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1
미세먼지가 잔뜩 껴서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 날,
나는 운명적인 사랑이 담배를 끄길 기다렸다가, 말을 건넸다.
"사랑해."
내 생애 가장 자신 있게 내뱉은 한 마디였다.
서기 2025년, 가장 따뜻한 봄날이었다.
머리카락 덕분이었다.
이름은 민준이었다. 미세먼지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학교 학생회관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마치 미세먼지 따위는 자신의 담배를 막을 수 없다는 듯한 당당한 카리스마를 지나가는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아우라의 핵심은, 그녀가 그런 아우라를 풍긴다는 걸 스스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데서 기인했다. 그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매드 맥스>의 샤를리즈 테론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정반대의 아무런 매력이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하지만 이렇게 아웃사이더인 나를 하늘이 안타깝게 여긴 것인지, 민준이 내가 있던 유화 동아리에 들어왔다. 동아리는 아싸인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물론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서 한 것이지만.
같은 유화동아리는 곧, 민준의 머리카락을 얻을 기회가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지금 머리카락을 얻는다는 건 DNA를 완벽히 복제할 수 있고, 돈만 있다면 그 DNA를 가진 클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상현실 '샌 주니페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의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클론을 만드는 게 합법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불법으로는 다른 사람의 클론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다행히 나는 촬영 아르바이트와 디자인 작업으로 마련한 돈이 있었다. 민준과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1억이라는 돈은 별게 아니었다.
나는 민준의 DNA를 완벽히 복사한 클론과 수차례 수련했다. 민준의 DNA를 완벽히 복제한 클론과 민준의 취미, 취향, 좋아하는 행동, 시간, 장소 등등 모든 것을 완벽히 파악했다. 고백 훈련도 몇 차례 반복했다. 어느 시점, 어느 순간이 좋을지 끊임없이 연구했다. 민준의 클론이 좋아했던 걸 민준에게 몇 차례 시도하면서 서서히 친해졌다. 담배를 먼저 건네고, 필요한 물감을 건네고, 민준의 그림에 지나가는 등 호평을 했다. 민준의 스케줄을 파악해 민준이 다니는 경로에 있으면서 점점 더 자주 만나는 상황을 유도했다. 우리는 점점 더 친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6개월이 순식간에 흘렀다.
남은 것은 고백뿐이었다. 1000번의 각기 다른 상황에서의 시뮬레이션 끝에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상황이었던, 200번 시도해서 198번 성공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대사를 선택했다. 실패한 두 번 역시 내가 미세먼지 탓에 기침하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때였다.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클론과 함께 했을 때 성공한 정확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동일한 상황을 만들었고, 사랑한다는 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뭐라고?"
198번의 시도에 없는 대답이었다. 놀람을 억누르고 다시 말했다.
"사랑해"
민준의 눈동자는 당황스러움에 흔들렸고, 목소리는 두려움이 묻어 나오면서 엄청나게 떨렸다.
"...안 그래도 말하려 했는데. 너, 내 클론 없애. 안 그러면 신고할 거야."
민준은 겨우 말을 마치고 도망치듯이 내 앞을 떠났다.
나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봄이 그녀의 봄과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클론을 없애라는 말이 너무 겁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민준의 클론을 채근했으나, 어떻게 민준이 눈치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와 민준이 점점 친해지는 걸 질투한 다른 사람의 소행이 분명했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점점 무서웠다. 민준의 클론을 잃는 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지난 6개월간 내 말을 들어준 유일한 존재였다. 대화의 행복을 처음 느끼게 한 존재였다. 갑자기 민준이 원망스러웠다. 왜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는지, 내가 유일하게 대화하는 상대인 클론을 없애라고 하는 게 너무하다고 느껴졌다. 민준의 클론이 없으면 내 봄은 더 이상 가능치 않았다.
방법은 하나였다.
나는 당장 학생회관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가방 안에 부엌에 있는 식칼 하나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묘한 흥분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