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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원,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인간은 저마다 스스로의 구원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구원자가 되어야만 한다.
2.
외부로부터의 구원은 결국 단회적이고 언젠가 다시 필요로 할때 그것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당신은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3.
구원자 또한 그렇다.
구원자가 당신을 구원해준다면 대게 그 구원자에게 의지하고 의존하게 된다.
구원자가 사라진 세상에서 당신이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이 구원자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고, 악마는 줄곧 천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4.
동정은 사랑이 아니다.
동정이란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에서 발생한다.
결국 동정은 진실된 감정이 아니라 하찮은 감상에 불과하다.
5.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동정하고 그 후에 사랑을 느낀다고 하자.
과연 당신은 상대방이 더 이상 동정의 대상이 아닐 때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6.
게다가 동정은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의존하게 만든다.
상대방은 당신이 동정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것과 별개의, 오로지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만약 이 관계가 오로지 동정으로만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에게 계속 동정받기 위해 '자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7.
만약 상대방이 '객관적으로' 동정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문제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가까운 사람과 이별한 사람이라든가 혹은 정신이나 신체의 고통으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
8.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한 동정에서 시작해 더 깊은 감정인 연민으로 나아간다.
당신은 상대방의 고통에 공감하고 깊은 연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을 희생할 준비도 되어 있다.
이것이 사랑인가.
9.
아니다.
당신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당신이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만약 고통이 없었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10.
당신이 만약 누군가에 대한 책임감을 무의식 속에 간직하는 경우, 더더욱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상황과 희생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고 일종의 의무감에 사로잡혀 때로는 강박적으로 그 역할에 집착한다.
결국 이런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저열한 자기만족,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11.
이따금 자문해보라.
당신이 사랑해서 희생하는지 아니면 희생하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지.
희생은 사랑에서 파생되는 개념이지 결코 중심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12.
인간은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감상적으로 접근한다.
사랑은 만능의 열쇠도, 지니의 램프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한 가지 감정에 불과하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사랑이 필수적인가.
아니다.
사랑 없는 삶은 가능해도 삶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13.
그러므로 사랑의 영원 불멸이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은 접어두길.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뿐만 아니라 당신의 기대는 사랑이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과도하다.
14.
어쩌면 사랑이란, 종족 번식을 위해 발생하는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작용과 존재와 존재의 연결을 갈구하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이 결합된 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제도와 사랑에 대한 여러 관습적인 규칙들은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애처로운 시도이자 허상을 실재로 만들려는 노력에 불과하다.