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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Aug 11. 2021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

조현서 초단편소설 프로젝트 #19

'말...'


아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말기라고요?'


엄마가 격양된 목소리로 대신 물었다.


"위암 말기입니다.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웃긴 점은 바로 말기 암의 당사자가 바로 나라는 점이었다. 90살의 증조할아버지도 정정하게 바둑을 두는 우리 집에서 말기 암의 당사자가 가장 어린 내게 찾아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가능성은 있는 거죠? 선생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간과 담낭까지 전이가 된 상태입니다. 수술이 성공적이더라도, 이후 상황을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요... 선생님! 제발 저희 아들 살려주셔야 해요... 저희 희수... 이제 막 대학교 입학했는데... 왜 하필 희수한테... 왜 또..."


엄마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울부짖는다는 표현이 더 가깝게, 엄마는 울음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내 엄마는 내가 묻고 싶은 내용을 훨씬 감정적이고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러한 상황을 수 차례 겪은 대학병원 교수는 참을성 있게 엄마의 질문에 답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참을성 있는 목소리로 말하는 정경호가 떠올랐다.


"선생님"


선생님은 엄마와 아빠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내게 돌렸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보세요?"

"네?"

"한 번 봐보세요. 선생님 말씀하시는 게 정경호랑 똑같아요"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던 병실은 이내 작은 웃음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교수는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솔직하게 제게도 어려운 수술입니다. 수술이 잘 끝난다고 해도, 이후에 다시 전이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 전까지 건강 잘 챙기시고요."


교수는 이내 시선을 엄마와 아빠로 향했다.


"잘해보겠습니다."


다짐의 말을 끝으로 교수와 주치의는 밖으로 나갔고, 간호사는 수술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 공지했다. 엄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빠는 힘이 빠진 엄마를 부축했다. 간호사는 이내 내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했다. 약이 독해서 식욕이 없더라도 음식을 먹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걷는 식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흔한 안내사항이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빨리 바리깡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바리깡을 받아 든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바리깡을 들면서,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밀러 가자! 나도 주호민처럼 빡빡 한 번 밀어보고 싶었는데 잘 됐네. 엄마 이따 나 대머리인 거 보고 더 크게 울면 안 돼? 알았지?"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서 샤워기 앞에서 윗옷을 벗은 채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새삼 빽빽한 머리숱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탈모 걱정은 안 해서 좋아했던 내가 대머리가 된 모습이 참 생경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탈모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로 빽빽한 머리를 자랑했던 내가 아무런 감정적 동요 없이 머리를 자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검사를 비롯한 각종 암세포 검사를 할 때, 내가 만약에 암에 걸렸으면 어떡할지에 대해서 엄청나게 고민했다. 울음이 나올까 걱정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차분해졌고, 부모님이 신경 쓰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엄마는 그때부터 자식이 아플 때마다 자신을 탓했다고 아빠는 엄마 몰래 내게 말했다. 초등학교 때 상한 우유를 먹고 응급실에 실려간 나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쥐어뜯고 울부짖으면서 의사를 찾아 고래고래 소리치는 엄마의 모습이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엄마의 트라우마를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대머리로 사는 인생의 2막에서의 지난한 전투에서 나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는 샤워실을 나왔다.


나는 남자 샤워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향해 미소 지으며 달려가 꼭 안으면서 말했다. 


"엄마, 나 절대 안 지니까 걱정 마. 별거 아니니까 내가 이길 수 있어. 퇴원하고 꼭 체코 같이 가자"


엄마는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울음을 참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 셋은 지난한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임을, 꼭 이겨서 이 거대한 흰색 건물을 나갈 것임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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