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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Jul 23. 2021

한 여름날의 꿈

조현서 초단편소설 #17

어느 한 여름밤이었다.

나는 꿈을 꿨다. 어릴  다닌 유치원에,  당시의 어린 내가 눈앞에 있었다.


어린 날에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다.

다섯 살 때, 내가 다니던 희망 유치원의 선생님은 나를 유달리 좋아했다. 나에게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네게 친구들과 다르게 나와 여러 가지 비밀을 만들었다. 선생님은 두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내게 비밀이라고 말할 때 항상 귓속말로 속삭였다. 귓속말로 속삭일 때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른 때와 달랐다. 다른 특징은 약속할 때의 장소였다. 선생님이 내게 비밀 약속을 하는 장소는 항상 화장실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선생님은 내가 약속을 지키겠다고 할 때마다, 내 유치원복의 끈을 리본 모양으로 다시 묶어줬다. 선생님은 끈을 묶으며,

"이 리본은 선생님하고 현서하고 둘만의 비밀의 징표야, 알겠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생님이 비밀 약속을 한 어느 날, 아빠는 내게 그 선생님과의 약속을 캐물었다. 나는 선생님이 누구에게도 말하면 큰일난다는 말이 무서워 부모님께 비밀을 말하지 못했지만, 아빠의 집요한 질문에 울면서 선생님과의 비밀을 실토했다. 나는 선생님과의 비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엉엉 울었다. 리본은 울다 보니 저절로 풀어진 지 오래였다. 그날 이후 나는 선생님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선생님이 내게 한 짓이 무엇인지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야 깨달았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기억 속 꿈으로 돌아왔을까.

 눈앞에서, 유치원생의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유치원복의 리본도 그대로였다.  


나는 소리쳤다.

제발 울지 말라고, 간곡하게 소리쳤다.

대답없었다.


계속해서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쳐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내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현서야, 현서야, 현서야, 현서야, 현서야


내가 부르짖는 것을 들어서일까?

변기에 앉아서 울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깼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였다.

잠에서 깨는 순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을 멈추고 그 공간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벗어났을까?

소나기 소리와 비릿한 비 냄새가 방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답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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