몰래 개찰구를 통과해서 무료로 탄 새벽 첫 지하철에서 몸을 녹였다. 지하철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 노숙자 중 한 명이 선잠이 든 혜미의 몸을 더듬었고, 혜미는 두려움과 불쾌감에 바로 자리를 피했다. 성추행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조차 할 수 없는 혜미는 너무나 무섭고 서글펐다. 그 순간, 혜미에게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칠흑처럼 어두운 새벽, 혜미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움과 고통으로 점철된 밤, 혜미는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혜미는 기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은언니 저 혜미에요.”

“혜미야, 언니가 코로나 땜에 좀 아파. 미안한데 좀 있다 전화 줄래?”     


기은은 각혈 소리가 들리는 기침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말했다. 혜미는 자신의 몸속 마지막 끈이 탁 끊어졌다. 두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혜미에게는 코로나 방역 방식이 아니라 사회와 자신의 거리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늘은 혜미의 두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티 없이 맑았고, 더없이 붉은 태양이 빌딩 숲 사이로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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