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배려가 아니게 되는 무수한 순간들.
배려의 정의를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라고 나와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일상생활에서의 꽤 많은 지점들이 모두 '배려'라는 범위에 들어갈 듯싶다. 이 정의라면, '마음을 씀'의 행위만 있으면 배려이기 때문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도와주려는 마음을 쓰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배려'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지금 느끼겠지만, 이 정의는 '배려'를 담아내는 좋은 그릇은 아닌 것 같다. 그물이 너무 성긴 나머지 물고기를 다 놓치는 상황이다.
오히려 '배려'의 개념은 현재 정의된 것과는 반대로 '행위자' 보다 '수여자'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실제로 '배려'의 의도에서 한 행위가 그 행위의 수여자에게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크나큰 모욕이자 치욕이었다면, 이 행위는 절대 '배려'라고 할 수 없다. 물론 현재 정의에서는 이 행위도 배려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우리 모두가 이는 배려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념화하는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보다는 훨씬 더 자세한 범주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느 추가적인 범주가 필요할까? 우선, 밑바탕인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은 어떤가? 밑바탕으로서의 정의로는 나쁘지 않다. 단지 이것이 '배려'의 전부라면 문제긴 하겠지만. '배려'를 제대로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수여자'가 그 행위를 통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에게 모욕적인, 치욕적인 행위 또한 배려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느 한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는 데, 만약 그 선생님의 의도가 '도와주거나 보살 쳐 주기 위해서' 라면 이 행위도 배려인가?(사실 아동 성추행/강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변명이다) 이 행위는 절대 배려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정의에서라면 배려가 맞다. 애초에 행위자의 의도로만 정의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배려의 개념은 따라서,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행위를 일컬으나,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로 제한한다.'라고 좀 더 제한을 두어야 한다. 흔히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는 종류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우리가 '배려'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아무렇지 않은 듯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배려'라는 마음을 쓰는 행위는 굉장히 고도로 어려운 행위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배려'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입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짐을 옮길 때,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짐을 옮기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배려가 아닐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충분히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느끼고 하고 싶다는 느끼는 경우에는 짐을 옮기는 일을 같이 하는 것이 배려의 행위이다.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인 동물이다. 사실은 본인의 이기심 때문에 촉발된 행위도, 스스로는 이타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배려'의 행위가 대표적이다. 본인이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냉철하게 성찰했을 때 본인이 전자에 조금 더 가깝다면, 그 현실을 제대로 마주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배려'의 시작이다. 난 어떠냐고? 나도 전자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