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이라는 공간.
2011년 나는 함께 창업했던 친구들과 아주 중대한 결정을 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당시 우리는 스물다섯 살밖에 안됐었고 결정적으로 ‘지금 우리가 이 공간에서 해야 할 일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더 많다는 것’을 함께 공유하게 되면서 ‘노네임’을 엑싯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국 노네임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운영진과 투자자를 만나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밤에 이 공간에서 함께 일하던 TEDx 커뮤니티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을 방황하다가 멤버 중 가장 연장자였던 분께서 우리에게 투자하는 의미로 작은 오피스텔을 구해주셨다. 우리는 나중에 이 공간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고민하다가 직장인부터 대학생, 고등학생, 동네 주민 등 평범했던 우리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것을 떠올려보니 작은 꿀벌들이 협동해서 꿀을 만들어 내고 자연의 생태계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것과 비슷해서 그런 협업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벌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벌은 협동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 영국 시인 허버트
이후 우리는 정식으로 비영리단체도 등록하고,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일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오피스텔을 구해줬던 우리 멤버가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최적의 공간을 찾았고, 그 공간을 TEDx팀에게 지원해준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동네에서 '벌집 2.0'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글로벌 TEDx커뮤니티 온라인 그룹을 통해서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지금은 코워킹 스페이스가 대중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전 세계에 몇백 개밖에 없을 때였다.
초창기 운영자들은 코워킹 스페이스 위키(wiki)를 통해 어떻게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그 공간에서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교환했다.
코워킹 비자(VISA)라는 것을 만들어서 서로 계약을 맺고 일종의 에어비앤비처럼 전 세계적으로 공간을 교환하며 사용하는 문화도 있었다. 우리도 이 코워킹 스페이스 커뮤니티에 등록을 했고, 당시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도 2개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서울에 등록되어 있었는데 무작정 이 공간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우리는 이 공간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닥 타일을 제거하는 것부터 조명 설치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해나갔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우리들의 공간이 생긴다는 기쁨과 설렘으로 더운 줄도 모르고 만들어 나갔다. 첫 창업이 공간 비즈니스이기 때문이었는지, 공간을 함께 만들 때 나오는 에너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노네임’만큼의 대중적인 공간은 아니었지만, 이 공간은 학교와 직장 사이의 중간지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무엇보다도 ‘용도변경’이라는 메이커 스페이스도 함께 운영되면서 메이커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무엇이든 만들고 실험해볼 수 있었다.
공간은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이라도 그 성격이 정말 달라지는데,
초창기 '벌집'이 TEDx팀을 중심으로 다양한 창작자들을 연결하는 실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면,
2015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청년들이 '벌집'을 운영하게 되면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마침 구성원들도 많이 바뀌고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천만 원을 넘게 모았고 그들만의 새로운 '벌집 3.0'을 만들어 나갔다.
지역에서 '벌집'이란 공간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이 친구들은 그런 문화들이 더 많은 청년들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했다.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주변의 어른들과 동료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기에, 나 또한 물심양면으로 이 친구들을 도왔다.
상대적으로 정보와 자원이 부족한 지역적 특수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나마 존재하는 것들의 발견과 연결이다.
‘벌집’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물론 내부적으로 끊임없는 소소한 갈등과 지속가능성의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늘 배움과 성장이 있었다.
수많은 청년들이 길을 찾고자 이곳에 왔지만, 대다수는 이곳에서 길을 잃곤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공동선을 찾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사회와 창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이 친구들이 진짜 더 차갑고 냉혹한 세상에 나가기 전에 그나마 완충작용을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길을 잃는다. 이 시기엔 특히나 그렇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연결의 공간’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얻었다.
많은 친구들이 길을 잃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이 필요했지만,
세상은 청년들에게 방황할 시간과 실험할 무대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는 세상에서 이곳은 유일하게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자,
그에 따른 실패도 허용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 모이는 친구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진짜 자기 꿈을 찾아가거나,
자기가 발 딛고 있는 지역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의 언어'를 만들어 나갔다.
결론이야 어떻든,
나는 이렇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는 친구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한다.
최근, '벌집'이 2호점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요즘 벌집에 가면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변했다. 실험의 주체는 계속 바뀌고 있지만, 이 실험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이들을 존경하고, 무엇보다 이 실험을 나처럼 그동안 이 공간을 함께 만들고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계속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이 앞으로도 이들에겐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보이지 않지만 따뜻한 신뢰야말로 청년들에게,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회적 안정망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