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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Apr 16. 2021

샌 주니페로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2

 "To the New World, San Junipero!"


거대한 화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하이브 소속 세계적 아티스트 아리아나 그란데, 그리고 BTS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현지에게 BTS가 원망스러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 새로운 세계에서! 샌 주니페로"

한번 더, 그들은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가상현실 <샌 주니페로>의 대표 홍보 문구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의 가상세계의 이름을 딴 <샌 주니페로>는 정부의 가상현실 프로젝트였다. 파리 기후협약을 비롯한 초국가적인 노력과 세계적 기업의 ESG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난화는 오히려 가속화되었다. 2055년, 전 세계의 평균 기온이 45도를 넘기기에 이르렀다. 남극, 북극은 모조리 다 녹고, 일본은 섬 전체가 잠겨버렸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쿼드와 나토가 고안한 방법은 가상현실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데이터로 만들어서 가상현실에 몰아넣고, 현실에는 가상현실을 관리할 관리자만 남겨놓는 것을 통해서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샌 주니페로' 한국 지역 총괄 담당 연구원 현지는 역설적이게도 샌 주니페로에 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 영원히 지구에 남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현지는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을 포함한 모두가 샌 주니페로로 넘어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임종을 앞둔 사람 여럿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성공했기 때문에, 다들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지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했다. 현지는 빨리 샌 주니페로에 가서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말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를 엿들은 이후, 눈물 어린 부모의 위로도 위선처럼 느껴졌다.


50도가 넘는 지구는 외출하려면 두꺼운 보호복을 입어야 했다. 사람들은 보호복을 입어도 되지 않을 때를 그리워했고, 우울증은 세계적인 질환이 되었다. 자살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지구를 벗어나 살기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에 다들 쌍수를 켜고 환영했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흘러갈수록, 현지는 점점 더 역설적으로 어두워졌다. 집에서 외로움에 술을 기울이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현지의 동료 연구원 수황이 현지에게 갑자기 술을 한 잔 하자고 말을 걸었다. 현지의 전 남자 친구였다. 현지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둘은 결혼만 하지 않았을 뿐 거의 주말부부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지가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확정이 된 이후 현지가 의도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현지는 수황의 상황을 배려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수황에게 너무나 큰 상처였다.


그 날, 수황은 현지의 집을 찾아왔다.



"현지야, 나 술 사왔다."


"미안. 오늘은..."


"미안하면 잠깐만 나와봐."


현지가 문을 열자, 수황이 이때라는 듯 집으로 들어왔다.


"한잔 하자."


"싫어."


"내일이면 나 죽는데?"


"그게 죽는 거야?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지."




수황은 어느새 부엌에서 와인 잔을 가져와서 술을 따랐다.


"짠!"


현지는 어차피 혼자서 술을 마시려는 계획이었기에, 될 대로 돼라 싶은 마음에 술을 가볍게 들이켰다.


"현지야. 앞으로 나랑 술 자주 마셔줘야 돼."


"뭔 소리야. 내일 가잖아."


"나 안 가려고."


"뭐?"


"너랑 같이 술 마시려고 안 간다고."


"무슨 소리야."


"말 한 그대로야."


"뭔 말이야. 당연히 가야지. 여기서 계속 어떻게 살아."


"너 걱정돼서 못 가겠다. 이미 지구에서 지낼 준비 다 끝냈어"


수황은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 한 명 더 뽑길래 지원했어."


"아니 왜! 너라도 가야지!"


현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수황은 그보다 더 침착했다.


"남고 싶었어. 한 번뿐인 인생,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해야지. 다들 간다고 나도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수황은 현지를 꼭 껴안았다. 50도가 넘는 찜통 같은 지구 속에서 둘은 영원히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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