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6
사랑이란 뭘까? 이전부터 많은 정의가 있었지만, 그 어떤 정의도 사랑을 제대로 한 문장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더 나아가 피츠제럴드 같은 대문호도 한 문장으로 사랑이라는 오묘한 감정을 설명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 감정에 가장 가까운 상황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걸로 대신하는 거지. 어쩌면 모든 문학은 사랑이라는 것을 자기만의 세계관으로 정의하는 것 아닐까? 아주 작은 방에서의 이야기부터 아주 거대한 서사시까지, 모든 이야기는 사랑으로 귀결되지.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거대함이야.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뭐냐고? 음 바로 이런 거야... 점심에 날씨가 맑아서 여자 친구와 나들이를 가려고 했는데, 마침 그날 급한 일이 생겨서 회사에 가야 돼. 대신 저녁에 맥주나 한 잔 간단히 마시기로 한 거지. 당연히도 일을 하면서도 여자 친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 그래서 상사한테 집중 좀 하라고 한 소리 듣고, 하지만 소용없지. 오히려 상사가 혼낼수록 더 생각나. 이미 나하고 여자 친구는 수원 방화수류정, 아니면 일산 호수공원, 서울숲이나 반포 한강공원에 돗자리 피고 앉아 있어. 평행 세계의 나는 행복하게 나들이를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딱 오늘 하루만 평행 지구-1로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비는 거야. 물론 바뀌는 건 없지만.
그런데, 오후 3시 즈음에 갑자기 비가 오는 거야. 마치 동남아 스콜처럼 엄청 세차게 내려. 상투적인 비유지만 마치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것처럼 내리는 거야. 뉴스는 속보로 도배되지. 최단시간 최고 강수량을 갱신했다는 뉴스로 도배돼. 잠수교는 급히 통행금지가 되고, 도로 속 차는 점점 밀리기 시작해. 나는 하늘에 감사하지. 여자 친구와 나들이를 안 간 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된 거니까. 그런데 그러면 생각이 바로 전환돼. 높은 층을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의 좋은 방에서 비가 내리는 걸 감상하는 상황으로. '운치 있는데?'라고 말하면서 드라이한 레드 와인을 까는 거야. 나는 와인을 별로 마셔본 적이 없어서 코르크 마개를 잘 못 빼고, 여자 친구는 내 미숙한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지. 그 상황마저도 행복한 거야. 상황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웃음이 새어 나와. 물론 상사한테 한 번 더 혼나고. '얘 정신 어디다 놓고 왔니?'라는 말을 들으면서.
행복한 상상 속에서 업무를 마치고, 여자 친구를 만나러 뛰어가는 거야.
근데, 연락이 안 돼. 갑자기.
계속해서 연락이 되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되는 거야.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뭐지? 무슨 상황일까? 물론 별 상황 아닐 수도 있어. 왜냐하면 여자 친구도 부모님과 같이 외식을 한다고 했거든. 밖에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느냐 잠시 연락이 안 될 확률이 가장 커. 그럼에도 불안함은 전혀 줄지 않지. 계속해서 걱정이 온몸을 지배하는 거야.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계속해서 정해놔. 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런데 약속 장소에 갔는데도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순간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두려움이 들어. 스콜은 날 약 올리는 듯이 계속 내리고.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우산을 가방 안에 넣고, 근처 가게를 모두 뒤지는 거야. 여자 친구를 찾아서. 머리부터 옷, 바지까지 모두 젖어도 전혀 춥지 않지. 오히려 약간 더워. 수능을 볼 때보다도 더 최상의 집중력으로 온 거리를 도는 거야. 여자 친구를 찾아서.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 빨리 찾아야 하는데. 어딨지? 무사하겠지? 제발 전화 좀 받아줘...
1시간 동안 찾고 난 뒤,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근처 지하철 역으로 들어가. 자세하게 상황 설명을 해야 하는데, 이제야 비가 오는 걸 인지한 거지. 비가 오면 당연히도 스마트폰이 안 눌리거든. 어? 근데 여자 친구가 안절부절못하면서 콘센트로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는 걸 발견해. 그래 그거야. 여자 친구는 부모님과 밥 먹을 동안 핸드폰이 방전되었는지 모르고, 헤어질 때가 돼서야 안 거지. 주변 가게가 전부 문을 닫아서 지하철 콘센트를 임시방편으로 충전하고 있는 거지.
난 이제 안심하고 여자 친구에게 달려가. 그리고 꽉 껴안아. 그 순간에는 이 행동 말고 다른 행동은 할 수가 없어. 마치 타자가 타석에 들어가면 공을 쳐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말해.
오늘 하루 종일, 아니 내 삶의 모든 순간, 보고 싶었어.
사랑해.
이야기가 너무 길었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세계는 이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생각나고, 함께 무언가를 항상 하고 싶고, 연락이 안 되면 걱정이 되고, 모든 삶의 우선순위가 그 사람에게 맞춰지는 거지. 가장 사랑할 때? 상투적이지만 모두가 말하듯, 매 순간이지.
너의 사랑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